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2 ‘고독병’에 걸린 사회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흐리고 기온도 낮은 추운 날이었다. 최고기온이 11도, 겨울 날씨인 것이다. 아침에 일교시가 있는 날이라, 시간에 맞춰서 서둘러 나갔다. 모노레일을 타면 두 정거장이다. 그 시간에 모노레일은 붐빈다. 입구가 붐벼서 겨우 탔다. 다음 정거장에서는 타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입구 언저리만 붐빈다. 안은 텅텅 비었다. 거기에 서있는 여학생이 게임을 하느라 길목을 막고 서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덕분에 어처구니가 없으면 입이 벌어진다는 것과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는 현상도 체험했다.
어제는 강의가 끝나서 학교에서 역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유학생이 버스에서 계속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다. 가만히 봤더니 버스에서 통화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신경이 곤두서서 그 학생이 스스로 눈치껏 알아서 통화를 그만두길 바란다. 내가 조용히 하라고 했다. 원래, 버스에서 휴대폰 통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외국인이라서 매너 없이 행동한다고 욕을 먹는다고 했더니, 유학생이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운전사가 화를 내기 전에 내가 먼저 주의를 했다. 그 학교에서 가르치는 입장이니까. 오늘 아침에도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라는 걸 알면 주의를 준다. 아니, 붐비는 시간에는 주위를 봐가면서 행동하는 것이 상식이다. 근데, 요새는 그런 것이 없다.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안 되지.
어제는 수업이 끝나고 자료를 찾을 것이 있어서 남았다. 영국인 동료가 자기 아들에 관해 하소연을 한다. 점심시간에 잠깐 듣다가 딴 일을 했더니, 고 2 아들이 중간고사 기간인 데, 휴대폰을 끼고 게임하고 노느라고 공부는커녕 잠도 부족하단다. 아무래도 게임중독인 것 같다고 걱정이다. 아들이 자기 휴대폰을 보관해달라고 맡겼다가 오밤중에 찾으러 다닌단다. 자기 휴대폰을 못 찾으면 엄마 휴대폰을 버린다고 난리를 친다고, 동료는 아들 휴대폰을 학교에 가져와서 사물함에 넣고 열쇠를 채웠다.
아들은 대학진학률이 높은 고등학교에 다닌다. 점수가 모자라면 진급도 못한다. 그녀는 일본사회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 아들이 진급을 못하면, 인생이 순조롭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일본은 한국 이상으로 패자 부활전이 없는 비정한 사회이다. 그렇기에 주변 어른들은 앞을 보면서 잔소리를 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들은 태연하다. 왜냐하면 표면적으로 주위와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로 자신들에게 보이는 걸로 평가를 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보는 것과는 달리 평가는 정해진 기준에 따라 하기에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올 수도 있다. 아무리 다른 학생들이 공부를 안 한 것처럼 보여도 자신이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평가는 선생들이 하는 거니까.
동료가 보기에 많은 아이들이 게임중독이 아닌가 우려한다. 게임중독은 알콜중독이나, 쇼핑중독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서 잘 모를 뿐이다. 내가 보기에 동료의 아들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동료가 보기에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되기 쉽다고 한다. 요새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한다고… 대학생도 마찬가지다.
오늘 아침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요새 학생들은 휴대폰으로 많은 걸 하기에 친구가 필요가 없단다. 휴대폰으로 자신의 세계에 빠져 지낼 수 있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귀찮단다. 역시 그렇구나. 월요일에 읽은 책이 ‘고독병’에 걸린 사람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 일본에는 ‘고독병’에 걸린 사람들이 아주 많단다. 적극적으로 실감한다. 동경에서 그냥 살다 보면 일 외에는 전혀 말을 하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하다. 나는 버스를 타거나 내릴 때 인사를 한다. 가게에서도 인사를 한다. 의식적으로 인사를 하려고 노력한다. 인사조차 안 하는 사람은 무서우니까… 내가 아는 일본 사람들은 은근히 ‘수다쟁이’였다. 그런 사람들이 수다도 못 떨어서 ‘고독병’에 걸려 묵언수행 중인 것이다. 자신들이 택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강제적으로 ‘묵언수행’을 시키고 있으니 괴로울 수밖에 없다. 한편 ‘묵언수행’ 중이 아닌 휴대폰을 끼고 사는 학생들도 ‘고독’하다. ‘고독’한‘고독’ 한 것이 당연한 것이기에 그들은 ‘고독’한 줄도 모르고 ‘고독’하다고도 못한다. 소통을 하는 도구가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들이 더 ‘고독’해간다는 것은 패러독스다. 소통은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네팔아이 때문에 골치가 아픈 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인 모양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야 하는 데, 밤늦게까지 이불 속에서 휴대폰을 만지는 걸 보면 화가 나서 발로 걷어 차고 싶다. 그렇다고 발로 걷어 찰 수는 없으니까,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오밤중에 긴급히 연락할 일이 없거든. 동료도 아들이 이해가 안 된다고 화가 나있다. 단순한 ‘세대차’가 아니라, ‘새로운 문제’인 것 같다. 골치가 아프다.
사진은 동경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인 창 밖의 느티나무, 노랗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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