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동경은 최고기온 28도로 비가 오다가 그쳤지만 흐린 날씨였다. 오전에는 어제 최고기온 35도까지 올라간 여파가 남아 있어서 비가 오는데 마치 저온 사우나에 있는 느낌일 정도로 땀이 났다. 어제는 다시 아주 더운 날이었지만 일이 있어서 가장 더운 시간에 시내에 가야 했다. 더운 시간이어도 에어컨을 켠 실내에서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서 날씨가 어땠는지 둔감해진다. 어제는 일찍 오느라고 했지만 집에 돌아온 건 밤 11시 반이 넘어서다.
오늘 오전에는 신선한 야채를 사러 가서 오이만 4 봉지를 사서 왔다. 실은 그때도 좀 이상한 공기를 느꼈지만 그냥 그런가 했다. 야채 가게에 손님이 한 명도 없어서 나 밖에 없었다. 옆에 전망이 좋은 레스토랑에도 보통은 손님이 좀 있는데, 날에 따라서는 만석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데 손님이 딱 1명밖에 없어서 분위기가 아주 이상했다. 그 가게에서는 도시락도 파는데 오늘은 도시락도 전혀 없었다. 가게 건너편 길에 떨어진 복숭아도 주워서 왔다. 버섯이 나왔는지 오며 가며 봤지만 버섯은 나오지 않았다. 날씨가 오늘부터 기온이 내려가고 며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다. 비가 많이 오면 버섯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낮에는 집에서 지내면서 뉴스를 봤더니 아베 장례식으로 도배가 되었다. 8일부터 아베에 관한 뉴스로 넘쳐날 정도다. 10일 선거에서는 자민당이 압승해서 단독 과반수를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아베 효과로 동정표가 모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요 며칠 뉴스를 보고 있으면 일본 전체가 마치 아베 사망에 애도를 표하는 추모의 물결로 넘치는 걸로 보인다. 오늘 뉴스를 봐도 절에 사람들이 많이 와서 헌화를 중단했다고 한다. 나는 며칠 동안 매일 주위 사람들과 만났다. 깊은 얘기는 하지 않아도 보통 인사하고 수다를 떨었다. 정치성향도 매우 다른 사람들이다. 보수일 거라는 사람도 있고 공산당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도 있다.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사람도 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 태도가 하나 같이 비슷하다. 아베에 대한 화제를 꺼내지 않는다. 아베의 아도 발설하지 않는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지금 일본에는 아베가 피격되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서 뉴스에서는 난리가 난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들은 정말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마치,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는 함구령이라도 내린 것 같다. 그런 분위기의 절정이 오늘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뉴스를 보고 필요에 따라 스크랩하지만 오늘 아베 장례식 일색으로 애도와 추모를 강요하는 분위기에 머리가 아파왔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아베의 사망을 애도하고 추모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닐 것 같은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일본 매스컴에서는 이런 걸 참 잘한다. 그래서 뉴스만 보고 있으면 마치 사회 전체가 그런 걸로 알기 쉽다. 다른 건 아예 매스컴에서 보도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은 막을 내린 지 2년이나 되었지만 아베는 여전히 자민당 최대 파벌 수장으로 뒤에서 상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베로 인해 스가 총리나 기시다 총리도 자신들의 뜻을 펼칠 수가 없는 구조다. 아베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기시다 총리가 나올 때도 기시다의 친구였으면서 대항마로 다카이치를 추천해서 응원했다. 아베가 자민당 최대 파벌 수장인 것도 있지만 정적에게는 가차 없이 보복하기에 그게 두려워 아베에 대항할 세력이 없었다고도 할 수 있기에 아베는 총리를 사퇴하고도 흑막으로 실세였다. 그가 정치가로서 문제가 많은 것은 하나하나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그런 인물이 일본 정치에서 최장기 집권 총리였다는 건 불행한 일이었다. 