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31 리포트 마감일
오늘도 동경은 아침부터 안개가 낀 듯 흐린 날씨였다. 하루종일 찌뿌둥한 불쾌지수가 만만치 않은 날씨였다는 것이다.
아직도 헷갈리는 모드에서 헤매고 있다. 어제 카레재료를 사다가 오랜만에 치킨카레를 만들었다. 요새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지 않아 야채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냉장고에 있던 고야라는 쓴 맛이 나는 야채를 두 개 넣었다. 기본적으로 양파를 볶고 당근을 볶은 다음에 넣은 거다. 감칠맛이 부족한 것 같아서 다시마를 넣었다. 카레루는 항상 사는 브랜드에서 나온 여름철 한정판(오른쪽)이였다. 근데, 이 게 결정적인 실패였던 것 같다. 어제 오후에 TV를 켜놓고 카레를 만들었다. 카레를 완성하고 보니 뭔가 맛이 부족하다. 그래서 새우가루를 넣었다. 어쨌든 어제저녁 카레를 먹었다. 오늘 아침에 뚜껑을 열어보니 정체불명의 기름이 굳어 있었다. 기름을 싹 걷어내고 맛을 보니, 아주 맵다는 데, 맵지도 않고 된장찌개 비슷한 맛이 난다. 어제 분명히 여름철 한정판 카레를 만들었는 데, 어느새 된장찌개로 둔갑을 했냐고, 된장은 넣은 적도 없다. 아, 또 헷갈린다. 내가 드디어 치매증상인가, 아침에 고추를 잘라서 넣었다. 된장찌개가 완성되었다. 새로운 발명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된장이 안들어간 된장찌개라는 요리를… 된장찌개는 그냥 된장을 넣고 끓인 게 좋다. 된장찌개로 여기고 먹기로 했다. 밑에 사진은 여름에 유일하게 먹는 인스턴트 면이다.
아침부터 주변 환경 미화 작업을 하느라고 시끄럽다. 잔디 깎는 소리가 계속 울린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주위가 시끄러우면 짜증이 난다. 히도츠바시대학에 교수님을 만나러 갈까 싶어서 전화를 했더니 오늘은 대학에 안 가신단다. 점심때 가까운 시간이라, 어떻게 할까? 학교도서관에 도망을 갈까, 생각했다. 점심시간에 작업을 쉴 때, 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를 자르고 싶은 거다. 도구를 챙겨서 목욕탕에서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한시간 걸려서 머리를 자르고 빨래를 널었다. 오후 작업이 시작되어 소음이 스테레오로 들린다. 창문을 닫고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집중이 안된다. 내일은 일찌감치 학교도서관으로 도망을 가야겠다.
오늘은 리포트 마감일이다. 같은 과목이 세 클래스였다. 학생들이 열심히 하는 과목이었지만, 열심히 안 한 학생들도 있는 법, 점수가 모자란 학생에게 리포트를 써내라고 한 거다. 마지막 수업에서 받은 감상문을 보니 딱 한 명이 문제다. 평상점 점수가 공개되기 때문에 대충 예상을 할 수 있을 텐데, 아주 쉽게 생각한 모양이다. 학생이 쓴 내용은 “ 좀 더 많은 걸 가르쳐 주길 바랬다. 예습, 복습은 싫었다. 잘 모르는 채 수업에서 채점을 하는 게 싫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수강을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가르쳐 주길 바랬다.” 여기서 키워드는 “싫었다”가 된다. 이 학생은 잘 따라왔는 데, 다른 학생들이 얼마큼 하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마지막 단계에 와서 평상점을 카운트했더니 모자랐다. 그 걸 인정하려니 화가 나고, 레포트를 쓰려니 귀찮아진 거다. "모든 게, 선생 탓이야"인 심정이 된 것이다. 이런 심리는 공부를 하지 않아서 단위를 못 받을 위험에 처한 학생의 심리인 것 같다. 왠지, 내가 개인적인 감정으로 자신을 싫어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느낀다. 며칠 동안신경이 쓰였다. 개인적으로 메일을 보내 리포트를 작성해서 단위를 따라고 해야 할까…
오늘 아침에 메일을 열어보니 그 학생이 메일에 리포트를 첨부해서 보냈다. 메일에는 자기가 쓴 감상문에 관해서 사과를 했다. "마지막 감상문에 부적절한 내용을 써서 제출한 것을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두번 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리포트를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 다행이다. 문제의 한 명에게서 리포트가 왔다. 흐린 날씨가 갑자기 화창하게 맑아지는 것처럼, 눈앞이 밝아진다. 이 녀석 때문에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내가 답신을 보냈다. “리포트를 받았어요, 실은 마지막 감상문을 보고 리포트를 안내는 게 아닌가 걱정을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해서 단위를 받았으면 했거든요. 그런데 리포트를 제출하고 자신의 잘못을 사과한다는 것, 용기가 있어요. 무슨 일이든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즐거운 여름방학을!”
근데, 내 성격이 문제다. 왜 다른 학생들이 써낸, 감동과 사랑이 넘치는 감상문을 싹 잊고 문제가 되는 한 명에 집착을 하냐고??? 아니, 백퍼센트 수강생이 좋다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러니까, 동료나 후배에게 욕을 먹고 미움을 받지, 너무 욕심이 많다고… 당신 그러는 거 아냐, 안다. 그런데 내 수업에서는 그 게 당연한 걸 어쩌리오. 이 글은 내 동료나 후배가 읽을 일이 없으니까, 안심하고 쓴다. 정말로 다행이다, 길잃은 양 한 마리? 아니다, 나도 잘 모르지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같이 생각하는 거다.
감동과 사람이 넘치는 감상문은 당분간 보관한다. 적어도, 그 감동과 사랑이 식을 때까지… 아직 식지 않은 감동과 사랑이 쌓여서 집이 점점 좁아진다. 이대로 가면 언젠가 감동과 사랑에 빠져 죽는 사건이 날지도 모르겠다…아, 불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