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08 어느 재일 제주도 사람 2세의 생활사 (5)
5. 별장, 돌하르방과 고향 제주도
몇 년 전에 치바켄 바닷가에 있는 작은 집을 샀습니다.
저는 바다를 참 좋아합니다.
아마 제주도 사람 피가 흐르고 있어서 일까요?
저는 오래전부터 바닷가에 있는 집을 사고 싶었습니다. 결국 염원이 성취되어 바라던 데로 바닷가에 인접한 땅과 집을 살수 있었지요.
그 집 마당에는 제주도에서 온 제 키( 180 이상)정도로 큰 돌하르방이 두 분 서 계십니다.
제가 그동안 고향단체에서 해왔던 회장 임기를 무사히 마치니까, 집행부에서 그 기념으로 돌하르방을 제주도에서 배편으로 실어다 주었습니다.
제주도의 상징인 돌하르방이지만, 제가 사는 해변가 집에 아무런 위화감도 없이 자연스럽게 서있습니다. 그 동네 사는 일본 사람들이“이건 한국 석불이냐”고 하더군요. 그 말마따나 부처님처럼 편안한 얼굴로 서있습니다.
그리고 그 동네에는 옛날 제주도에서 물질하러 와서 정착한 제주도 해녀 아주머니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은 75세인데 지금도 바다에 물질을 갑니다. 가끔 소라나 전복을 따다 저한테 아주 싼가격으로 나누어줍니다. 아마 같은 고향사람이라서 그렇겠지요.
요즘, ‘고향’이 뭔지를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일본에 와서 40년간이나 한 번도 제주도에 가지도 않고 일하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낳아서 길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니까, 인생에 만년 10년은 제주도 고향에 돌아가서 살다가 돌아가시더군요. 아버지는 자식들 눈치도 안 보고, 친척들이 잘해주니까, 고향이 더 지내기가 좋았겠지요. 저도 아버지가 제주도 고향에 돌아간 나이가 되었습니다.
‘고향’이라는 건 참 이상한 겁니다. 저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라 고향이라고 하지만, 부모님이 출신지이지, 살았던 적도 없거니와 추억은 더 더욱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고향이 마음을 의지할 곳이 되었습니다.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건 큰 재산입니다.
젊었을 때는 고향에 관심이 있어도 관여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고향이나 자신의 나라를 몰라서, 일본인이 아닌 걸 부끄럽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제가 처음 우리나라에 간 건, 25살 때, 친척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였습니다. 서울을 경유해서 제주도를 갔지요.
서울에 내렸을 때, 우리나라 땅을 밟았을 때, 발바닥이 감전된 것처럼 전류가 흐르더군요.
충격적이었습니다.
여기가, 이 땅이 마음에 그려왔던 내 나라구나.
그러나, 말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한국말이라고 알고 있던 것은 제주도 말이라. 그 게 제주도에 가니까 말을 알 수가 있었지요,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이었으니까. 결국, 저는 제주도말 속에서 자란 거지요.
돌아가시기 직전인 친척 할머니에게, 일본에서 왔다고 인사를 하니 주위에 계신 분들이 손을 잡아드리라고 하더군요. 제가 할머니 손을 잡으니, 죽음의 문턱에 있는 할머니가 제손을 꼭 잡아주셨답니다. 태어나서 생전 처음 만난 잘 알지도 못하는 친척 할머니,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해서 내손을 잡아준 감촉,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 친척이라는게 이런 거구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대해 알기 시작한 건 재일동포단체와 관계를 가지면서 였습니다. 주위에 계신 분들로 부터 알게 모르게 많이 배웠지요. 우리나라에 관해 알게 되면서, 고향에 대해 알아가면서, 한국인, 제주도 사람인 자신에 대해 인간적으로 자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 인생에 있어서 가치관이 변화라는 의미에서 큰 전기였다고 봅니다. 그때까지 저는 인생에 관해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지요. 그냥 막연히 일을 열심히 하면 매일 밤 술 마시러 갈 수 있는 거라고생각했었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고향일에 관여하는게 저한테 점점 커지고 소중한 일이 돼갑니다. 결코, 고향을 위해서 일하고 있다고, 봉사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제 심정이 그렇다는 거지요.
제 노후는, 고향바다로 통하는 일본바다 곁에서, 고향 제주도를 닮은 곳 바닷가 집에서, 제주도 수호신인 돌하르방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살다가 죽을 겁니다.
그 건 저한테 행복한 노후가 될 겁니다.
이 기회에 제 인생을 뒤돌아보니, 셀 수없을 만큼, 힘들었던 일, 억울했던 일, 부끄러웠던 일, 슬펐던 일, 즐거웠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저이지만, 열심히 살아왔다는 작은 자부심도 있습니다.
저는 가족을 비롯해서 인생행로에서 만났던 여러분들께 많은 걸 배우면서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그분들께 깊이 감사를 드려야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런 기회가 있었다는 것도 고마운 일입니다.
저도 곧 환갑입니다(2002년 현재).
'재일 제주도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천 할아버지와 할머니 (0) | 2019.11.16 |
---|---|
재일 제주도 사람 2세 생활사 해설 (0) | 2019.11.09 |
재일 제주도 사람 2세의 생활사 (4) (0) | 2019.11.09 |
재일 제주도 사람 2세의 생활사(3) (0) | 2019.11.09 |
재일 제주도 사람 2세의 생활사 (2) (0) | 2019.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