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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생활

태풍이 온다

2013/10/14 태풍이 온다

 

오늘 동경 날씨는 차분히 기분 좋게 행복해지는 가을이었다. 어제부터 갑자기 확 가을이 되었다. 한여름이 마지막으로 오기를 부리면서 덥더니... 오늘까지 연휴인 모양이다. 나는 원래 월요일에 강의를 안 가서 집에 있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요가를 해서 몸을 풀었다. 그리고 샐러드를 먹었다. 요즘 내가 잘 먹는 샐러드는 온야채샐러드, 그냥 야채를 삶은 거다.. 오늘은 종류가 별로 없어서 계란 두 개에, 당근 반쪽, 작은 고구마 두 개, 샐로리 아주 조금이었다. 다른 야채가 있으면 더 넣는 데, 없다. 레터스나 오이를 삶을 수는 없어서. 가래떡과 오징어를 넣어서 떡볶이를 만들려고 하다가, 떡국으로 전환을 시켰다. 점심때 먹을 걸로… 


삶은 야채를 소스도 없이 그냥 손으로 집어먹는 게 요새 내가 먹는 온 야채샐러드의 정체다. 아침에는 오징어도 데쳐서 먹었다

날씨가 좋아서 옷 정리를 조금 해야겠다. 그전에 메일을 열어 본다. 아침에 받은 메일에 답장을 쓰고, 다시 연락할 메일을 보냈다.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니었지만, 일단 결과는 받아들인다. 관계자들께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은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어떻게 되겠지. 어려운 일일수록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월요일에는 수업 준비를 하는 날이라, 마음이 조급하다. 그러나, 옷정리를 하기에 안성맞춤인 날씨라, 오전에 옷정리를 하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다. 벽장에서 뜨개질한 옷을 넣은 옷상자를 꺼내서 좀약을 갈아 넣는다. 좀약을 넣을 때, 언제 넣는지 써놓는다. 재작년에 넣은 것은 꺼내고 작년에 넣은 것은 아직 약이 남아있나 보다. 그래도 또 보충을 한다. 언제 다시 옷상자를 꺼낼지 모르니까, 꺼냈을 때 넣어두는 게 좋다. 겨울옷이 들어있는 옷상자는 꺼내서 겨울옷을 꺼내고, 여름옷을 집어넣는다. 벽장에 물건들이 많아서 옷상자를 꺼내는 데도 그 주위를 정리해야 옷상자를 꺼냈다가 집어넣는다. 여름옷도 찾아서 집어넣는다. 이 것도 어디까지나 일부이지만, 그래도 큰 덩어리를 했다. 다른 것들은 조금씩 하면 된다. 뜨개질을 한 옷을 집어넣은 상자가 두 개에 상자에 넣지 못한 것들이 쌓여간다. 여기에 나오지 않은 것들도 있다. 벽장에서 나온 기념사진을 찍는다. 지진이 나서 내가 죽을 때는 옷에 파묻혀 죽으려나… 아니면 책에 깔려서, 아니야 실에 파묻힐지도 몰라. 아무래도 책 보다 옷이나 실이 좋겠다. 책은 딱딱하고 무거우니까 아플 거야... 책장이... 넘어지는 게 무서워서 침실에는 책장을 넣지 않는다

점심을 일찌감치 아침에 물에다 멸치와 다시마를 담갔던 것으로 국물을 우려내서 떡국을 끓였다. 당근과 샐러리를 넣어서, 대파를 많이 넣고 나중에 김도 구워서 넣고 깨도 넣었다. 한 번에 먹기에는 좀 많고 두 번에 먹기에는 어중간한 양이다. 맛있을 때 먹는 거다. 다 먹었더니 너무 많이 먹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한 거라, 제정신이 아니었구나, 걸신은 있다… 배가 불러도 커피를 끓여 마시고, 책을 들고 딴 방으로 간다. 나는 집중해서 책을 읽을 때는 장소를 옮긴다. 그리고 불편한 자세로 앉는다. 배가 불러서 그냥 맨바닥에 앉으니 아주 불편하다. 그래도 참고 형광펜으로 그어가면서, 책을 읽는다. 내가 형광펜이라는 걸 지금까지 거의 써 본 적이 없었는 데, 작년부터 수업 준비할 때 쓴다… 읽을 때마다 색을 바꾸면서…

