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마켓과 달맞이
바겐헌터 2012/05/06 00:16 huiya
올해 골덴위크는 긴 연휴였다. 그런데 대부분 비가 왔다.
오늘이 처음으로 쾌청한 좋은 날씨였다.
어제도 아침에 날씨가 잠깐 개일 눈치여서 축제를 하고있는 역근처에 갔더니 비가 올 조짐을 보였다. 내가 보고 있던 프리마켓도 서둘러 짐을 꾸린다. 나도 비맞기 싫어서 모노레일을 타고 집근처에서 내렸다. 도보로 10여분 거리, 역하나를 타고 와서 내려보니 장대같은 소낙비가 내리고 있다. 역에 항상 놓여있는 우산도 하나도 없다. 역에는 몇사람이 어처구니 없는 시선으로 비가 오는 걸 보고있다. 비가 너무 크게 와서 역에서 꼼짝달싹도 못하는 것이다. 우산으로는 감당이 안되는 비가 오는 거다. 역에서 꼼짝없이 발목을 붙잡힌건 엄마와 아이들이다.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축제마당에 갔다가 비가 와서 돌아온거다. 나는 어제와 오늘 축제마당에서 열리고 있는 프리마켓에 가서 옷을 좀 사왔습니다. 이 옷들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지요.
저는 할일없이 빈둥빈둥 집에서 책도 별로 안읽고 심심한 휴일을 보내고 있었지요. 오늘은 날씨가 맑아서 이불을 널고 빨래를 하고 겨울옷도 좀 빨고 프리마켓에는 천천히 나갔다. 프리마켓에서 뭔가 건지는 건 가보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간다면, 일찍 가던지 늦게 가는게 좋다. 일찍가면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건질만한 물건을 건질수 있는 확율이 높다. 늦게 가면 건질만한 물건은 안남을지 몰라도 남은 건 가격을 싸게 팔아서 운이 좋으면 싼 가격에 뭔가를 건질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심심풀이로 가는 사람이라 늦게간다. 프리마켓에 물건을 내놓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눠진다.
자기가 쓰던 물건이나 입던 옷, 선물등을 가져와서 파는 사람. 장사로 가게를 내는 사람으로 나눠진다. 자기가 쓰던 물건을 가져온 사람들은 물건에 대해서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팔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냥 말을 하다보면 물건에 관해서 자기가 어디서 어떻게 샀고, 쓰고 있었다며, 가격이 점점 내려간다. 가격을 깍아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물건이 마음에 들고 가격이 맞으면 사고 비싸면 안사면 되니까. 나는 가격을 싸게 하려고 말을 하는 건 아니다. 물건에 얽혀있는 사연을 듣고, 물건에 관한 지식도 얻으려고 하는 거다. 대부분 자기 물건을 파는 사람이나, 자신이 작품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나누는 걸 아주 좋아한다. 작품해설을 들으면서, 그러냐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면서 뭔가를 공유한다. 외국에서는 작품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고 연락처를 받아온다. 물건을 사는 일은 별로 없다. 특히 골동품가게에서는 말만 듣다 나온다. 기본적으로는 호기심에서, 때로는 심심풀이로, 때로는 공부삼아서, 그런 가게에 간다. 물건을 사는 것보다 말을 하다보면 서로 자기소개를 하기도 하고 개인적인 말도 한다. 그 지역에 관한 얘기, 가이드북에 실리지않는 역사나 장사하는 세계 얘기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건 물건보다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얻는 공감이나 이해며, 사람이다.
저녁에는 산책을 나갔다. 내가 나가는 산책길은 저녁시간에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한 두 사람 마주칠까 말까한다. 산책은 보통 한시간 하는데 아직 풀코스로 산책을 못했다. 산책을 나갔더니 둥근 오렌지색 보름달이 떠있었다. 오늘 산책은 달맞이산책으로 목적이 바뀌었다. 달이 잘보이는 산책길을 골라서 달을 바라보며 걷는 것이다.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는 달도 올라가고 내리막길을 내릴 때는 달도 같이 내려온다. 숲에 가려서 안보이다가 숲을 지나면 다시 보이고 술래잡기는 아니지만, 같이 좀 놀았다. 집 가까이에 있는 내가 달맞이를 하는 장소에 갔더니 벌써 달은 거기서 바라볼수 위치를 넘어섰다. 다시 달이 잘보이는 곳으로 가서 달을 봤다. 집에 돌아와서도 베란다 문을 열고 달빛이 들어오게 했다. 지금도 베란다에 나가서 달을 봤더니 전선줄로 달에 금이 그어져 몇토막으로 나뉘어져있다.
달이 전선줄에 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