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29 동네 단풍 1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흐리고 비가 많이 오는 축축한 날씨였다. 기온이 높아서 춥지는 않았지만, 습기가 많아 은근히 싸늘해지는 날씨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빨래를 해서 널었다. 아직 비가 그다지 오지 않을 때에 세탁기와 손빨래를 나눠서 했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내일도 비가 온다니까. 빨래하기에는 오늘이 나은 것 같았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목이 이상하다. 감기에 걸렸구나. 어쩐지 어제 열이 좀 있는 것 같더라니… 학생에게 옮아온 것 같다. 요새 감기 걸린 학생들이 많았다. 감기걸린 아이들이 수업 중에 입도 막지 않고 콜록거리면서 균을 퍼뜨리더니, 결국 나도 걸리고 말았네. 금요일에 미국 친구도 감기에 걸려서 휴강이었다.
금요일 아침에 호주친구가 다음 주에 온다고 연락이 왔다. 다음 주 내 수업에서 특강을 할 예정이다. 그 준비를 해야 하는 데 잊고 있었던 것이다. 호주친구에게도 연락을 하고 사무실에도 준비를 도와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리고 후배에게 강의가 끝나서 식사를 같이 갈 약속을 하려고 연구실에 갔더니, 없다. 메일을 해야겠네. 후배가 바쁘다면 다른 친구를 찾아야지. 갑자기 바빠진다.
오늘은 감기라서 집에서 쉬고 많이 먹는 걸로 정했다. 창밖의 풍경은 단풍이 든 시기라서 날씨가 흐리고 비가 와도 색감이 예쁘다. 빛을 받으면 훨씬 더 예쁘지만, 흐리고 비가 와도 좋다. 점심으로 밥을 해서 먹기로 했다. 정말로 오랜만에 집에서 밥을 하는 것이다. 반찬도 했다. 아무 생각없이 반찬을 하다 보니 가짓수가 좀 된다. 계란말이, 어묵을 넣은 야채볶음, 된장국, 고등어구이, 피클, 낫토, 김으로 성찬이 되고 말았다. 결국, 야채볶음은 전혀 못 먹고 저녁에 빵과 같이 먹었다. 배부르게 밥을 먹고 감기약을 먹었다. 그리고 방에 앉아서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냄새가 나지 않게 신경을 썼지만, 생선을 구운 다음에 냄새가 난다. 아, 비린내…
그런데 오후 3시 가까워서 햇살이 나왔다. 창밖의 느티나무에는 얼마 남지 않은 나뭇잎에 비가 내린 물기가 담겨있는 데, 햇살이 비춰서 색감에 빛이 더해지다. 색감이 물기를 머금어서 더 선명하면서 빛의 반사도 많아진다. 눈앞에 돌연히 환상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그 시간에 햇살이 비추지않았다면 생선 냄새가 풍기는 부엌에 발밑에서 찬기가 올라오는 집에서 감기로 콜록거리면서 처량하게 지내는 꼬질꼬질한 하루가 될 뻔했다. 오후의 황금햇살이 멋있는 선물을 보냈다. 한시간은 커피를 마시면서 창밖을 쳐다보며 행복한 기분에 젖어있었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안 될 것 같다. 바깥은 비가 많이 온 다음이라, 물기가 많다. 나는 감기에 걸렸다.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잠깐 갈등을 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밖에 나가서 단풍을 봐야 할 것 같다. 어두워지기 전에 나가야지. 서둘러서 카메라를 들고 밖에 나갔다.
바깥에 나오니 기온이 높은 데 비가 많이 온 후라서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흐리다. 1분도 안 걸리는 단풍이 예쁜 곳에 갔더니 이번 주가 피크인 것 같다. 햇살이 있을 때 나왔으면 좋았을 걸… 좀 늦었다. 그래도 사진을 찍었다. 30분쯤 사진을 찍고 있었더니 멀리서 단풍을 보러 온 사람들이 온다. 도중에 집에 와서 화장실에 들렀다가, 다시 산책을 나갔다. 일년 중에 주변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놓치기가 아까워서 어두워졌지만 보러 나갔다.
저녁에 먹으려고 냉동한 빵을 하나 꺼내놨다. 옛날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글라데쉬사람이다. 몇 주 전에 동경에 왔을 때, 일부러 출신 대학까지 가서 내 연락처를 물었단다. 학과사무실에서 메일이 와서 연락을 했다. 그 후에 몇번인가, 전화가 왔는 데, 별다른 용건이 없는지라, 내가 전화하지 않아서 통화를 못했다. 감기에 걸렸다고 했더니, 목소리를 들으니 변함이 없는 것 같다고. 변함이 없기는 25년이 넘었는 데… 그래도 그에게는 변함없는 25년 전의 나인 모양이다.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자기네 집에 놀러 오라고… 나고야까지 내가 갈 일은 없지… 동경에 오면 연락을 하라고 했다.
그에게는 내가 아주 인상깊고 고마운 사람인 모양이다. 옛날에 박사논문을 쓸 때, 내가 큰 힘이 되어줬단다. 나는 도와준 기억이 없지만, 그에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의지가 되었단다. 캔터키에서 비스켓을 사다 달라고 해서 사다 준 적이 있다. 그 비스켓을 아침마다 하루에 하나씩 열흘에 걸쳐 먹었단다. 오늘 처음 들었다. 그리고 밤에 힘들 때 나에게 전화했었다. 나는 아는 사람이 힘들어하는구나 생각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나는 아무에게나 하는 것이었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울컥한다. 아마도 그만큼 절절하고 힘들었던 시기였나 보다. 그는 고마움을 느꼈던 만큼 표현했던 친구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통화하면서 그 시절 유학생들은 순수하고 인간성이 괜찮았어, 지나고 보니까 알 것 같아. 통화를 끝내고 보니 40분 이상이나 통화했다. 내가 아는 주위사람들은 나와 통화를 하면 수다스럽다. 내가 보기에는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 모양이다.
저녁을 먹고 찍어온 사진을 보니, 단풍을 보러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네 단풍 사진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