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30 네팔 여행 3- In Lumbini Part 2(명상 센터)
메디테이션 센터는 미얀마 절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위빠사나 명상센터였다.
나는 메디테이션이라는 말을 들어도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몰랐다. 명상센터라고 해도 또한 전혀 몰랐다. 아무런 기초지식도 없이 간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리고 리셋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찾고 있었다.
명상센터에 들어가기 전에 나에 관한 질문이 있어서 그 걸 써서 가야 했다. 자세한 내용은 잊어버렸지만, 정신적인 문제와 그에 부수한 현상들에 관한 질문이었다. 솔직히 쓰라고 해서 솔직히 썼다. 자살을 생각했던 것도, 과식증을 경험한 것도, 기억상실을 한 것도,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요 몇 년 동안 살아있어야 할 이유를 찾았지만 못 찾았다.
명상센터에서는 새벽부터 잠자는 시간까지 한 시간씩 Sitting Meditation과 Walking Meditation을 번갈아 가면서 하는 게 주된 것이었다. 그리고 오전에는 스님과 인터뷰하면서 수행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한다. 저녁시간에는 스님의 설법이 있었다. 나는 메디테이션이라는 게 수행인 줄 몰랐다. 그동안 요가도 했었지만 그것 또한 수행인 줄도 몰랐다.
명상센터에서는 묵언수행이라, 스님과 인터뷰 할 때 이외는 말을 해서도 안되고,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쳐서도 안된다. Sitting Meditation에서는 호흡에 집중을 해서 매 순간 의식하는 것이었다. Walking Meditation은 걷는 것을 가능한 한 천천히 하면서 그 또한 모든 동작을 매 순간 의식하는 것이었다. 매 순간을 의식하며 움직인다는 게 얼마나 피곤한지 온 몸이 무겁다. 천천히 걷는 것도 너무너무 힘든 것이었다. 내가 있던 방은 도미토리로 단기 체재하는 세 사람이 같이 썼는 데, 나와 남미에서 온 것 같은 여자, 네팔 스님이었다. 내 침대 옆에는 남미에서 온 사람은 새벽에 스트레칭부터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목욕해서 수행이 시작된다. 밤에도 자기 전에 스트레칭으로 마무리진다. 네팔 스님은 아주 요령 있게 하는 것 같았다. 말도 안 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지만, 서로 뭔가가 오간다.
내가 정말로 깜짝 놀란 것은 스님, 독일 스님이 하시는 설법을 전혀 못 알아듣는 것이다. 설법이 영어이거나, 녹음 테프여서 만이 아니었다. 단어는 알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영어를 못해서 헤매는 햇수가 있는데, 그렇게 모를 수가 없는데 문맥을 전혀 모른 것이었다. 내가 몰라서 헤매고 있다는 걸 스님이 아셔서 한국어로 된 번역서를 주셨다. 아주 기초적인 게 쓰여있다면서 그 책을 읽고 조금은 이해를 했다.
그래도 스님 설법은 어려웠다. 불교철학을 영어로 듣고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 어렵다. 스님이 나에게 설법 테이프를 듣던지 아니면 책을 빌려준다고 해서, 책을 빌려달라고 했다. 자살을 하면 왜 안되는지에 관한 논문이었다. 내용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역시 어려웠다.
그 걸 나중에 Sandy에게 말 했더니, Sandy도 불교철학을 영어로 제대로 알게 쓴 걸 못 읽어봤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에게 불교용어는 너무나 당연히 알고 있는 것처럼 쓰지만, 우리말로도 설명을 못하겠는데, 그 걸 영어로 번역하거나 영어로 설명은 도저히 못 할 것 같다. 그 걸 영어로 읽은 것이다. 돌아가도 한참을 돌아갔다. 그리고 깊이 있는 이해를 했는지도 전혀 자신이 없다.
실은 일본말에도 불교용어가 참 많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불교용어가 많아서 불교용어라고 인식을 못할 정도이다. 이 나라도 기층문화는 불교문화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걸 모른다. 너무나 익숙해 있어서 모른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몸이 아주 무겁고 근육통으로 피곤했다. 힘든 육체노동을 한 것처럼 피곤했다. 열흘 째가 되니 네팔 스님이 살짝 열흘 때부터 좀 달라진다고 알려준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 달라졌다. 그 건 수행의 결과인지 아니면 그 저 익숙한 것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명상센터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장기체재로 수행하는 사람들이었다. 코테지에 머물면서 명상센터에 오는 서양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시아 사람은 네팔 스님 외에는 나밖에 없었다.
명상센터는 작았다. 작지만 모든 게 충족되고, 거기에 우주가 있는 것 같았다. 명상 센터 안에서 들어오는 대문까지 10미터도 안될 것 같은 거리가 참 멀게 느껴졌다. 가능하다면 영원히 그곳에서 수행을 하면서 살아도 좋을 것 같았다. 나의 수행이 잘 진행이 된 것 같지는 않았다. 스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진행되는 걸 보니까.
명상센터는 나에게 쾌적한 곳이었다. 비록 모기가 들끓고 개미가 떼 지어 다녀도. 다른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와 서양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이라, 나에게는 편하고 맛있었다. 여기는 청소도 수행하는 사람들이 한다. 그리고 비용도 정해져 있지 않아서 기부하는 방식이다. 나는 얻은 게 참 많아서 감사의 뜻으로 성의를 기부했다. 미얀마 비구니 스님은 헤어질 때 매일 30분이라도 명상을 계속하라고 하셨다.
Sandy가 온다는 전날 명상센터를 나왔다. 그렇지 않으면 Sandy를 다시 못 만날 것 같아서였다. 명상센터에는 꼭 2주 동안 있었다. 내가 명상센터를 나올 때, 독일 스님이 열쇠를 가지고 오셔서 나를 위해서 뒷문을 열어주셨다. 뒷문으로 가는 게 한국 절이 훨씬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다음에 장기로 다시 오라고 하셨다. 스님, 장기라는 게 어느 정도입니까, 저는 일을 하고 있거든요. 일주일 이주일이 아니라 최소한 한 달을 잡으라고 하셨다.
명상센터에 있으면서 한국 절 지붕이 보이면 내가 돌아갈 곳이라고, 반가웠다. 주지스님이 갔다가 오라고 하신 것을 생각하면서 안심하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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