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16 네팔 아이
어제는 네팔 아이가 집에 와서 자고 갔다..
얘는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번 놀러 온다.
이 네팔 아이는 내가 가깝게 지내는 친구 언니가 네팔에서 살던 집주인 막내아들이다. 작년에 친구가 안식년으로 동경대와 와세다에 있다가 호주로 돌아가기 직전에 온 아이를 나에게 부탁한다고 맡기고 갔다. 친구 언니는 영국 사람으로 국제원조에 관한 일을 하는데 지금은 네팔 사람이 다 됐다고 한다.
네팔 아이는 쭉 시골에서 부모님과 살다가 카트만두에서 대학을 다니다 그만두고 일본으로 유학을 왔다. 실은 형이 아주 우수하단다. 형은 어릴 때부터 좋은 학교에 다녀서 영어도 정식으로 아주 잘한단다. 형이 유학 준비를 했는데 건강진단에서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형이 자기가 못 나가는 대신, 동생을 해외로 내보냈다고 한다. 자신은 아무 생각도 없이 있다가 얼떨결에 나오게 됐단다. 그 집안에서는 이 아이가 해외로 나오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가 받은 퇴직금에다가 은행에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서 일본으로 나왔다. 네팔에서는 우수한 사람은 우수한 대로, 돈 있는 사람은 그 나름대로, 돈 없는 사람은 돈 없는 사람대로 해외로 나가야 한다. 해외에 나가서 공부를 하던, 돈을 벌던 살길들을 찾아야 한다. 그 아이 고등학교 동창은 고등학교 때 오토바이 사고로 몸이 안 좋은 친구 한 명을 빼고 시골에 남아있는 친구가 없다고 한다. 네팔이 가난하고 정치, 경제적으로, 안정이 안되어 있어 젊은 사람들이 국내에서 장래를 내다볼 희망을 갖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 아이 형은 은행에 근무하고 있다. 네팔에서 우수한 젊은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이 은행원이기도 하단다.
이 아이는 나를 친구처럼, 때로는 엄마처럼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나는 너의 엄마도 누나도 아니다, 그냥 조금 아는 사람 일 뿐이야, 틈만 나면 강조한다.
작년에는 사귀던 중국 아이 얘기를 열심히 하더니만, 언젠가부터인가 슬그머니 없어졌다. 어디 놀러 가서 찍어온 사진을 보이면서 이 아이가 어떠냐고 물어본다. 나는 사실 별로 흥미가 없다. 지난번에도 네팔에 두고 온 여자 친구 얘기를 한다.
이 번에는 네팔에 있는 다른 여자아이 사진을 보이면서 어떠냐고 묻는다.
나는 지난번 시골아이가 좋다.
이 아이가 더 착하다고 한다.
나는 지난번에 본 사진 아이가 강할 것 같아서 좋아.
사실, 그 시골에 있는 친구가 강하다고, 여자 친구 보고 싶어 미치겠다고 한다.
나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
문제는 얘랑 같이 있으면 화가 난다는데 있다.
만사에 속이 뒤집힌다. 아무래도 얘랑은 성격이 잘 안 맞는 것 같다. 놀러 온다면 먹을 것도 사놓는데 화가 나서 속이 뒤집히면 먹을 것도 제대로 안 먹이고 보낸다. 어제도 집에 먹을 게 있는데 캔터키 치킨을 사다가 먹었다. 그 아이는 캔터키 치킨이 좋은가 보다. 오늘 아침에도 어제 사온 맛없는 피자 토스트를 먹였다. 신선한 빵집 빵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걸 맛있게 여기는 것 같아서 가고 나서도 속이 상한다. 가고 나면 한바탕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한다. 어제도 그 아이 가족들에게 보낼 옷들을 사러 갔다. 그런데 마치 우리 친척에게 보낼 걸 사는 것 같다. 물론 내가 돈을 냈지만.
어젯밤에 저녁을 먹고 나서 밤에 동네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 어제가 보름이었나, 둥근달이 깨끗하게 보였다. 일본에 와서 일 년 지내다 보니 많은 걸 알게 되었나 보다.
그래 네팔 시골에서 생각하던 잘 사는 나라 생활이 어떠냐고? 동경에서 뭔가 좋은 일이 있었냐고 물어봤다.
나를 알게 된 게 제일 좋은 일인 것 같단다.
나 믿지 마,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야,
현재,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눈앞에 있어서 조금 돕는 것뿐이야,,
이 정도는 아무라도 하는 거야.
그런데도 이 아이는 턱없이 나를 믿는 것 같다.
작년에 중국 여자아이랑 사귀기 전에 중국에 대해서 차별적인 발언을 하기에, 너 그런 말을 하는 걸 그만두든지, 우리 집에 오는 걸 그만두라고 했다. 난 인종차별주의자를 싫어해.
나는 젊은 아이가 외국에서 서바이벌해 나가기에 이것저것 가르치고, 보기 싫은 일을 하면 잔소리를 한다. 여러 가지가 참 지저분하다. 그야말로 멋있게 몸치장을 해서 향수까지 뿌리면서 먹는 걸 지저분하게 먹는다. 네팔에도 카스트가 있어서 최상위는 아니지만, 그다음 카스트에 속한다고 한다. 외국에서 살아가는 건 어느 나라에도 카스트와 비슷한 계급이라는 게 있어, 어쩌면 인종보다 계급이 더 중요한 분류 인지도 몰라, 사람들은 계급을 뭘로 판단하냐 하면 그 사람 행동거지, 매너를 보고 판단해, 그러니까, 사람 취급을 받으려면 제대로 된 매너를 가지고 행동을 해야 하는 거다.
그리고 특히 사람들은 먹을 때 매너를 본다. 같이 밥을 먹어보고 그 사람 됨됨이를 짐작하는 게 있어, 근데 너는 내가 아는 일본 아줌마가 한 명 있는데, 이 아줌마는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집 안팎에서 제대로 교육을 못 받았단다. 그 아줌마가 먹을 걸 내놓으면 참 지저분하고 더럽게 먹어서, 정이 떨어져. 근데, 그 아줌마는 70이 넘었거든, 너는 지금부터 자신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어릴 때 먹는 걸 제대로 먹으라고 잔소리를 들으면서 자라,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야.
근데, 너는 일 년간 지켜봤는데, 내 말을 안 듣더라고..
예, 제가 부모님 말도 안 들었어요.
역시 그렇구나, 내가 포기 하마.
부모님 말도 안 들었다는데 내 말을 듣겠니?
많은 사람들과 접하다 보면, 역시 사람 중에는 맞는 사람과 안 맞는 사람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5살짜리라도 자신이 어른처럼 행동하려는 아이가 있나 하면, 몇 살이 여도 아이인 사람이 있다. 나도 나이를 먹어도 철없는 아이인 사람이라, 같은 아이랑 만나면 내가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라서 당황스럽고 화가 난다. 즉 안 맞는다. 인종도 연령도 아닌, 이런 게 결정적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