수업 때 학생에게 배부할 자료를 입력하다가
, 눈이 너무 피곤하다. 모기향을 피워서 눈에 들어온다. 아직도 모기가 있다. 요새 방콕이라 답답하다. 이른 저녁에 산책을 나갔다. 쓰레기를 가지고 나가서 버린다. 누가 이사를 가는지 이불이랑 카펫 등을 버렸다. 담요도 표가 붙은 그대로 버렸다. 포장 봉지에서 꺼내기는 한 건가. 가만히 가서 상태를 본다. 옆에 이불 위에 깔았을 패드도 상표가 붙어있는 그대로다. 그것도 가만히 봤다. 사다가 쓰지도 않고 버렸나? 아니면 요새는 물건을 사다가 상표도 안 떼고 쓰는 게 유행인가, 쓸데없는 상상을 해본다. 그 길로 공원에 나간다. 가까운 공원에는 운동을 하는 사람,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 등, 사람들이 꽤 있다. 내가 가는 코스를 걸었다. 은행이 떨어져 밟혔는지 부서져 있고 냄새도 좀 난다. 낮은 산이 있는 공원에 갔더니 아무도 없었다. 계단에 떨어진 감을 줏었다. 떫은 감인 데, 잘 익었으면 달다. 떫은 맛이 안 난다. 두 바퀴를 돌 때 또 하나 줏었다.. 이번 것은 떫었다. 한입 베어 먹었더니 입안 가득 떫어진다. 버렸다. 날이 금방 어두워진다. 하늘에는 반달이 떴는 데, 구름이 많아서 어두컴컴하다. 산책을 좀 짧게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무래도 여름옷을 정리해서 그런지 기분이 좋다. 아침과 점심을 먹었으니 저녁은 없는 걸로 하고 다시 차를 마시며 인터넷을 보다가 수업 준비를 다시 시작했더니,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모레 점심때 신주쿠 교엔 앞에서 만나서 점심을 먹기로 한 친구다. 12시에 점심을 예약한다고 했는 데… 내일부터 태풍이 온다면서 걱정해서 전화를 한 거다. 나는 전혀 몰랐던 일이라, 요새 태풍이 많네, 이름도 못 외우겠어. 그랬더니 친구가 26호로 진짜 대짜가 온단다. 어머 그래, 나는 재미있어서 깔깔대고 웃는다. 전혀 실감이 안 나기 때문이다. 친구가 점심 먹으러 시내에 나왔다가, 태풍 때문에 집에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냐고 걱정이다. 점심 예약은 했지만, 약속 장소를 바꾸고, 태풍은 당일날 보자고 했다. 태풍이 크면 약속을 취소해야지… 전화를 끊고 일기예보를 검색해서 태풍정보를 봤다. 아주 대단한 태풍이 납시는 모양이다. 내일 오후가 걱정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에 예상 강우량이 2-3백미리란다. 상상이 안 간다. 아무튼 대단한 일이 벌어질 모양이다. 기온도 최고기온이 22도로 떨어진다.

친구가 요전에 실을 많이 보내왔다. 그래서 입고 싶은 게 있는지 생각해 놓으라고 했다. 이 친구는 아주 오랜만에 만난다. 2월이었나, 아는 분 장례식 때 조금 봤다. 나는 화장터까지 가지 않았지만, 친구는 화장터에 가서 그냥 스친 것이다. 요전에도 약속했는 데, 급한 일이 생겼다고 취소했다. 이 친구와 만나기가 힘들어서 요 몇 년 사이에 못 봤다.. 어쩌다가 겨우 약속을 잡았는 데, 이번에는 태풍까지 부는 난리다. 만나지 말라는 건가… 천재지변이 일어나 못 만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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