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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생활

폭염에서 사는 방법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 35도, 최저기온 28도로 밤이 되어도 식을 줄 모르는 뜨거운 날이다. 내일과 모레는 최고기온이 37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일기예보를 보면 이런 폭염이 일주일 이상 지속된다고 한다. 나도 보통은 저녁을 지나 밤이 되면 에어컨을 끄고 집안 온갖 창문을 다 열고 환기를 시키는데 오늘은 밤 10시가 넘어도 에어컨을 켠 채로 지내고 있다. 밤 10시가 넘었지만 바깥 기온이 29도라고 한다. 가끔 창문을 열고 에어컨을 끄고 환기를 시키는 게 좋을지 타이밍을 보고 있지만 오늘 밤은 몇 시가 될지 모르겠다. 나는 3층에 살아서 웬만큼 더운 날도 저녁이 되면 선선한 바람이 불고 밤에는 창문을 열고 지내는 것이 쾌적한 편이다. 하지만 오늘과 같은 폭염에 최저기온까지 높은 날은 밤에도 더 이상 기온이 내려가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바깥 기온은 29도이고 에어컨 설정 온도는 27.5도인데 바깥은 아직도 후끈후끈한 열기가 전해진다. 지금까지 에어컨을 켜고 잔 일이 없는데 어쩌면 에어컨을 켜고 자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요새 폭염이 계속되고 있어서 날씨가 더워지기 전 아침나절에 하루 할 일을 마치고 싶다. 예를 들면 청소도 아침을 먹기 전에 하고 만다. 아침에는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맡으면서 일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폭염이 계속된다고 꼭 폭염에 익숙해서 적응하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어제도 날씨가 너무 더워서 힘들었다. 오늘 일본에서는 15개 부현에 열사병 경계 주의가 내렸다(https://news.yahoo.co.jp/articles/8d217ec5e1d1fcf190d5e600b630e579a2a74a31). 가나가와현은 처음이라고 한다. 가나가와현은 바다를 끼고 있어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 모양이다. 동경은 최고기온이 35도 이상이 되어도 열사병 경계 주의에 속하지 않았다. 요새 일기예보에 나오는 색감을 보면 공포감을 느낀다. 

 

오늘 아침에도 당분간 폭염이 계속될 것 같아서 집안을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쓰레기를 버리고 싶었다. 재활용 쓰레기도 있지만 음식물 쓰레기도 모아서 버려야 한다. 냉장고 정리를 해서 상할 것 같은 음식도 버리고 상한 야채도 버려야 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김에 어제 산 멜론도 껍질을 벗기고 버리고 싶다. 그리고 편의점에 가서 세금을 내고 올 작정이었다. 아직 그렇게 덥지 않는 시간인데 마음이 급하니까, 더운 느낌이 든다. 

 

사람이 피곤하다 보면 평소에 절대 하지 않는 실수를 한다. 그런 실수가 아차 하는 순간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만들기도 한다. 어제 피곤한 가운데 뭘 하다 보니까, 식칼을 꺼냈는데 칼이 내손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공중제비를 돌고 떨어졌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면서도 저 칼이 내 발등에라도 꽂히는 날에는 큰 일 나겠구나 했다. 다행히도 옆으로 떨어져 칼자루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칼자루 사이에 알게 모르게 이물질이 들어가 녹이 슬었나 보다. 그런 먼지를 청소하고 칼자루는 다시 합체했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동안은 마치 슬로모션을 보는 것 같다. 칼이 위험하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몸이 피할 수 있는 순발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정말로 큰일이 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오늘도 아침에 실수를 여러 번 했다. 멜론 껍질을 벗겨서 씨를 빼고 잘라서 컨테이너에 2개에 예쁘게 넣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에 그 컨테이너를 뒤엎는 게 아닌가? 내 손이 뇌와는 별도로 움직이나 싶을 정도였다. 엎어지기 전에 컨테이너를 되돌려 뚜껑을 덮었다. 다음에는 씻어서 선반 위에 둔 잼 병이 떨어져서 산산조각 난 파편이 사방에 튀었다. 이렇게 깨지는 일도 참 드물다. 조심하지 않으면 다른 상처를 입게 될지 모른다. 신경을 곤두세워서 조심조심 뒤처리를 했다. 뒤처리하느라고 수채 구멍까지 청소했다. 아침 먹은 식기를 씻는데 그릇이 내손에서 달아나지 못해 요동을 치고 있다. 이게 뭔 일인가? 이런 상태에서 부엌일을 하다가는 사고가 날 것 같다. 

