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4 최악의 시나리오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흐렸다가 낮에는 맑았다. 오후가 늦게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학교에 오며 가며 큰 비를 맞은 것은 아니지만, 저녁에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맞을 뻔했다.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강의 때 교실 온도조절이 어렵다.
오늘 점심때, 동료들이 난리가 났다. 영국이 EU에 잔류하느냐, 탈퇴하느냐 투표결과를 기다리다가, 결과가 나온 것이다. 가장 쇼크를 받은 것은 영국인 두 사람이었다. 보통 때는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던 사람들이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어쩔 줄을 모른다. 확정적이지 않을 때부터 ‘탈퇴’가 확실하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휴대폰으로 뉴스를 검색하면서 보다가 ‘탈퇴’가 확정되었다는 걸 알고 기가 막힌다. 영국인 동료들은 어쩔 줄을 모른다. 동료 중 한 명도 영국이 ‘탈퇴’라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걸 예상하지 않았다. 접전이지만, ‘잔류’가 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탈퇴’였다. 그게 영국을 위해서 좋은 길이냐고 물었다.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민 때문이라’는 것이 아주 그럴듯하지만 말도 안되는 이유다. 유럽이 EU로 묶인 것은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다. EU가 되어 경제적인 은혜를 입은 것은 유럽의 선진국이다. 영국도 혜택를 받은 편이지, 손해를 본 측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 ‘이민’을 이유로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백인들이 모든 걸 지배하는 ‘대영제국’이라는 환상을 아직도 가지고 있나? 현실적으로는 ‘이민’들이 값싼 노동력과 외부의 자금 유입으로 경제적인 이익을 누리지 않았나? 영국인 동료는 ‘탈퇴’해서 영국이 어떻게 되느냐는 불안이다. 경제적이나, 사회적으로도 결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우선,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탈퇴’라는 결과가 나오면서 세계경제가 요동을 치고 있다.
동료들과 같이 우려하는 것은 영국의 ‘탈퇴’가 유럽과 세계에 미칠 영향이다. 유럽의 다른 나라 ‘이민’을 반대하는 우파에게 아주 좋은 구실을 제공하게 된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나라가 ‘탈퇴’하기에 좋은 구실이 될 수도 있다. ‘이민’이나 무역이 보수적으로 폐쇄적인 쪽으로 흘러갈 빌미를 준다. 당장 미국 선거에 어떤 영향을 주겠냐는 것이다. 미국친구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두렵다. 미국친구가 한숨을 쉬면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국적을 버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갈 곳이 없다고.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지만, 미국적이고 미국인이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국적 선택에 차선으로 ‘일본’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영국의 ‘탈퇴’가 트럼프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과가 될까 두렵다. 일본에서도 7월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고 있다. 자민당이 압승해서 헌법을 개정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걸로 보고 있다. 그동안 사기쳤던 아베노믹스가 약발이 떨어지면서 엔고가 되었는데, 엔화 가치가 높아지면서 힘든 일본경제는 더 힘들고 생활은 어려워진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는 걸 시초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세계가 균형을 잃고 파멸의 소용돌이로 치닫고 있다.
조금도 낙관적인 것이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강대국들이 미친듯이 제멋대로 한다면, 세계 제 3차 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미국친구도 같은 의견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탈퇴’를 원하는 영국사람들은 결코 돌아갈 수 없는 행복했던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노스탤지어다. 현실이 아니다. 약자를 적으로 몰아 자신들 스스로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모는 것은 아닐지? 최악의 시나리오가 되지 않기 위해서 미워하는 감정이 아니라, 모두가 살기 위한 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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