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10 탯줄과 죽음
오늘 동경은 맑고 쾌청한 날씨였다. 이번 주에 들어 최고기온을 의식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선선해졌다. 실제로는 지난주 후반부터 장마철처럼 비도 오고 축축한 날씨였다. 쾌적한 날씨는 어제와 오늘이다.
어제는 친구네 집에 초대받아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 전날 친구가 잠깐 왔을 때 참외를 깎아서 먹었다. 친구가 좋아하기에 참외를 사러 갔더니 약간 상한 것이 하나 남아있을 뿐이었다. 친구네 집에는 네팔에서 만난 다른 친구의 언니가 준 원피스를 가져갔다. 이 친구가 좋아할 것 같은 타입이다. 전날에도 내가 사뒀던 (싸게 산 비싼) 원피스 이건 학교에 입고 가라고 줬다. 아주 날씬한 체형이라, 내가 산 원피스 라인이 살아서 예뻤다. 둘이서 5시부터 저녁을 먹기 시작해서 밤 11시 30분까지 계속 뭔가 먹으면서 수다를 떨다가 컴퓨터를 켜서 먹방님 전시회 사진도 보여주며 놀았다. 그 전에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어서 이 친구가 먹방님, 뮤즈님, 너도님을 안다. 이번에 올리브님과 제비님, 스님도 새로 알았다. 이상하게시리 딱 한번 사진을 봤을 뿐인 데, 얼굴을 외우고 있었다. 깜짝이야…. 전시회 사진은 나중에 다시 천천히 보겠단다. 먹방님이 쓰신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오늘은 친구가 참외를 파는 곳을 알려달라고 해서 둘이서 산책을 나갔다. 내가 사는 주위에는 농가가 있어서 지역에서 생산한 야채를 무인 판매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이런 곳은 아는 사람은 알아도 모르는 사람은 지나쳐도 모른다. 그래서 친구에게 그런 곳을 알려주려고 산책을 나간 거다. 친구는 원래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편인 데, 요즘은 안전한 먹거리에 관해 본격적으로 공부를 한단다. 나는 친구네 집에 가서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어서 좋지만, 친구는 아주 다양한 것을 집에서 만든다.
친구와 나는 야채파는 곳을 세 군데 보고 주변을 산책했다. 나는 참외를 두 개, 친구는 참외 하나, 오이 한 봉지, 여주를 샀다. 나중에 오쿠라도 샀다. 그러고 나서 둘이서 가본 적이 없는 동네를 걸어 다녔다. 작은 신사도 있었고, 길가에 불상도 있고 오래된 농촌이라는 흔적을 볼 수가 있었다. 나는 떨어진 감을 줍고, 모기에 물려가면서 오랜만에 둘이서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아직도 한낮의 햇살은 강했고 뜨거웠지만, 그래도 걸어 다닐 만했다.
여름방학이 오늘로 끝난다. 내일 아침 첫교시에 강의가 있다. 여름방학에 내가 한 것은 아는 선배를 인터뷰한 것이다. 그 것 때문에 여름방학에 여행을 안 가고 집에 있었다. 그 선배를 인터뷰하려고 만나서 내가 인터뷰하고 싶다는 걸 전했다. 내가 인터뷰하고 싶지만, 선배는 인터뷰에 응하고 싶은지 어떤지 모른다. 내가 인터뷰를 하겠다고 하면 거의가 거절한다. 왜냐하면, 말을 솔직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았던 일, 나빴던 일, 슬폈던 일, 기뻤던 일을 솔직히 다 말해야 하기에 싫어한다. 그리고 힘들다.
내가 제주도 사람들에 관한 조사를 할 때, 그 선배가 자기네 친목회를 소개해주었고, 친목회 모임에 따라가서 ‘참여관찰’을 할 수 있었다. 제주도사람들에 관한 나의 연구는 수많은 분들이 적극적인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자신들이 글을 쓰는 걸 업으로 삼아 살던 선배들도 대학생, 대학원생인 나의 조수가 되어 손발처럼 도와주었다. 내 연구를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특별한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냥, 그 분들이 하고 싶으니까, 한 것으로 생각했다. 자신들의 시간을 쪼개서 나를 데리고 다니며 밥을 사서 먹이면서 도운 선배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왜 이렇게 하느냐고… "그 건, 우리가 못한 일을 네가 하려고 하니까, 내 자식도 그 일을 못 할 것 같으니까. 우리가 살아온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니까". 솔직히 나는 그 게 잘 이해가 안 되었다. 어쨌든 나에게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 건 좋은 일이니까… 그분들이 거의 다 돌아가셨다. 이 선배도 오래 알았고, 일년에 한 번 이상 보지만, 개인적인 말을 한 적이 없다. 작년에 돌아가신 이철 선생님 추도문을 쓴 걸 읽고 처음으로 사람 냄새를 느꼈다. 지금까지 일을 같이 한 적도 있고 선배가 쓴 글을 읽은 적도 있지만, 선배의 인간적인 면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리고 선배가 암에 걸려서 시한부라는 선고를 받았다. 갑자기, 선배처럼 제주도에 관한 일을 자기 일처럼, 자기가 먹고사는 일 이상으로 해 온 선배들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제주도에는 동네마다 그런 분들이 있었다. 그런 분들이 친목회를 만들어 제주도 마을을 돕고, 일본에 사는 사람들을 연결해서 살아온 것이다. 그런 분들은 거의 자신들 마을에 관한 일을 다른 마을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 마치 자신들 가족이나 친족에 관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은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내 연구를 돕는 분이 있어도, 자신에 관한 말은 하지 않는다. 아주 중요한 일을 자기희생적으로 하지만, 자신들을 드러내기 싫어한다.
