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09 재해 열도
오늘 동경은 고온다습한 날씨였다. 최고기온 32도에 습도가 83%나 된다. 어제 한밤중까지 원고를 교정하고 밤 3시 가까이에 교정한 원고를 우체통에 넣고 왔다. 어젯밤은 습한 찬바람이 불더니 오늘 아침에는 눈부신 햇살이 비쳤다. 햇살이 고마운 것이 아니라 무섭다는 것이 문제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기온이 쭉쭉 올라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오전에 준비해서 도서관에 갔다. 신문을 봤더니 일면 기사가 서일본에 물폭탄 소식과 요코하마에서 간호사가 20명 이상에게 계면활성제라는 독물을 주입해서 환자가 사망한 뉴스였다.
도서관에 가기 전에 뉴스를 봤더니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가 물에 잠겼는데 피난해서 대피소에서 지내는 사람이 8천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 무더위에 멀쩡한 사람도 쓰러질 정도인데 피난 생활이 힘들 것이다. 급하게 피난해서 갈아입을 옷이 부족하다는 기사가 떴다. 집에 있는 옷을 챙겨서 보내는 것은 문제가 없다. 가만히 생각하니 나처럼 여기저기서 옷을 챙겨서 보내면 물류에 혼란이 생기고 공무원이 옷을 정리하느라고 다른 일을 못하게 된다. 그냥 지켜보는 것이 돕는 것이다. 그래도 신경이 쓰이니까, 아는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다행히 그들은 옆집으로 피난했다가 돌아왔고 피해가 없단다. 다른 친구에게도 연락했다. 피해가 없느냐고 피해가 없단다. 아는 사람에게 피해가 없으면 된 것으로 여겨야지. 근래 들어서 일본에 재해가 너무 자주 일어나서 '재해 열도'라 불린다.. 빈번히 일어나는 자연재해에 사람들이 적응해서 익숙해지고 말았다. 놀라지도 않고 남의 일을 걱정할 여유가 없다. 그저 내일이 아니길 바란다.
지난 목요일 정전으로 오전이 휴강이었다. 금요일에도 전철을 탔더니 지연되었다가 급행이 완행으로 바뀌더니 결국 지각했다. 게릴라성 호우로 인한 것이었다. 내가 사는 곳에 비가 오지 않아서 전혀 몰랐다. 이틀 연속 전철이 제대로 운행이 안된 것이다. 전철이 늦으면 노심초사하던 이전과 달리 전철이 늦어도 그러려니 한다. 내가 잘못해서 늦은 게 아니니까, 어쩔 수가 없다.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저녁에 약속이 있었다. 금요일은 교외에서 대학을 그만둔 동료와 식사를 했다. 세상이 너무 뒤숭숭하다는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지금 일본에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사람이 거의 없다.
토요일에는 원래 동경역 가까이 있는 마루(마루노우치) 빌딩에서 약속을 했는데 너무 혼잡하다고 팔레스호텔 라운지로 약속 장소가 변경되었다. 나도 교외에 살아서 번쩍거리는 도심에 나가는 일이 드물다. 정말로 오랜만에 호텔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고 고급 타이 레스토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호텔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주위를 보고 이런 장소에 온 게 오랜만이라는 걸 느꼈다. 요새는 운동화를 신고 다녀서 장소에 걸맞지 않은 차림으로 여겨졌다. 전에도 고급 호텔에 다니면서 운동화를 신고 다녔지만 장소에 걸맞고 않고를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결혼식이나 다른 약속을 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모른다. 괜히 시골에서 올라간 사람인 느낌이다.
마루빌딩 35층에 있는 고급 타이 레스토랑 망고트리에 예약해서 4명이 갔다. 이런 고급 타이 레스토랑에 간 것도 정말로 오랜만이다. 일본에서는 간 적이 없다. 지금은 타이 레스토랑이 세계적으로 유행이라서 외국에 가도 괜찮은 타이레스토랑이 꽤 있다. 그런데 꼭 고급, 비싼 곳을 갈 필요가 없기에 굳이 격식 차려서 비싼 곳을 가지 않는다. 모임을 주최하는 사람이 예약해서 그냥 간 것이다. 식사하는데 빌딩이 휘청 흔들렸다. 흔들림이 꽤 커서 큰 지진이라는 걸 알았다. 빌딩이 새 것이라서 그런지 흔들림도 충격을 흡수하는 것 같았다. 지진이 났는데도 레스토랑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다. 너무 익숙한 것이다. 집에 와서 확인했더니 치바에서 진도 6이라는 강진이 있었다. 동경역에서 치바는 그다지 멀지 않아서 그렇게 흔들렸구나.
근래 일본에 자연재해가 많이 일어난다. 재해가 아닌 일상도 매일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오늘도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해서 일을 마치고 돌아올까? 사람들이 지쳐있다.
조금 전에 있었던 오사카 다카츠키시의 큰 지진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아는 동료 엄마 집이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단다. 유리창이 깨지고 집안이 엉망이 되었다고 한다. 그 동료도 몸 상태가 나빠서 휴강하고 목소리도 안 나왔다. 동경에는 딸 자매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엄마가 동경에 오는 것은 어떠냐고 했더니 살던 곳을 떠나지 않는단다. 지진이 난 걸 치우러 동료가 가야 하는데 동료가 쓰러지게 생겼다. 지진이 나지 않아도 아직 젊은 딸도 건강에 이상이 있을 정도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지진 피해를 입은 엄마 집에 가서 돕고 싶어도 도울 수가 없다. 지금 일본에서 사는 사람들 상태가 이렇다. 자신과 주변을 챙기기도 힘들 정도로 신체적, 정신적 여유가 없다.
이번 물폭탄으로 수해를 입은 곳은 언제 복구가 되어 거기에 살던 사람들이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까? 당사자가 아니면 뉴스에 나오지 않으면 잊고 말 것이다.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없겠지. 나이를 먹은 사람들은 복구할 힘도 없겠지. 이렇게 자연재해로 인해 사람들이 더욱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내가 피해를 입지 않았고, 도울 수 없어도 큰 자연재해를 보면 막막하다. 이런 재해에 대해 국가가 성의를 가지고 대처해줬으면 좋겠지만,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까? 아무리 자연재해라도 피해를 입은 사람은 죄가 없는데,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도 같은 사회에 살고 있어서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자신의 피해가 없어도 전혀 산뜻한 기분이 될 수가 없다. 모두가 언제 안전한 생활에서 튕겨 나가서 '난민'이 될지 모르는 위태로운 일상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