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10 살인적인 무더위
오늘도 동경은 무섭게 덥다. 지난 토요일부터 계속 최고기온이 36도 정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밤기온, 최저기온이 25도까지 내려간다는 것이다. 바깥 날씨가 너무 덥다 보니 건물 안 냉방 속에서 몇 시간을 지내면 머리가 아파온다. 지난 토요일에는 너무 갑작스럽게 더워져서 사람들이 적응을 못했다. 전날까지 습기가 많아도 기온이 그렇게 높지는 않아서 지낼 만했던 것이다. 일요일 저녁에 산책을 마치고 모기향을 사러 산을 내려갔다. 서늘해지는 밤이 되서 8시가 넘어서 산을 내려갔다. 아직도 길에는 낯의 열기로 후꾼 달아올라 달구어 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식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우선 모기향을 사고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마트에 갔다. 아이스크림이 하겐다츠가 좀 남아있고 완전 싹 팔려서 없다. 다른 마트에 가도 없다. 세상 사람들 생각하고 느끼는 게 비슷한 모양이다. 또 다른 마트에 가도 아이스크림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한 개도 없다. 눈 앞에 벌어진 현실을 믿을 수가 없지만 사실이다. 어처구니없이 허탈한 심정으로 집에 왔다.
월요일, 화요일도 엄청나게 더웠다. 말이 최고기온 36도지, 도심이면 체감온도가 40도가 넘는다. 바람이 불어도 온풍기에서 열풍이 나오는 것 같다. 샤워를 하고 돌아서면 땀이 난다. 샤워를 하고 몸을 닦다 보니 피부가 쓰려 온다. 토요일에는 더워진지 하루 만에 목에 땀띠가 났다. 아이고 맙소사…
어제는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데, 마지막 시간에는 머리가 띵해온다. 학생들에게 내 머리가 녹아가는 것 같아 자신이 없다, 더위 탓이라고 생각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화요일에는 학생들이 집중력이 높아서 수업은 괜찮았다. 금요일에 발표하는 시험이 있는 데 어떻게 잘할지 걱정이다.
오늘은 500명이 넘는 수업이 있었다. 오늘은 앙케트 조사도 두 개나 끼어있다. 수업 마지막에 결론 부분이 있어서 결말까지 어떻게 잘해야 할 텐데… 날씨가 무섭게 더운 데도 불구하고 다음 주에 리포트를 제출을 하고 수업이 끝나서 그런지 학생들이 많이 온다. 요즘 일본 대학들은 수업 기간이 길어졌다. 학기말 시험이 끝나면 8월에 들어서야 방학이 시작된다. 일 년 중 가장 더운 시기에 학생들도 시험을 본다고 고생이 말이 아니다. 선생들도 채점을 하느라고 고생을 한다. 이쯤 되면 왜 여름방학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다.
아는 후배가 지나간다. 후배에게 줄 논문이 있어서 좀 붙잡았다. 후배 얼굴이 좀 이상하다. 눈이 풀려있다. 말을 들었더니 첫 교시 수업을 하다가 쓰러졌단다. 쓰러져서 의식을 잃어서 학생이 양호실에 연락을 했단다. 양호실에서 직원이 와서 데려다가 주사를 놨단다. 그리고 2교시 수업을 하는 데, 일어설 수가 없어서 앉은 채 수업을 했단다. 다음 주로 학기가 끝나니 휴강도 못해서 그 상황에 수업을 했단다. 기가 막히다. 화장실에 갔더니 경호하는 사람이 비틀거리는 사람을 데려왔다. 화장실에서 구토하는 소리가 들린다. 조용히 더위로 인해 쓰러지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다.
강추위나 태풍, 비바람에는 맞서서 싸우기나 하지, 더위에는 어쩔 수가 없다. 도심에는 달구어진 아스팔트에서 사람들이 서서히 구워져 가는 것 같다. 아니면 찜통에 들어있는 것 같다. 구워지거나 찜 쪄진다고 해도 맛있게 먹을 수도 없을 텐데… 살인적인 더위로 인해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생활을 하기도 힘들다. 이쯤 되면 강추위나 태풍 때처럼 학교나 직장을 쉬는 게 좋겠다. 살인적인 더위에 사람들이 쓰러져 가면서 목숨을 걸고 직장에 가거나, 학교에 가야 하는 건 아니다. 이 더위는 약한 사람들에게 ‘테러 수준’의 공격이 된다. 이런 '테러'에도 대책이 필요하다.
럭비를 하는 학생이 내 수업을 돕는다. 지난 일요일 그 뙤약볕 아래서 운동을 했단다. 내가 그걸 듣고 세상에 그런 일을 하면 안 돼, 안전문제야 했더니 학생이 정신적인 문제라고 한다. 정신만 바짝 차리면 불 속에 있어도 서늘하다는 건, 수련을 한 프로들이지 학생들에게 할 게 아니다. 이런 정신론을 들으면 기가 막혀온다. 완전 억지로 학생들을 학대하거나 고문하는 것에 가깝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것도 훈련이라고 한다.
나는 찜통더위 속에서 시험을 보는 것 자체가 고문이라고 본다. 이지메도 아니고 사람들이 ‘폭력’에 익숙해져서 받아들인 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더위’에도 참고 버티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쓰러지면서… 이건 지옥이 따로 없다.
자연변화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살인적인 더위에 대항해서 싸워 이기려고 하지 말고 어떻게 피해서 살아남을 힘을 온존해야 한다. 어쩌다가 더위 정도에 이렇게 비장해져야 하는지… 아, 살기 힘든 세상이다. 접시꽃도 지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