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27 옆집 사람
오늘도 동경은 비가 온다.
오늘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일본 아줌마와 같이 수국을 보러 가기로 했었다. 어제저녁에 카메라에 배터리를 충전하면서도 어쩐지 못 갈 것 같은 예감이었는데 오늘 아침에 문자가 왔다. 어제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다리가 아프단다. 수국보러 못 가겠단다. 그 대신 차마 싫어 놀러 가도 되냐는 문자였다.
장마 때는 한참 수국이 피는 계절이다. 올해는 날씨가 안 좋아서 그런지 꽃이 잘 안 피었다. 이 근처에는 수국이 많이 피는데 오늘도 다카하타후도라는 절에 수국을 보러 가기로 했던 것이다. 아줌마는 불교신자이기도하다. 다카하타후도는 수국원이 있어 각종 수국이 피어있어 보러 갈만 하다.
수국은 가까이서 보면 별로 예쁘지 않다. 꽃을 하나하나 봐도 별로인데 좀 떨어져서 거리를 두고, 특히 비가 올 때 보면 환상처럼 빛을 발한다. 맑고 청명한 날씨에는 지쳐서 초라하게 보이는 꽃이다. 그런데, 비가 올 때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처럼 빗속에 물기를 머금고 빛나 그 주위가 특수한 막을 친 것처럼 예쁘게 보인다.
아줌마가 오기 전에 테이블 위에 산처럼 쌓인 자료들을 정리했다. 나는 자료들을 쌓아놓고 일을 하는 편이다. 의자 위에 쌓아두었던 작년 수업자료도 상자에 넣어서 올해 후반기에 다시 쓰려고 정리를 해놨다.
아줌마가 오면 같이 먹으려고 과자도 준비했다. 아줌마는 부담이 없는 사람이라, 테이블 위에 자료를 밀쳐서 차를 마시곤 했는데 오늘은 정리를 했다. 그리고 구마모토에서 보내온 맛있는 멜론을 잘라서 먹었다. 두 시간 반쯤 수다를 떨고서 아줌마네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백인 남자와 여자아이가 보인다.
내 옆집에 가까운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프랑스 남자가 살았는데, 호주에서 돌아와 보니 옆집에서 영어로 말하는 여자아이 목소리가 들린다. 프랑스 남자가 장가갔나? 장가가도 아이가 영어로 말을 하나? 일부러 찾아가서 인사할 정도는 아니지만 아이가 둘인 모양으로 소리가 들린다. 아빠가 말하는 소리는 들리지만, 엄마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서 설마 아빠 혼자서 아이 둘을 데리고 있는 건 아닐 텐데 생각하고 있었다. 아빠가 영어로 그것도 미국 영어가 아닌 영어로 말을 한다. 어디서 온 사람이야? 아일리쉬였다.
오늘은 그 궁금증이 풀렸다.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저는 몇 호실에 사는데요. 당신 이웃집입니다. 아이들 목소리가 들려 궁금했는데..... 오늘 만났군요. 저도 같은 대학에서도 강의를 합니다. 오늘 마침 멜론을 잘랐는데, 베란다로 좀 넘겨드릴게요.
베란다에 일가가 다 나왔다. 밑에 아이는 작아서 아직 말을 못 한다. 부인은 일본 사람이었다. 여자아이는 아일린이라고 한단다. 귀엽다. 저는 옆집에 사는데요, 혹시 뭔가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사실 제가 아이를 키운 경험이 없어서 아이를 봐줄 수는 없지만, 여자아이랑 놀아 줄 수는 있답니다. 멜론을 넘겨줬다.
일본 아줌마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오는 길에 주차장에 피어서 땅에 닿아있는 수국을 한 송이 꺾어왔다. 길 가에서 꺾은 꽃에는 각종 벌레와 그 가족과 친척들이 있다. 그래서 우선은 야채처럼 씻는다. 두 번 세 번 씻고 병에다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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