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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제주도 사람들

미친 사람들

2012/08/11 미친 사람들

 

오늘 동경 날씨는 며칠 만에 한여름 날씨가 되돌아왔다.

한여름 날씨는 그냥 앉아만 있어도 목에서 땀이 찔끔찔끔 나오는 상태이다며칠 만에 베란다에 물을 뿌렸다한여름 날씨에는 베란다에 물을 자주 뿌리고 하루에도 몇 번인가 찬물로 샤워를 하고옷을 갈아입고 일을 해도 정신집중이 어려운 상태이다.

나는 어제부터 평상시 생활로 복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그 건 다름이 아니라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고 아침을 먹는 것저녁에는 산책을 하는 것 등이다별거 없다

어제는 역 근처까지 쇼핑하러 ‘하산’을 했다내가 사야 하는 것은 버터와 모기향인스턴트 커피수박이 주된 쇼핑리스트였다그 외로 과일과 야채 등이다그 걸 사는 가게가 달라서 쇼핑 루트까지 메모를 했다우선좀 비싼 슈퍼에 가서 버터를 샀다내가 보통 가는 슈퍼에는 그 버터가 없다다음은 항상 들르는 가게에 갔더니싱싱하고 큰 오이와 토마토그리고 살 만한 것들이 꽤 있어서 거기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거기서 ATM에 들렀다내가 잘가는 저렴한 슈퍼에 갔더니 과일과 야채가 쌌다그런데 전혀 싱싱하지 않다는 것이다조금 망설였지만 안 샀다. 가격이 싸도 돈을 주고 작은 행복감도만족감도 얻을 수 없어서 슬퍼지니까… 거기서 산 것은 약간 비싼 달걀항상 먹는 요구르트 두 통과자 하나인스턴트 커피 두 통두부 한 줄싱싱한 횟감용 오징어 한 마리다. 

다음은 집에 오는 길에 있는 중간 정도 비싼 슈퍼에 들렀다금요일은 야채와 과일이 좀 싼 날이다분명히 수박이 싸게 나왔을 것이어서수박을 사려고 짐가방을 끌고 나갔다수박이 쌌다수박을 사기전에 이미 짐가방은 채워졌지만수박은 사야한다수박을 고르고 골라서 뽑았다두 개다수박과 머시룸, 감자 한 봉지를 샀다수박은 마지막에 하나를 놓고 왔다아무래도 짐가방을 끌고 큰 수박을 두 개 들고 올 엄두가 안 나서다. 짐가방 위에 수박을 얹어서 끌고 왔다.

아침에 슈퍼에 갈 때 아래층 아줌마와 마주쳤다어떻게 방학 때 집에 있느냐고 인사를 한다나는 위층에 사는 죄로 항상 미안하다생활소음이 생생하게 아래층에 전달되기 때문이다그 아줌마는 오랫동안 일을 해와서 아주 싹싹하고 상대를 편하게 해 준다.

쇼핑을 하고 집에 와보니 벌써 오후가 됐다.

정말로 오랜만에 오징어회를 만들어 먹었다싱싱한 오이와 당근에사온 오징어를 데쳐서 초고추장으로 양념을 해서 먹었다학교에서 급한 서류가 와서 작성을 해서 늦은 오후에 근처 우체국에 갔다 왔다기온은 더위가 한풀 꺾였는데반사열이 뜨겁다

집에 와서 생각을 해보니아무래도 수박이 끝나갈 것 같다. 수박 팬으로서 얌전하게 시즌오프를 기다릴 수는 없는 법수박을 하나 더 사 오고, 인스턴트커피도 더 사놔야겠다그래서 되도록 늦은 시간에 슈퍼에 갔다인스턴트커피를 사고두부도 한 줄 더 사고수박을 사러 갔더니다 팔렸다세상에 이럴 수가… 과자를 하나 사고그 대신 멕시코에서 온 아보카도가 싸서 좀 많이 샀다. 15개나미국에서 왔다는 ‘프리미엄 스위트'하다는 오렌지도 좀 샀다수박을 못 샀지만그만큼 다른 걸 사 왔다. 

그런데 미국에서 왔다는 ‘프리미엄 스위트’하다는 오렌지는 그냥 ‘스위트’ 하지도 않았다뭐야사기잖아… 요새 가격이 만만한 것 들은 다 멀고 먼 나라에서 온 것들이다. 멕시코에서 온 망고칠레에서 온 레몬페루에서 온 코코넛 야자, 얘네들은 여기에 오려고 도대체 언제 나무에서 땄을까… 그러니까아침에 따온 오이가 싱싱하게 빛나고토마토가 터질 것 같다그런 게 작은 행복감과 만족감을 준다.

실은어제 아침에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교정을 봐야 할 원고를 보낼 거라고, 내일 집에 있느냐는 것이다원교 교정에 새로운 원고를 써야 하는 게 여름방학에 해야 할 중요한 일중 하나이다지난번에 온 원고도 아직 일에 손을 못 댔다. 일이 밀려서다그리고 내 책이 나오면 기념 심포지엄도 한단다우선 내가 새로 써야 할 것들을 전화로 듣고 메모를 했다심포지엄은 나를 중심으로 같이 할 사람도테마도 다 내가 정하라고 한다우선 출판사가 하는 거니까출판사 의향도 듣고 생각을 나누자고 전화를 끝냈다.

어느새 나는 이 출판사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어있었다그 걸 전혀 몰랐다그런 건 말을 안 하니까. 나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다그런데 ‘영향력’ 있다는 말은 듣는다왜 그런지그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어제 출판사 사장이며내 일에 관해서는 최고의 편집자가 말을 했다당신은 몰랐겠지만당신과 내 출판사는 ‘특별한 인연’인 것 같다고

그전부터 출판일을 했지만자신의 회사 이름으로 처음 낸 책이 내 석사논문이었단다. 석사논문이 그대로 한 권이 책이 된다는 일은 드문 일이다그는 ‘과감’하게어쩌면 ‘무모’하게도전혀 팔리지 않을 대학원생 저자의 책으로 첫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미친 짓이다.

그 때
그 가 한 말이 있었다내가 죽으면 전집을 자기가 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아직꽃이 필지도 안 필지도 모르는 학생에게, ‘대가’들에게만 인정이 되는 일을 ‘구두계약’이라도 하라는 말에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출판사 사장은 나보다 10살 이상이나 많다그리고개인적인 말도 전혀 한 적이 없는친하지도 않은 그러니까그는 내가 한 일에 일부밖에 모른다

지금, 내 책을 작업하고 있다.
처음에는 출판 사정이 어려운 세태라 경비를 절감해서 어떻게 출판을 해보자고 했다그런데 일을 해가면서 ‘죽어도 해야 하는 일’로 변했다그러면서 나와 ‘동반자살’을 해야 할 줄 몰랐다고 했다그에게도 내 책이그만큼 중요해졌다는 것이다그야말로 ‘사운’을 건다는 게맞는 말이다출판사 25주년 기념사업으로 하겠단다약소 출판사에서 그다지 팔릴 것도 예상되지 않는 1,400 폐지나 되는 책을 낸다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그러나가끔은 ‘목숨 걸고 미친 짓’을 하며 사는 게 인간이기도 하다

나는 방학 동안에 멀쩡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다시 읽어 내야 한다나도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었으니그 전과는 다른 ‘목소리’를 읽어낼 수 있었으면 한다. 서서히 '미쳐갈준비에 들어가는 것이다우선체력조정이다.

 

그래서 어제는 싱숭생숭했다덕분에 과잉소비를 했다이 걸로 며칠은 ‘하산’을 할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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