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27 멜론의 계절
오늘 동경 날씨는 맑고 상쾌했다.
어제 비가 많이 와서 오전에는 기온이 낮았지만, 기온도 점차 높아졌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멜론을 많이 샀다. 다른 과일도 싸서 많이 샀다. 흰살생선도 샀다. 덕분에 가방이 무거웠다. 흰살생선은 전을 부쳐서 먹고, 멜론도 하나 먹었다. 과일이 좀 비싸도 맛있는 마트였고 살 때 냄새를 맡았더니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나서 작정을 하고 많이 샀는 데, 생각했던 것보다 맛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멜론보다 참외가 훨씬 더 맛이 있다. 그런데 어제 신오쿠보에 갔을 때 참외값을 봤더니 너무 비싸서 못 샀다. 그리고 요새 참외는 사시사철 나온다. 멜론이 조금 비싸도 제철이라 먹어 두기로 했다. 집안이 멜론의 달콤한 향기로 가득 찼다. 요즘 멜론이 많이 나오는 철이라 마트에 가면 많은 종류의 멜론이 있다. 비싼 것부터 저렴한 것까지… 저렴해도 멜론은 멜론이라, 아무리 저렴해도 하나에 300엔 이상한다. 비싼 것은 몇천엔이나 한다. 어제 신주쿠에서 잠깐 봤던 고급 멜론은 2만엔이었다. 그 가게에는 멜론을 비롯한 과일들이 마치 보석처럼 조명을 받으며 빛나고 있었다. 과일도 팔자에 따라 저렇게 화사하게 화장을 해서 무대에서 조명을 받는 주연급이 있나 하면 슈퍼에 무더기로 쌓여 있는 팔자도 있다는 것이다. 멜론은 고급 과일이라, 무더기로 쌓아놓는 법은 없다. 하나나 둘씩 포장을 해서 판다. 사실 일본 멜론은 너무 달아서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내가 이렇게 충동적으로 많이 산 것은 어제 참외를 못 샀기 때문인 것 같다. 비싸도 참외를 살 걸 그랬나, 내 마음 나도 잘 모르겠다.
또 한 종류 과일은 감귤류를 좋아하는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다. 아직 일본에서는 폭넓은 인기를 얻지 못해 가격이 가끔 쌀 때가 있다. 이 철에 나오는 것으로 관서나 규슈에서 나오는 것이다. 조금 달면서 껍질에서 살짝 쓴 맛이 난다. 합쳐지면 상쾌한 맛이 된다. 속은 노란색 자몽보다 더 세련된 맛인 데, 껍질에서 약간 쓴 맛이 나서 뒷맛이 좋다. 아무래도 어른스러운 맛이라고 해야겠다. 규슈에 있는 옛날 학생이 자기가 좋아하는 과일이라고 많이 보내줘서 맛을 들였다. 계절에 따라 맛있는 게 있으면, 그 계절이 오는 게 기다려진다. 하우스 재배로 아무리 계절이 없다지만 제철에 나오는 것을 먹고 싶다. 수박을 좋아해도 추운 겨울에 수박을 맛있게 먹을 자신이 없다. 수박은 여름에 먹고 싶은 과일이다.
저녁때,날씨가 맑아서 밀렸던 옷을 손빨래해서 널었다. 주말에 교정을 해서 보냈던 원고가 2차 교정이 왔다. 주말에 일을 해서 보내야지. 일을 많이 하는 편인 데, 근래 논문을 별로 안 썼다. 지난 주말에 논문을 교정하면서 새삼스럽게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서 한다고 느낄 여유도 없이 눈앞에 닥친 일을 쫓기듯이 해왔다. 싫어하는 일을 할 사람은 못되지만, 자신이 하는 일이 역시 가장 재미있다고 느낀 적은 없다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내가 이일을 좋아서 하는 걸 느꼈다는 것은 죽든지 까무러치든지 도망갈 길이 없다는 것이다.
어제 수업이 끝나서 미국에서 재일동포 연구차 왔다는 사람과 만나서 식사를 같이하고 차를 마시며 긴 시간 수다를 떨었다. 내 책을 읽고 왔단다. 나도 오랜만에 그전에 했던 연구에 관한 말을 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뒤돌아봤다. 긴 시간과 세월,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들을 되새기는 시간이기도 했다. 가끔은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도 필요한지 모르겠다. 내가 뭘 해왔는지, 나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보여온다. 어렴풋했던 게 명확해진다. 알고 있었지만, 힘든 게 싫어서 도망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더 이상 도망갈 길이 없다. 내가 가야 할 길을… 가야지.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