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12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 동경은 맑고 따뜻한 날씨였다. 어제는 온종일 비가 오면서 한겨울처럼 추운 날씨였다. 이번 주는 뒤숭숭한 서울에서 돌아온 것도 있지만, 수요일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참담한 기분으로 지낸 불안정한 일주일이었다. 어제부터 오늘 서울 광화문에서 있다는 대규모 집회 소식에 걱정이 앞섰다. 무사히 사고 없이 끝나야 한다. 괜히 노심초사 걱정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고 가장 먼저 서울의 날씨를 체크했다. 다행히도 날씨가 좋았다. 춥거나 비가 오면 모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겠나 싶었는데, 참 다행이었다. 하늘이 돕는구나 싶었다. 나도 인터넷으로 현장 중계를 볼 마음으로 부지런히 바쁘게 일을 시작했다. 현미와 잡곡을 씻어서 불리고, 산더미 같은 빨래를 두 번에 나눠서 돌렸다. 그보다 먼저 이틀 전에 빨아서 덜 마른빨래를 말렸다. 베개도 널었다. 손빨래도 나눠서 빨았다. 빨래가 많아서 베란다가 가득 찼다. 날씨가 좋아서 가을이 찾아온 베란다 앞 느티나무 사진도 찍고 할 일이 많다. 겨울 이불도 바람을 쐬고 내일 깔 예정인 겨울용 카펫도 내놔서 말린다.
밥과 된장국, 연어를 굽고 달걀도 구워 반찬을 챙겨서 밥도 든든히 챙겨서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베란다에 넌 빨래를 빨리 마르라고 뒤적거린다. 베란다가 부족해서 볕이 잘 들어오는 침실 창에도 빨래를 걸었다. 밥을 먹고 빨래도 대충 말리고서 산책을 겸해 무인판매에 갔다. 집에 야채와 과일이 부족해서 혹시 살 것이 있나 싶어서 나갔다.
날씨가 좋아서 단풍이 진 주위 풍경이 아름답게 빛난다. 아름다운 주위 풍경을 곁눈질하면서 가까운 농가 마당에 들렀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강을 지나 항상 가는 무인판매에 갔다. 감자와 토란에 토란대 등이 있었지만, 내가 살만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빈손으로 돌아오는 길에 헌책방에도 살짝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단풍이든 주위를 살짝 둘러보고 바쁘게 서둘러 돌아왔다. 서울 광화문이 궁금해서다.
오마이TV를 켠 것은 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김제동이 나와서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초등학생부터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참 힘이 있고 설득력이 있다. 프로로 시민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 발언보다 보통 사람들의 발언이 훨씬 좋았다. 중학생, 고등학생에 대학생, 그중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한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대규모 집회에 나온 것에 안전사고가 걱정스러웠다. 한편으로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참가한 심정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는 육체적인 장애가 있는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아주 건강한 시민이었다.
인터넷으로 현장 중계를 보면서 느낀 것은 내가 몰랐던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었다. 상상을 초월한 규모의 집회에서 질서를 지키며 평화스럽고 즐겁게 집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만큼 참가자들이 대규모 집회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박근혜를 둘러싼 보도기사를 읽으면서 느꼈던 혼돈스러움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한국에서 ‘시민’들이 이번 사태를 정신 차려 똑바로 눈을 뜨고 보며 행동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단하다. 감동스럽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드라마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시민’이 주역이다. '사리사욕'에 눈먼 사람들은 '사리사욕'이 아닌 모두를 위해 일어서 행동하는 ‘시민’이 무섭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나처럼 외국에 사는 수많은 한국사람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국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부디, 사고없이 집회가 무사히 끝나기를 바란다. 그런 것이야 말로, 자랑스러운 ‘희망’이 될 것이다. 찬란한 햇살에 가을 풍경이 아름답게 빛난 날이었다. 서울에서 대규모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들이 '미래'이며 ‘희망’이다. 달이 밝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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