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15 추위 때문이야!
오늘 동경은 비가 오고 바람도 부는 추운 날씨였다. 최고기온이 6도 밖에 안 되는 아주 추운 날씨였다. 아침부터 비가 올 것 같아서 우산을 들고나갔다. 여성학을 듣는 학생을 위해서 사탕을 챙겼고, 사회인 학생에게 줄 김도 챙겼다.
강의가 거의 끝나간다. 다음 주로 종강이다. 학기말이 가까워오면 생각이 많아진다. 강의를 좋게 마치고 싶은 것도 있고, 내가 이번 학기에는 뭘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학기말 리포트도 받고 수업이 끝난 후에 학생들 질의응답도 받고 정신이 없다. 오늘 아침에 채비를 하면서 딴생각을 했다. 추운 날에 비가 올 것 같아서 우산을 챙겨 들고나갔다. 가까운 역에 좀 이르게 도착해서 모노레일을 탔다. 갑자기 추워져서 그런지 따뜻한 곳에 들어와서 정신없이 자는 사람들이 있다. 두 번째 정거장, 대학에서 내리는 학생들이 많다. 그런데 눈 앞에 자는 학생이 있다. 남학생이 입은 운동복을 보니 여기서 내려야 할 것 같은 데, 그 걸 아는 사람이 나 밖에 없는 것 같다. 한참 망설이다 보니 학생들이 거진 다 내려서 문이 곧 닫힐 것 같다. 내가 깨웠다, 내리는 거 아니냐고, 눈을 뜨더니 용수철처럼 튀어 나가서 내렸다. 깜짝이야, 잠자다가 깨서 용수철처럼 튀다니, 순발력 끝내준다.
나도 전철을 갈아타는 곳에 가서 시간에 맞게 전철을 갈아탔다. 중간에 내려서 다시 한 번 갈아타야 한다. 거기서 화장실에 들른다. 화장실에 가서 알았다. 내가 입으려고 했던 옷을 한 장 덜 입었다는 것을… 세상에 내가 미쳤나 보다. 하필이면 이렇게 춥고 추운 날에 달랑 니트 미니원피스가 가당키나 하냐고. 아무리 두꺼운 레깅스를 신었다 해도 옷이 부족하다. 니트 미니원피스에 스커트를 한 장 더 겹쳐 입을 작정이었는 데, 딴생각을 하다 보니 잊은 거다. 아, 큰일이다. 추워서 어떡하지. 옷을 덜 입은 걸 아니, 점점 더 추워오는 느낌이 든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전철을 타고 가면서 생각했다. 다운코트를 스커트처럼 해서 입어야지. 누가 아줌마 옷차림을 보겠는가, 설사 옷차림을 본다한들 내가 옷을 적게 입어서 코트를 스커트로 입었다는 걸 모르겠지. 알아도 경찰에 잡힐 일도 아니니까… 기가 막혔다. 첫번째 황당한 실수였다.
스쿨버스에서 내려서 버스표를 파는 자동판매기에 갔더니, 식당이 공사 중이란다. 판매기가 식당 앞에 있었는 데, 표를 못 샀다. 사무직원에게 물었더니 위층으로 올라갔다네. 나중에 사야지.
2교시가 끝나서 점심을 먹고 3교시를 들어가는 데 빗방울이 좀 세어졌다. 그래도 우산을 꺼내기가 싫어서 스카프로 자료를 가리고 거리가 있는 교실로 이동했다. 머릿속은 온통 수업으로 가득 차 있었다. 3교시가 끝나서 마이크와 열쇠 등을 반납하러 가서야 알았다. 열쇠가 없다. 스쿨버스 시간이 임박해서 사무직원에게 화장실이나, 3교시 수업을 했던 교실에 두고 왔을지도 모른다고 찾아 달라고 부탁하고 버스표를 사서 버스를 탔다. 버스가 아주 붐볐다. 추워서 학생들이 일찍 가느라고 그런 모양이다. 나도 빨리 돌아가고 싶다. 그런데 버스에서 생각하니 사무직원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다. 열쇠를 떨어뜨린 것은 내가 부주의해서 일어난 일인데… 추운 날씨에 비바람이 분다. 여직원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 열쇠를 찾았어야 했다. 미안한 생각에 속이 상하다. 학기말이라, 머릿속이 혼잡해서 생긴 일이다. 처음 생긴 일이기도 하다. 역에 도착할 무렵에는 완전 파김치가 되었다.
멍하니 전철을 타고, 갈아타기를 거듭해서 집을 향했다. 다음 주에 정식으로 사과하려면 케이크이라도 사가야 할 것 같아서 전철을 갈아타는 역에 있는 가게에서 봐 뒀다. 오늘 실수한 걸 생각하니 황당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보니 아주 피곤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이런 건지, 갑자기 치매가 된 건지, 모르지만 갑작스럽다. 마트에 들러서 오뎅에 넣을 무와 당근, 배추를 사서 돌아왔다. 추운 날이라 집도 추웠다. 오뎅국물을 만들면서 계란을 삶아서 껍질을 까고, 국물에 무와 당근을 먼저 넣고 삶고 나중에 오뎅을 넣었다. 오뎅이 삶아지는 동안에 컴퓨터를 켜서 여직원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메일을 보냈다. 메일로라도 사과를 해두는 것이 마음이 좀 가벼워지니까…
나름 먹을 만한 오뎅을 만들었다. 국물과 같이 먹을 그릇에 머스터드를 바른다는 것이 와사비를 발랐다. 분명히 머스터드병을 꺼내서 확인했는 데, 왜, 튜브에 들어있던 와사비를 발랐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세번째 황당한 실수였다. 내가 완전 맛이 갔다. 어쩌겠는가, 와사비에 어묵을 먹었더니 이외로 먹을 만하다. 다음에는 머스터드를 발라서 먹어봤다. 와사비가 좋은 것 같다. 황당한 실수로 인한 발견이 되는 건가?
어쨌든 오늘은 지쳤다. 자신에게 놀래서 가슴이 벌렁벌렁 하는 것도 아주 피곤한 일이다. 추위 때문이 아닐까, 추위 때문이었길 바란다.
사진은 오늘 일어난 일과 전혀 관련이 없다. 12월에 광주에 갔을 때 들렀던 담양 소쇄원이라는 조선시대 정원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