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에서 자살 사고는 일상적으로 전혀 새롭지 않다. 하지만 사고와 부딪칠 때, 매번 익숙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지난 주도 새삼스럽게 자살 사고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생각했다. 자살 사고가 매일 같이 일어나는 현장에서 출퇴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곳이 일본의 도시 외에 세계 어디에 있을까? 이런 곳에서 사람들은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오늘 동경은 맑고 기온이 좀 내려간 날씨였다. 그저께는 최고 기온이 32도로 햇볕이 너무 따가웠는데 어제부터 기온이 내려갔다. 최저 기온이 10 몇 도라서 저녁이 되면 옷을 껴입는다.
나는 주 4일 강의에 나간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4일 중 3일은 전철을 갈아타서 출퇴근에 시간이 걸린다. 지금 동경에서 일하면서 살아가는 일상을 알리기 위해 지난주에 있었던 일을 소개한다. 일본에 산지도 30년을 훨씬 넘긴 동경에 아주 익숙한 사람이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할 수 없는 일도 있다.
화요일에 아침에 가까운 역에서 전철을 탔더니 다음 정거장에서 탄 사람이 나를 몰카 하기 시작해서 설마 했는데 몰카였다. 당황스럽고 기분이 더러워서 나도 스마트폰을 꺼내서 똑같은 각도로 내 얼굴을 가리고 찍는 시늉을 했더니 상대방이 당황한다. 전철은 여유로운데 왜 꼭 내 맞은편에 앉아서 찍느냐고? 뭐야, 이상한 아줌마 전문인가? 일을 시작하는 첫날에 전철을 타자마자 몰카부터 당했다. 그 날 일어나는 일의 전주곡에 불과했지만 화가 났다.
전철을 갈아타는 역에 갔더니 사고가 있어서 전철이 늦는다고 한다. 항상 타는 전철을 기다릴까 하다가, 순간적 판단으로 이른 전철에 탔다. 이 순간적인 판단으로 전철을 탄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가장 빠른 전철인데, 가다가 갑자가 멈춘다. 뭐지? 안내 방송이 나온다. 가는 방향에서 자살 사고가 나서 전철이 멈췄다고 일이 진행되는 상황에 따라 안내를 하고 운행을 재개한단다. 이렇게 되면 그냥 포기한다. 학교에 시간에 맞게 갈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서 운행을 재개했다.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에 학교에 도착했다. 평소보다 30분 이상 더 걸렸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몰카에 자살 사고까지 겹쳐서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닌 상태에서 수업에 들어갔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일주일 일을 마친 것보다 피로를 느꼈다. 습관처럼 평소에 타는 전철을 기다렸다면 학교에 도착하지 못해서 휴강을 하고 보강하느라고 주말에 하루 학교에 가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이번 소비세가 인상되면서 전철 요금이 대부분 10 엔 올렸다. 사실은 교통카드를 쓰기 때문에 소비세가 오른 만큼만 더 받아도 되는데, 편승해서 요금을 올렸다. 학교에 교통비 청구하는 서류를 쓰려고 월요일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요금을 검색하느라고 전철 노선을 입력했더니, 사고가 났다는 안내가 뜬다. 이 시간에 무슨 사고지? 싶어서 클릭했더니 사고가 세 군데다. 하나는 기억이 안 난다. 두 군데서 자살 사고가 났다. 동경은 전철이 연결되어 아주 노선이 길어지는데, 두 건이 같은 시간대에 다른 장소에서 난 걸 보고 머리가 띵했다. 지금 이 늦은 시간에 이런 사고가 나면 하루 종일 일해서 지친 사람들이 집에 가다가 발이 묶여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겠구나. 괜히 사고가 났다는 걸 클릭해서 알고 싶지 않은 걸 보고 말았네. 잠자리도 사나운 밤을 보내고 난 화요일에 나도 몰카까지 덤으로 사고 현장을 지나쳤다.
수요일은 휴강이라서 집근처에서 도서관을 갔다가 버섯을 보러 가는 식으로 보냈다. 전철을 타지 않는 행복한 날이다.