 

쓰레기를 버리고 더워지기 전에 편의점에 가서 세금을 내고 올 생각이었지만 오늘 할 일은 냉장고를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것까지만 하기로 했다. 세금은 내일 아침에 가서 내도 된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한결 여유로운 기분이 든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는데 집보다 바깥이 훨씬 시원했다. 바깥은 주변이 공원이라서 선선한 공기로 아직 덥지가 않았다. 산책을 해도 좋을 정도였다. 쓰레기를 버리러 갔지만 상쾌한 기분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집에 돌아와서다.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 온 것은 길어야 3분 정도다. 덥지도 않고 상쾌함마저 느꼈다. 그런데 집에 와서는 머리에서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도대체 내가 뭘 했다고 이러는지 나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쓰레기를 버리고 와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이불과 베개도 빨았다. 그리고 확실히 마음을 정했다. 날씨가 아직 선선해도 세금을 내러 편의점에 가면 안 될 것 같다. 편의점에 다녀오는 시간은 길게 잡아도 30분이다. 3분밖에 나갔다가 와서 땀을 정신없이 흘리는데 30분이면 어떻게 될까. 또 하나는 오전에 우체국 택배가 온다. 우체국 배달이 오는 시간을 대충 알고 있어서 시간상 편의점에 다녀와도 전혀 문제가 없다. 만에 하나 재수가 없어서 택배를 받지 못하면 재배달을 요청해야 하고 귀찮아진다. 그런 번거로움을 상상만 해도 더 덥고 피곤해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오늘은 편의점에 가지 않는 게 좋겠다.

 

볼 일을 하나 포기했더니 모든 것이 다 여유가 생겼다. 거짓말처럼 마음도 편안해진다. 나도 내 심리를 모르겠다. 세금 내는 건 어차피 내는 거다, 지갑에 돈을 넣고 있어도 부담스럽기만 하다. 마음의 움직임이 돈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내가 해야 할 일과 다른 일이 겹치고 몸이 따라주지 않는데 날씨마저 무서우면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다. 괜히 혼자서 부산을 떨어서 생수 한 병을 한꺼번에 마시고 말았다. 생수 한 병이 적은 양이 아닌데 잘도 들어간다.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서 어제와 오늘 왜 이렇게 피곤한가?  항암제를 바꿔서 그로 인한 부작용인가? 아직 그건 모른다. 생각해 보니, 하루에 할 일을 아침나절에 서둘러 마친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설정이다. 아무리 날씨가 덥다고 더워지기 전에 서두른다고 해도 하루에 할 일을 2시간 내에 마치기는 힘들다. 내가 그런 무리를 하고 있었던 걸 몰랐다. 

 

폭염이 계속되는 날씨에는 일을 천천히 느긋하게 설렁설렁하는 것이 좋다. 마음이 조급해서 서두르다 보면 다른 실수를 하게 된다. 바깥에 나가는 시간은 덜 더운 시간으로 짧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집안일을 좀 게을리한다고 해서 큰 지장은 없다.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라면 마음도 여유롭게 가지는 것이 살인적인 폭염에서 마음까지 타지 않고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우체국 택배는 평소 배달시간인 11시가 넘어서 왔다. 

 

 

지금 일본에서는 폭염만이 아닌 코로나 감염 확대가 폭발적인 상황이다. 오늘도 22만 명을 넘어 과거 2번째로 많다고 한다. 동경에서도 3만 명이 넘는 것이 3일이나 계속되고 있다(https://news.yahoo.co.jp/articles/2935fa67ceb7d07d8ec506c5b22f60a2e17a5757). 거기에 우체국이 27일 현재 154군데 폐쇄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7V9u9AeGK4c). 학교는 7월 13일 현재 2,545 공립학교가 코로나로 학급이나 학년 폐쇄했다고 한다(https://news.yahoo.co.jp/articles/0e1fbd3949760d130a1615ea5b0e6a3c34759c2b). 코로나 환자 30%가 어린이라고도 한다(https://news.yahoo.co.jp/articles/a11f1804b018203c8d7b2c1a1e7c85fce8166861).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다, 일본 정부에서도 그냥 있을 수는 없기에 '코로나 대책 강화 선언'을 했다(https://news.yahoo.co.jp/articles/efd4456a99097012e93eb42028dd3435777a8d30). 나는 이런 걸 보면 한숨이 나온다. 전염병이 창궐해서 사람들이 불안한 가운데 '선언'을 하면 어쩌라는 건지 궁금하다. 요전에도 엔저로 경제에 큰 영향이 나와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에서 한 대책도 '선언'이었다. 그때도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계경제나 환율이 일본에서 '선언'을 한다고 실질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을까? 이번에도 '선언'만 하면 뭘 어쩌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코로나 바이러스나 환율도 일본 정부가 하는 '선언'을 듣나? 정말로 일본도 대단한 나라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시다 정권도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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