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에서 원전반대 데모
일본사회 2011/12/12 01:15 huiya
어제 동경 날씨는 기온은 낮았지만 맑았다.
같은 단지에 사는 친구와 같이 원전반대 데모에 갔다. 지난 번 9월19일 메이지공원에서 6만명, 대규모 반대 데모가 있었는 데도 불구하고 거의 뉴스로 보도를 안해서, 많은 사람들이 데모가 있었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다. 나도 외국에 있는 친구가 보내온 정보를 통해서 일본에서 크고 작은 규모의 데모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학교 수업시간에 그 걸 자료로 보여주면서 이 번에 집회가 있다니까, 학생들에게 내가 가서 볼려고 한다고 했다.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고 온다고. 학생들이 “선생님 가보세요. 그리고 우리에게 알려주세요”란다. “거기에 갈 때는 오늘 입었던 LOVE가 새겨진 옷을 입고 가세요,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 주세요”. 아예, 복장과 할 일 까지 지정을 해 준다. 내가 그 일을 제대로 해 낼지는 모르지만, 가서 봐야지.
지금 까지 이런 저런 시민운동에 관련을 가져왔지만, 주로 만들고 준비를 하는 쪽이였지, 사실상 단순히 참가자로 데모를 간 건 처음이다.
뜬금없이 데모를 갈 때는 옷을 멋있게 입어야지 생각했다. 학생들이 입고 가 달라고 한 옷을 입고, 빨강 반코트를 입고, 전신을 새빨갛게, 추위에 대비해 챙겨간 작은 담요도 빨갛다. 구두는 검정 버킨스톡에, 검정 백을 메고, 검정 세무장갑에, 편한 베르사체 선글라스를 끼고 갔다. 친구가 구두가 귀엽다고 한다. “글쎄 이 구두를 십년도 넘게 신어서 구두에게 미안할 정도야”. 근데 중국에서도 일년을 같이 지냈고 편하다보니 출장 때도 많이 신어서 같이 다닌데가 많아서 정이 들었다. 창을 갈고 수리하면서 신었다. 정말로 이렇게 만만하게 오래 신을 수 있다면, 버킨스톡은 비싸지 않다.
히비야공원 야외음악당에 일찌감치가서 앉아서 기다렸다. 친구가 지난 번 때는 한시간 전에 회장에 도착했는 데 사람이 많아서 회장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어제는 집회가 두 군데로 나눠져서 사람이 적을 거라고 했다. 일러서 그런지 사람이 적다. 친구가 점심으로 주먹밥을 싸오고 방석으로 쓸 신문지도 가져왔다. 주먹밥을 먹고 수다를 떨면서 앉아있으니 앞자리에 산타가 입는 것 같은 빨강 점퍼를 입은 여자 분이 앉는다. 자기 고향이 후쿠시마라고 하면서, 부모님이 소마시 가까이서 농사를 지었단다. 그러면서 그 지역에서 먹지도 못하고 팔지도 못 할 농사를 하면서 투쟁 하는 사람들 얘기를 해준다. 그 지역이 피해가 심해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도 다른데로 피난해서, 농사를 지을 사람이 부족하단다. 그래서 남은 세 농가가 생산을 위한 농사가 아닌 투쟁을 위한 농사를 계속하고 있단다. 열 농가가 있던 걸 세 농가가 맡아서 하고 있다고 한다.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사람이 먹지도 못 할 걸 만드는 심정을 생각하니, 그리고 위험한 지역에 남아서 투쟁을 위한 농사를 한다는 것도 슬픈 일이다. 투쟁을 위한 것이라는 건, 오염된 땅에서 생산하는 게 얼마나 오염이 되는지를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그렇지, 열 농가가 했다는 농사를 세 농가가 맡아서 유지하는 것도, 힘들 텐데. 그야말로 투쟁이구나.
훼민에서도 나왔다. 오랫만에 반가운 얼굴을 봤다. 여자분들 참가자가 많다, 회장에서도 전단을 돌리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친구와 내가 깔깔대고 웃은게 있다. 책 선전이었는데, '분노가 끓는 기지의섬 오키나와-거짓말하는 일본정부는 하브(오키나와 맹독 뱀)에 물린다'는 것이였다. 하브도 놀래겠다. 물려면 자기가 물지, 왜 하브에게 돌려 하면서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오죽 답답하면 하브까지 등장해야 하는지, 하브마저도 분노하고 있다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집회가 시작된다. 무대에는 1000만명 서명운동, 200만명은 서명을 모았단다. 세상에 천만명이나 동원이 안되면, 정치를 움직일 수 없다는 건가. 노벨상 작가인 오오에씨는 지난 9월19일 집회에 6만명이 모인것은 자기 평생에 두 번째로 본 대규모였다고 했다. 가장 컷던 것은 오키나와에서 있었다고 한다.
나는 카메라를 가져가는 걸 잊었다. 전 날 밤까지 사진들도 블로그에 올려서 준비를 했는데 그만 잊은 것이다.
히비야 공원에서 집회를 마치고, 걸어나와서 동경전력 앞, 긴자, 동경역을 지났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보더군요. 카메라로 사진 찍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일본 사람들은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외국인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응원을 해주더랍니다. 저는 앞 쪽에 있었는데, 맨 앞에는 스님들이 서서 불경을 하셨답니다. 그리고 얌전히 질서정연하게 행진을 해서 갔답니다. 큰 길을 지나가는 데 차들이 서있는 걸 보니까,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참가자는 5,500명이였다고 합니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다. 이 사진이 잘 보일지 모르겠다.
내가 썼던 피켓
집회가 시작되기 전 그래도 자리가 꽤 메꾸어졌다.
이 건 내가 행진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찍은 거다.
이 것도 동경역 앞에서 나중에 오는 사람들을 찍었다.
많은 경찰들이 동원되어 안전하게 유도를 해 주었다. 길에는 은행잎이 노랗게 예쁘다.
내가 같이 걸었던 팀, 선두에 서셨던 스님들, 근데 BGM 좀 쳐졌습니다.아무래도 불경이라서 그랬다는.
골 지점에 사민당 당수인 후쿠시마씨가 나와있다. 학부생 때, 난민문제로 같이 일을 한 적이 있는데, 나이를 먹었네요.
두살 짜리 아이 유모차에 엄마가 피켓을 끼고 행진을 했다, 내가 옆에서 찍었다. 아이야, So cooooooool!
히비야 공원을 나갈 때
무대에서 노벨상 작가인 오오에 겐자부로씨가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왔네요.
저 쪽은 단체에서 나온 사람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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