목요일에는 다행히도 내가 탄 전철이 자살 사고와 관계없이 순조롭게 가고 왔다. 다른 전철 사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금요일은 강의가 많은 날이다. 강의가 많은 날은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힘이 들어간다. 무사히 마치면 주말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전철을 타고 평상시처럼 가장 빠른 전철로 갈아탔다. 조금 가더니 다시 멈춘다. 근처 역에서 자살 사고가 났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오늘도 사고를 만나는구나. 운전은 언제 재개할지 모른다는 안내가 나온다. 전철이 도중에서 운행을 중단할 수도 있다고도 한다. 전철이 도중에서 운행을 중단하면 출근을 못하는 사태가 일어난다. 30분 정도 전철이 멈췄다가 운행을 재개해서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중간에 앞에 섰던 곱게 차려입은 아줌마가 선반 위에 놨던 백을 꺼내는데 갑자기 머리 위에서 휴대폰이 가속이 붙어 수직으로 떨어지면서 내 무릎뼈를 강타하고 떨어졌다. 휴대폰이 세워진 상태에서 무릎뼈를 쳐서 아팠다. 나는 그 아줌마를 봤는데 나를 무시하고 자기 휴대폰만 신경 쓰고 있다. 내가 욕을 할 수 있다면 욕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였다. 남에게 피해를 끼쳐놓고 뻔뻔하게 미안한 표정도 없다. 집에 와서 봤더니 멍이 들고 무릎뼈가 아프다. 뼈가 약한 사람이라면 금이 가거나 부서졌을 것이다.
지금 동경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보면, 출퇴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몰카에 변태는 나같이 나이 먹은 아줌마도 자주 당한다. 그보다 빈번히 거의 매일같이 자살 사고로 인한 영향을 받는다. 가장 큰 것은 자신이 타고 있는 전철이나 주변 가까운 역에서 사고가 있을 때다. 자살 사고 안내방송이 나오면 사람들이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조용해진다. 급격히 전철 안 공기에서 산소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너무나 익숙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금요일에 문득 나는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내 건강이나, 강의를 할 수 있고 없고가 아닌 매일 같이 자살 사고와 조우하는, '재난'을 당하는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차원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경에서 살면서 느끼는 것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정말로 인간의 생명, 사람의 목숨을 경시한다는 것에 견디기가 힘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전철에 일상적으로 자살 사고가 나는데 전철 회사나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방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 일반 사람들도 그냥 참고 견딜 뿐이지, 이런 것이 정치문제라고 생각하지도 못하는 분위기다. 자살하는 사람들에게 자살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근본적인 원인 해결은 어려워도 전철에서 일어나는 자살 사고 방지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것은 할 수가 있다. 일본에서는 하는 것처럼 하지만, 실질적인 진전을 보기가 힘들어서 무력해진다. 일본에서 초고령화가 문제라고 하지만, 거짓말로 보인다. 자살하는 사람만 줄어도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자살만으로 10 년 단위로 중간 규모 도시가 소멸하는 수준으로 인구가 줄고 있다. 국가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방치하고 있다.
나만이 아니라, 일본 사람들도 그런 사고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을 것이다. 애써,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하지만,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정말로 단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나는 자살 사고가 일종의 '재난'으로 본다. 동경에서 출퇴근하면서 '재난'을 당하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경제가 어쩌고, 정치가 어쩌고, 그 이전에 사람이 안심해서 살아가는 최저한 건강하고 건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 곳에 어떤 희망이 있을까?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 국민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정치나 경제가 뭔 소용이 있는지? 우선은 살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일본에서는 '치안'이 좋다고 난리를 친다. 매일 같이 '재난'을 당하는 환경에서 '치안'이 좋다는 게 자랑이 되나?
숨조차 쉴 수 없는 이런 사회에서 살고 일하면서 느끼는 것은 일하는 자체에 집중해서 효과를 내기가 힘들다. 단지, 출퇴근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겨우 겨우 일하며 살고 있다. 사람들이 문제를 직시하고 싶지 않다. 문제를 직시해서 해결책을 생각하고 행동할 기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순간순간을 무사히 넘기면서 아슬아슬하게 곡예하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우울증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이 무기력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경제가 침체하는 것도, 소비가 주는 것도 당연하다. '재난'이 일상인 생활인데 행복할 수가 없다.
거기에 나는 한국인이라서 일본인보다 훨씬 리스크가 커서 위험하다. 일본에서 한국인, 특히 여성은 언제 어디서 어떤 차별을 당할지 모르는 세상이다. 좋은 일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나쁜 일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으로 여기고 살아야 하는 것이 일본 동경의 현재다.
그래서 한국 뉴스를 보면서, 희망을 보고 화를 내다가 다시 희망을 염원하면서 우울증이 되지 않도록 정신건강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나도 서초동에 검찰 개혁 지지, 조국 수호, 문재인 대통령 지지 촛불집회에 가고 싶다.
이런 일본, 동경에 비하면 한국이나 서울은 뭐라고 해도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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