그런 아베가 피격을 당해 극적인 사망을 하자, 이번에는 그를 우상화, 신격화하는 보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뉴스만 보면 마치 일본 전체가 그런 분위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변을 보면 입을 꼭 다물고 있지만 추모하는 분위기는 전혀 보이지 않고 냉랭한 분위기마저 감돈다. 아예, 관심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기묘한 공기를 실감한 것은 오후 늦게 산책하면서다. 오늘 날씨가 너무 흐리고 기분도 꿀꿀해서 옷을 좀 밝게 입었다. 아래는 옅은 그레이 쫄쫄이를 입고 속에 우유색 티셔츠에 겉에는 기장이 긴 나시 티셔츠가 핑크색과 우유색, 남색이 들어갔다. 그렇게 화려한 색상은 아니지만 화사한 편에 속한다. 운동화는 흰색 망사에 검은색 굵은 밴드가 있고 형광색 오렌지색 끈이다. 친한 이웃과 산책하기에는 시간이 좀 늦어서 혼자 산책로를 걷고 좀 먼 곳에 있는 공원과 가까운 공원, 세 군데를 돌았다. 평소에는 양 쪽 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꽤 있고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아까, 오전에는 비가 와서 산책을 할 수가 없었고 오후에는 개었지만 햇살이 강했으니까, 산책하기에 적당한 시간대가 늦은 오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말로 사람이 없다. 내가 이상한 건가? 하면서 아무리 걸어도 큰 공원에도 평소라면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텐데 학생들밖에 없다. 다른 공원도 마찬가지였다. 공원만이 아니라, 가는 길 오는 길에도 사람이 정말로 없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평소와 다름이 없다. 산소가 적은 이상한 공간에 빠진 느낌이 들었다. 이건 뭘까? 마치 숨을 쉬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 억압된 분위기다.
그런데, 요새 도배가 된 아베 사망과 관련된 뉴스 분위기로 보면 일종의 '자숙'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다. 아베의 사망에 대한 애도나 추모와 연결되어 일본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 사망했으니 알아서 '자숙'하라는 분위기다. 뭘 '자숙'하는지에 대해서는 음주가무만이 아니라, 분위기를 보면서 각자 판단해야 한다. 주위를 봐가면서 행동에 유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오늘은 산책조차 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인 거구나. 신선한 야채를 사러 가거나 전망이 좋은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 것도 '자숙'해야 할 사항인지 모른다. 적어도 나처럼 기분이 꿀꿀하다고 화사한 차림으로 산책을 하는 건 용납될 수 없는 일에 속하나? 형광색 오렌지색 운동화 끈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항목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 일본에서는 구체적인 말이 없어도 눈치를 보면서 일사분란하게 다 같은 행동을 한다. 마음은 어떻든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그런 걸 눈치채지 못하고 하고 싶은 대로 했으니 거의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알면서 반발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 귀찮은 걸 할 정도로 젊지는 않다. 그렇다고 거무칙칙한 복장을 하고 산책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 무언의 억압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아베의 장례식 날 이상한 걸 연달아 봤다. 먼 공원에 가면서 강가 길을 걸었는데 뱀이 탈피한 껍질이 있었다. 껍질을 보면 아주 굵고 큰 뱀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아주 잘 보이게 뱀 껍질을 걸어놨기에 그 길을 지나는 사람은 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연못이 있는 공원을 돌고 있을 때 저 쪽에 뭔가 이상한 물체가 있어서 봤더니 죽은 뱀이었다. 굵지 않지만 길이가 꽤 긴 뱀이었다. 왜 뱀을 죽였을까? 뱀이 탈피한 걸 보는 일도 아주 드물다. 뱀 자체를 보는 일이 드물다. 그런데 오늘은 뱀이 탈피한 껍질에 죽은 뱀까지 연달아 봤다. 기묘한 공기와 더불어 이상한 걸 본 날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좀 이상한 날이었다. 이게 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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