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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

일본, 노후를 보내는 이웃

오늘 동경은 햇볕이 뜨거워서 낮에 도서관에 갈 때 아스팔트에서 더운 기운이 훅 올라왔다. 아직 5월인데 아스팔트가 뜨겁다니, 앞으로 더워질 날씨를 생각하면 현기증이 난다. 도서관은 아직 냉방이 되지 않아 뜨뜻 미지근해서 정신을 집중하기보다 잠자기에 딱 알맞은 환경이다. 월요일이라, 새로 온 책을 보고 읽은 책을 반납했다. 돌아오는 길에 야채 무인판매와 마트에도 들렀다. 마트에서 완숙토마토를 세 개 사다가 저녁에 두 개를 먹었다. 지난주는 '토마토 주간'이라고 할 만큼 토마토가 많고 가격도 착해서 많이 샀다. 일 년에 한 번은 온몸에 피를 토마토로 갈 만큼 토마토를 많이 먹는 기간이 있다. 저녁에는 국수를 삶으면서 달걀도 두 개, 풋콩과 대파도 같이 삶아서 토마토와 같이 먹었다. 이렇게 야채를 가볍게 삶아 먹는 것을 좋아한다. 야채 파는 곳에 죽순도 있는데, 삶은 죽순이 아니면 사지 않는다. 껍질을 까서 삶는 게 귀찮기 때문이다. 죽순도 맛있는 계절이다. 마트에는 멜론도 많이 나와서 첫물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멜론은 그다지 당기지 않는 과일이라서 사지 않는다. 

 

마트에서 나와서 아는 이웃에게 전화했다. 강아지 산책을 나가는 시간이 맞아서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정신이 없어서 집에 와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을 것이라, 좀 쉴 겸 산책길에서 만났다. 저녁 4시가 넘어도 더웠다. 나이 든 강아지가 오늘은 좀 걸어서 집으로 오는 길에 있는 큰 공원 나무 밑에 앉아서 수다를 떨었다. 지난 일요일이 일본에서는 어머니날이었다. 이웃네 마당에 갔더니 카네이션 화분이 있길래 물었더니, 토요일에 아들이 가져왔다고 했다. 이웃은 며느리에 대한 말은 일체 없다. 자기가 죽더라도 남편 가족이나, 자신의 형제들에게도 연락하지 말고 아들 둘만 와서 장례식도 없이 화장해서 정리해달라고 했단다. 아들이 그건 곤란하다고 아이들도 있으니까, 같이 와서 본다고 했다고. 일본에서 제사는 매해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매해, 남편이 돌아가신 날에는 아들들과 같이 식사를 한단다. 며느리는 결혼해서 금방은 같이 왔다가, 나중에는 오다가 안 오다가 지금은 오지 않는단다. 이웃은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여긴다. 

 

오늘은 며느리 얘기를 하지 않는데,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죠? 했더니, 둘 다 일을 한다고, 아들에게도 기대를 하지 않는데 며느리에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게 좋다고. 나도 기대를 하지 말라고, 그랬다가 상대가 뭔가 해주면 고마운 것이고 아니면 마는 게 좋다고. 괜히 기대했다가, 기대에 못 미치면 섭섭하니까. 아예, 처음부터 아무런 기대도 하지 말라고.

 

내 친구가 안식년이라고 오스트리아 대학에 가 있는데, 친정부모와 여행갔다고 사진이 페북에 올라온 걸 봤더니, 80세가 넘어서 나이를 먹었다는 걸 알겠다고 했다. 친구 엄마가 친구가 직장을 다닐 때도 음식이나, 빨래까지 다 해서 보내주고 50이 넘은 지금도 음식을 해서 보낼 정도로 지극정성이라고 했다. 친구도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이 지극해서 부모님의 노후를 같이 의논한다고 했더니, 이웃이 딸들은 그렇다며? 부모님에게 잘한다고 부러워한다. 자기 동생도 자식이 둘 있는데, 딸이 있으니까, 딸과 같이 외식도 가고 여행도 간다고 어릴 때는 자기가 많이 돌봤는데, 이제는 언니도 소용이 없는 모양이라고 섭섭한 눈치다. 이웃은 딸이 있다는 것이 부러운 모양이다. 자기네는 아들만 둘이라, 일찌감치 포기했다. 자기 아들이지만, 무뚝뚝하고 눈치가 없다고 불만을 말한다. 

 