내가 보기에 동네일이나, 제주도에 관한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평가받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럴듯하게 평가가 나는 사람들은 실제로 일을 열심히 한 사람들이 아니라, 요령이 좋아서 과대포장을 잘하는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아는 세계에서 보면…
갑자기 이 선배가 제주도에 관한 일을 열심히 한 것에 관해 죽기 전에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선배들은 거의 돌아가시고, 몇 분은 살아계셔도 말을 못 할 정도로 노쇠했다. 내 연구를 도왔던 선배, 선배라고 하지만 아버지 나이 정도였다. 그 분들은 어떤 심정으로, 무엇을 기대해서 철없이 팔딱거리던 나의 연구를 도왔을까. 이 선배에게 들어둬야 될 것 같았다.
선배가 암으로 수술을 했는 데, 어쩔 수가 없어서 그냥 닫았단다. 여명이 1년도 없다는 데, 평소에 가깝지도 않고 내가 할 게 아무것도 없다. 선배는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돌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이철선생님을 돌보느라고 부인과 둘이서 3년을 다녔다. 자기 가족도 아니고, 그 전부터 친했던 관계도 아니지만 그런 사람 사람들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싶은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정도다. 아주 쉬울 것 같지만, 쉽지도 않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사는 것도 아니다. 한편, 아주 잔혹한,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이기도 하다. 어떻게 죽어가는 사람에게 당신의 살아온 말을 듣겠다고 한다는 것인가. 나는 한다. 악마가 따로 없다. 마음에 있는 걸 털어놓고 원 없이 죽으라고...
그 날은 선배가 하얀 모시셔츠를 입고 있었다. 내가 완전 ‘조선인’같지 그러면서 ‘조선인’같다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암에 당뇨병으로 아주 말라서 머리도 하얗다. 하얀 모시셔츠가 너무 커서 헐렁거린다. 모시셔츠가 아주 시원하단다. 이런 걸 입고 싶었는 데, 지금에야 입는다고. 그러면서 감물을 들인 셔츠, 한국에 갔을 때, 리싸이클숍에서 샀다는, 요즘 나오는 게 아니라, 옛날 게 아주 시원하단다. 집에서 입는 다면서… 나는 감물들인 옷이 그렇게 시원하다는 걸 처음 들었다. 그 선배를 보면서 ‘죽음’을 느꼈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걸 본 것 같다. 선배와의 인터뷰라는 대화에서도 ‘죽음’에 관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다지 말을 하지 않았다.
대학 때, 담임선생이 돌아가신 걸 본 게, 처음으로 죽은 사람을 처음 본 거다. 일본에서는 통상적으로 장례식에 가면 관속에 누운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몇 번인가,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특별한 기억이 없다. 한국에서는 가족이어도 본 적이 없다.
선배를 보면서 느낀 ‘죽음’은 선배의 것이리라. ‘죽음’을 향하는 것도 또한 아름다움이라는 걸 알았다. 사람에 따라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가는지 다르겠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갈지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어쩌면 죽음을 향해 사는 것이 ‘인생’이리라. 단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지만… 죽어가는 것이 당연한 순리이기도 하다. 내가 느낀 것을 지금 이렇게 쓰지만, 어떤 비밀을 본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비밀을 본다는 것은 슬프고 고독한 것이기도 하다. 비밀…
그런데 내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아니 그 전에도 선배는 건강상태가 아주 좋다고 했다. 분명히 시한부인 데, 자신이 느낌은 건강해지는 것 같단다. 나는 접하는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사람이라고 한다. 내가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런 화학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자신의 생을 돌아보며, 좋은 자극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선배는 내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인터뷰하고 싶다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단다. 나도 어쩌다가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어쩌다가, 우연히라는 것은 나중에 보면, 어쩌다가 우연이 아닌 필연이 되는 경우가 있다. 가끔은 직감적으로 느낌이 오는 걸 따라서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결론적으로, 그 선배 인터뷰가 잘 되었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인터뷰로서는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그 걸 여름방학 과제로 삼았던 일이 실패였냐면 그렇지도 않다. 뭔가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거니까… 잠정적으로 인터뷰를 마치며 들은 말이 있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다는 ‘희망과 의욕’이었다. 아, 다행이다, ‘희망과 의욕’을 가질 수 있어서…
이건 그 선배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고 와서 선배를 보고 느낀 것을 형체화했다. 밑에 핑크색은 ‘탯줄’이다. 등에는 구멍이 뚫려서 ‘생명력’이 빠져나간다. 하얀 머리와 모시 셔츠가 하얗다 못해 좀 푸르게 보였다. 그러나, 작은 미세한 생명의 반짝임이 있다. 늦여름의 햇살이 반짝임도 더했다. 선배를 만나 느낀 게 새로운 형체와 생명을 얻음으로 태어났다. 선배의 ‘아픔’을 이 ‘형체’에 옮길 수 있었을까? 그러길 바란다. 여름방학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