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06 황금연휴의 바겐헌터
오늘 동경은 아침에 흐리고 찬바람이 불었다. 찬바람은 어젯밤부터 불었다. 바람이 불면 춥고 창문을 닫으면 더운 요상한 날씨였다. 낮에 볕이 났을 때는 사람을 녹일 것 같이 강한 햇살이었다.
황금연휴에는 지역에서 큰 축제가 있어 주로 플리마켓이라고 벼룩시장에 다녔다. 이런 시장에는 아침에 일찍 가거나 늦게 가는 것이 좋다. 일찍 가면 건질만한 걸 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늦게 가는 것은 남은 것 중에 쓸만한 것이 있으면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중간한 시간에 가는 것은 힘들고 건질 것도 별로고 가격이 싸지도 않다. 그런 걸 잘 알면서도 일찍부터 가서 뭔가 건지려는 야심은 없다. 그렇지만, 바겐헌터로서 최소한 갖출 것은 갖추고 나간다. 우선 복장은 옷을 걸쳐볼 수 있게 얇은 옷을 입는다. 햇볕을 가릴 모자를 쓰고 흙먼지를 뒤집어쓸 거니까, 옷이나 신발도 조심해야 한다. 신발 살 때를 대비해서 신고 벗기에 편하면서도 걷기 좋은 신발을 신는다. 옷은 파는 사람이 보기에 괜찮아 보이는 스타일을 입는 것이 좋다. 파는 사람은 사는 사람을 찬찬히 본다. 그리고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 가격을 싸게 해주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번은 채양이 넓은 밀짚모자에 초록색 스카프를 매고 나갔더니 주로 젊은 아가씨들이 멋있다고 쳐다봤다. 오늘은 스카프가 멋있다고 어디서 샀느냐고 물어봤다. 스타일이 있다고 느끼면 대하는 것이 다르다. 물론, 그런 것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벼룩시장에 적응해서 날고뛰는 바겐헌터가 많아지는 추세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어느 시간에 가도 건질 만한 것이 있었는 데, 요새는 건질 만한 것이 별로 없다. 너무 건져도 곤란하니까, 세상 구경 삼아 가는 것이다. 삼일 동안 벼룩시장에 다니면서 느낀 것은 아픈 사람이 참 많다는 것이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사람, 사지도 않으면서 괜히 트집 잡는 사람, 주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입고 신어보는 사람 등등… 행동거지를 봐도 이상한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너무 많아서 그런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 것 같았다.
조금 다르거나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지 못한 병적인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닌다. 눈에 많이 띈 것은 아주 깡마른 사람들이 몸에 짝 달라붙는 옷을 입어서 마른 것을 강조한다. 여기서 몸이 마르다는 것은 슬림하다거나 날씬한 것과는 거리가 먼, 병적으로 마른 것이다. 마른 체형이 아니라, 거의 뼈가 걷는 것 같이 마른 사람이 몸에 찰싹 달라붙은 옷을 입고 있다. 그런 옷을 입은 걸 보고 마른 걸 드러내고 싶은 것이라는 걸 안다. 그렇게 마른 사람들이 적지 않은 걸 보고 놀랬다. 마른 것이 아름답거나 건강한 것이 아닌 병적인 데, 그런 걸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도 병인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병적인 것 같지만 본인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아픈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좀 우울해진다.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점점 많아진다. 그래서 벼룩시장에서 건질 만한 것이 있으면 작은 위안이 된다. 그러나 벼룩시장에 가도 사이즈 문제로, 내가 건질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일본 사람들 체형이 작고 말랐다. 나는 한국에서는 보통이지만 일본에서는 좀 크고 뚱뚱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벼룩시장에 가는 목적은 꼭 뭔가를 건지는 것보다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에 있다. 병든 사람들을 많이 봐서 우울해지면 뭔가를 건지는 데 몰입해서 기분을 풀고 싶어 진다. 올해는 별로 건진 것이 없다. 어중간한 시간에 어정쩡하게 가서 그렇다.
물건을 보면 주인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조금 짐작이 간다. 쇼핑중독인 사람의 물건이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옷을 샀는 데, 가격표도 떼지 않은 것이 수두룩하고 포장을 풀지 않은 것 투성이다. 관리가 엉망인 사람 물건은 손을 대지 않는다. 아무리 명품이나, 고가인 것이라도 관리가 제대로 안되어 있는 것은 건드리지 않는다. 너무 더러우니까... 주인이 집착이 너무 강한 것도 귀찮다. 자신이 좋아하거나, 비싼 것이어도 필요한 사람에게 기분 좋게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은 데... 팔러 나왔으면서도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것도 사기 싫다.
올해는 신발을 건졌다. 신발을 건지기는 드문 일인 데, 신발을 건졌다. 샌들이 300엔, 구두는 내가 사는 브랜드, 캠퍼에 맞는 사이즈가 500엔, 정가는 2만 엔이 넘는다. 거기에 산책할 때 신을 수 있는 신발… 거의 새 것들이다.
레이스들은 그다지 싸지 않았지만, 사고 말았다. 천은 자수가 놓인 것으로 파격적으로 싼 가격 하나에 50엔씩 줬다. 넥타이는 청바지 입을 때 허리띠로 쓰려고 하나에 100엔을 석 장에 200엔 줬다. 올해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물방울무늬 미니원피스로 200엔이었다. 내가 찾고 있었던 것으로 어디서 파는지 모르지만, 촉감과 컷팅이 완전 마음에 꼭 든다.
벼룩시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꼭 들르는 곳이 두 군데 있다. 도넛을 파는 곳과 지역에서 생산한 야채를 파는 곳이다. 도넛은 성금을 마련하기 위한 가게지만 맛있다. 어제는 아침에 캔 죽순 200엔과 머위 150엔을 샀다. 죽순이 크지 않아서 다행이다. 죽순이 크면 무겁고 삶는 게 더 번거롭다. 올해 죽순을 못 먹은 이유가 무거워서 집에 들고 오지 못해서였다. 머위를 다듬으며 손톱이 까매지고, 죽순 껍질을 벗겨 삶고, 죽순껍질의 껄끄러움과 아린 맛에서 자연과 계절을 느낀다. 죽순을 삶을 때, 겨를 넣는 데 없다니까, 쌀뜨물이나 쌀을 조금 넣으란다. 그러나 아침에 캔 것이라, 그냥 삶아도 좋다고... 어제는 죽순과 머위를 먹고 봄을 먹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죽순을 좋아한다. 신선한 것을 삶아서 부드러울 때 먹는 맛이란, 별 맛이 없지만 좋아한다. 어제 머위는 다랑어 육수에 어묵과 같이 조려서 먹었다. 죽순은 삶아서 그냥 먹었다. 오늘 머위는 유부와 같이 조렸다. 제철에 나오는 걸 먹으면 계절을 즐기는 기분이 든다.
바겐헌터라는 것이 무조건 싸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나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가 가진 스타일이라는 게 있다면, 그 스타일대로 바겐헌터가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