오늘은 어렸을 때 자란 얘기를 했다. 위로는 오빠만 세 명에 아래 다섯살 차이 나는 여동생이 있다. 장사하는 집에 어머니가 병약해서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도왔야 했다. 초등학교 때는 집에 밥해주는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일을 같이 도왔는데,  중학교에 가서는 아주머니가 나이를 먹었다고 일을 그만둬서 혼자서 가족들 식사와 집안일을 책임져야 해서 힘들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는 일본이 전쟁이 끝난 뒤 혼란스러운 시기라, 먹고살기가 힘들어 남의 집에 일 다니는 사람이 많았단다. 중학교에 간 시기는 동경올림픽을 앞두고 경제가 좋아지면서 일할 곳이 많아 집에서 밥해주는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져서 사람을 구할 수가 없었다. 가족만 여덟명에 오빠 친구나 자기 친구가 오면 금방 열 명이 되었다고, 매일 열 명분 식사를 준비하고 치우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다고 했다. 동경시내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당시는 여자가 대학을 가는 일은 한 반에 한 명이 있을까, 말까 한 시대였단다. 그런데 자신은 대학에 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부모님은 대학 대신 요리학교에 보내줬다. 신부수업을 겸해서 요리와 꽃꽂이를 배우라고 했다. 꽃꽂이는 식물을 좋아해서 괜찮은데, 요리학교는 힘들었다. 자신이 편식을 해서 버터나, 고기, 생선, 치즈를 먹지 않았는데, 요리학교에서는 그런 재료를 써서 요리해서 시식을 했다. 시식을 할 단계가 되면, 볼 일이 있다고 해서 나왔다고 한다. 요리학교에서 배운 것은 집에 가서 그대로 했단다. 

 

자신은 친정집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결혼을 일찍했다는 말을 들었다. 작고 마른 몸매의 이웃은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다섯 살 어린 여동생까지 돌봤다. 빨리 친정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한다. 결혼해서 두 사람만 살아 식사준비와 집안일이 간편해서 너무 편했다고. 결혼하기 전에 친정에서 고생했다고 말한다. 어머니가 병약했다가 52세, 일찍 돌아가셔서 자신이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단다. 이웃은 지금 70대 후반으로 알고 있다. 

 

세상에 모든 딸이 다 부모에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딸도 딸나름, 부모 나름이라고 했다. 아는 사람에는 아파트에 사는데, 남편이 돌아간 다음에 딸네 가족이 들어와서 같이 산다고 불편하단다. 아니, 같은 건물에 다른 집이 아니라, 같은 집에 산대요? 그렇대, 살던 아파트에 딸네 가족이 와서 딸네가 아파트 대출금을 물고 있대. 그러면 불편할 텐데, 아무리 엄마와 딸이라도 가족이 있고 감각이 다르면 같은 집에 살면 부딪칠 텐데. 시골에 있는 집을 팔아 버려서 갈 곳도 없어졌대. 

 

내 친구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머니를 자기네 가까운 곳에 아파트를 빌려 살게 한다고 해서 내가 어머니는 살던 곳에 살고 친구가 가까운 곳으로 옮기는 것이 좋다고 했어요. 어머니가 나이를 먹고 딸이 가까운데 있다고 딸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아니니까. 지금까지 오래 살던 곳에서 사는 게 어머니에게는 더 좋죠. 주위에 아는 이웃들도 있을 것이고. 딸도 나이를 많이 먹을 때까지 일을 할텐데, 어머니가 가까운 곳에 와도 소일거리도 없고 인간관계도 힘드니까. 아니면, 같은 오다큐선에 사니까, 어머니를 보러 다니든지 하는 쪽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고 했어요. 어머니네 집 아래층에는 여동생네가 살거든요. 거기 손자도 있고, 어머니에게는 거기가 좋죠. 

 

그래도 이웃은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하면서 건강하고 활기찬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런 생활을 오래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해서 자식이나 주위에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미리미리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 올해 차를 팔고 더 이상 운전하지 않기로 했다. 운전에 전혀 문제가 없지만, 스스로 결단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흔적도 정리를 하는 모양이다. 일본에서는 '슈카쓰'라고, 슈가 마지막 종에, 카쓰는 활동의 준말인 활이다. 마지막 가는 길에 자식이나 주위에 민폐를 끼치는 일이 적도록 미리 정리를 한다는 것이다. 그 정리에는 인간관계까지 포함된다. 말이 그렇지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습관이 있어서 정리하고 버리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런 정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는 좀 있으면 집을 팔고 양로원에 들어간다면서 살림을 줄이고 있다. 

 

나이를 먹고 남편이 돌아가신 다음 18년 전에 땅을 사서 집을 짓고 현재 사는 곳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혼자 사느라고 조심하는 것도 있지만, 떠날 것을 대비해서 주위 사람들과 깊게 사귀지 않는다. 예를 들면, 집이나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는다. 강아지 이름으로 누구 엄마라고 할 뿐이다. 나도 시간이 있으면 매일 산책을 같이 하지만, 굳이 이름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주로 공통적인 관심사인 꽃이나 주변 식물 이야기를 한다. 집에는 자주 가도 화초를 가꾼 마당을 볼 뿐이지 안에 들어간 적이 없다. 나도 집에 초대할 생각을 하지 않아서 좋다. 서로 자주 작은 선물을 자주 교환하면서 사이좋게 지낸다. 가장 가깝고 편하게 지내는 이웃이다.

 

이웃이나 친구네는 일본에서 중상층으로 경제적으로 아무런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웃은 심신이 건강하고 자식들 걱정도 없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즐기면서 살고 있다. 요새 일본에서는 해외여행을 다닌다면 '부자'라고 할 정도인데, 해외여행을 아주 좋아한다. 호기심이 많고 행동파다.  

 

 

오늘 도서관 가는 길에 봤더니, 고이노보리 설치대를 치웠다. 주변에서 이정도 큰 고이노보리를 걸 수 있는 집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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