2015/01/04 호화판 떡국과 커피
오늘 동경은 겨울 날씨로는 온화하고 맑게 개인 좋은 날씨다. 맑게 개인 날에는 집에도 햇볕이 들어 따뜻하니 괜히 기분이 좋다. 무엇보다도 쉬는 날이어서 좋은 것도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쉬는 날이 계속될 수는 없는 법. 오늘이 일요일이니까, 짧았던 겨울방학이 거의 끝나간다.
다음 주 수요일부터 강의가 있으니까, 방학은 오늘로 끝나는 걸로 알아야 한다. 대학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아서 도서관에도 못 가지만, 연하장에 답장도 보내야 하고 슬슬 평상시로 돌아가야지.
올해 정월은 평소와 달리 외출도 안 하고 지냈다. 매일 산책은 했다. 1일 낮에 같은 단지에 사는 친구의 초대를 받아서 갔다. 뭔가 준비를 해서 초대한 줄 알았더니, 준비가 별로 없었다. 즉, 먹을 것이 적었다는 것이다. 이튿날도 초대하더니 달랑 과자 두 알과 차를 냈다. 삼일째도 과자 두 개와 차가 나왔다. 나는 첫날에 멸치볶음을 가져갔고, 이틀째는 재미있는 책을 빌려주려고 가져갔더니, 친구도 빌려왔다네. 삼일째는 김치전을 한 장 랩에 말아서 가져갔다. 삼일동안 매일 친구와 산책을 했다. 작년에 몸이 아프면서 요가도 그만두고 산책도 못했던 것이다. 다시 요가를 시작하고 산책을 하려고 해도 겨울이라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 데, 엉겁결에 산책을 시작했다. 시작하기가 어렵지 시작하면 계속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슬슬 산책하는 일상으로 돌아와야지.
외출도 안 하고, 연하장도 쓰지 않고, 블로그는 써서 올렸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신년인사도 걸렀다. 지금까지 명절은 나름 명절답게 지내려고 노력했었다. 올해는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아서 힘써서 노력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떡국을 끓여 먹으면서 소소하게 명절 기분을 냈다. 혼자서라도 명절기분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한국에서 가져온 먹을 것이 있었던 덕분이다. 거기에 마트에서 산 것과 선물 받은 것이 어우러져 명절 기분을 연출해 주었다.
떡국은 서울에서 사주신 멸치로 국물을 내서, 가까운 마트에서 팔고 있던 엄청나게 크고 비쌌던 토종닭으로 낸 국물을 더해서 서울에서 받아온 떡국을 넣었다. 가까운 농가에서 산 당근과 대파를 썰어넣고, 양계농가에서 사 온 계란을 풀어서 넣었다. 마지막에 한국에서 온 김을 뿌렸다. 이 정도면 호화판인 셈이다. 재료들이 어떻게 모아졌는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냉동고에 있던 전복장조림과 전복 게웃을 두 개씩 넣었다. 진짜로 호화판 떡국이 되었다. 멸치와 떡국, 김은 한살림거다. 전복장조림과 전복 게웃도 한국에서 온 것이다. 이 정도면 호화판이라고 해도 되지 싶다. 그렇게 조용히 호화판 떡국을 먹으면서 명절 기분을 냈다.
요새, 며칠은 정말로 한 일이 적다. 뜨개질로 소품을 두 개 마치고, 전에 하던 걸 하나 마쳤다. 아침에 일어나서 청소나 빨래를 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먹을 것을 찾아 먹으며 지냈다. 가끔은 블로그를 한꼭지 써서 올리고…
네팔아이가 사다 준 커피를 내가 쓰는 커피포트에 넣어서 마셨더니 맛이 별로였다. 내가 쓰는 커피포트는 원래 에스 프레소용 가루를 넣어 끓는 물을 부어서 적당히 거르면서 마시는 것이다. 네팔아이가 사다 준 커피는 올가닉으로 아라비카, 드립용으로 갈아진 것이다. 물론, 에스프레소도 드립을 하지만, 입자가 굵다는 의미다. 어쩐지 맛이 없다면서 마시는 것이 미안해서 나름 예의를 갖추려고 커피전문점에 가서 융 필터를 샀다. 전에는 커피 간 것을 사다가 드립해서 마셨는 데, 언제부터인가 쓰레기 나오는 것이 귀찮아서 인스턴트를 마셨다. 생활은 심플하게 하는 편이라, 간단한 편을 선택했다. 가끔은 맛있는 저온살균우유를 사다 짙은 커피에 넣어서 마시면서 작은 변화를 주기도 했다.
오랜만에 융 필터를 써서 제대로 드립을 했다. 제대로 했다는 것은 용량을 비롯해서 컵을 따뜻하게 하고 필터를 적셔서 쓰고, 끓는 물을 붓는 것 등을 정해진 대로 했다는 말이다. 와, 커피가 깔끔하니 맛있다. 대충 커피포트에 넣어서 먹었던 맛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괜히 미안해진다. 제대로 하면 맛있는 커피가 되는 것을 구박해서 미안하다. 그리고 맛있는 커피를 두 잔 마시면 아주 만족감이 든다. 요새 3일동안 하루에 한 번 맛있는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마음이 흔들린다. 인스턴트 커피에서 하루에 한 번 커피를 제대로 내려서 마시는 생활로 바꿀까? 아니면, 쉬는 날에 마시는 특별한 커피로 남겨둘까?
요점은 소소한 것으로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소소하지만, 소중한 작은 것들이 모여서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살아가는 힘을 지탱해주지 싶다. 소소한 것에 깃든 사람들의 노고와 정성과 사랑도 같이 커피맛에 흘러든 것일까? 아냐, 커피맛은 그냥 커피맛이지…
호화판 떡국과 맛있는 커피에 관련된 사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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