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31 네팔 여행 4- In Lumbini Part 3(한국 절에서 만난 사람들)
올해 마지막 날인 오늘도 동경 날씨는 포근할 것 같다.
오늘 내가 할 일은 네팔 여행 블로그를 마치고, 연하장을 써서 우체국에 가서 넣고 간단히 청소를 하는 일이다. 요번에 사온 닭 한 마리를 그 날부터 오늘 아침까지 먹었다. 당분간 닭을 보고싶지 않을 정도로 질리게 먹었다.
명상센터에서 돌아오니 그전에 한국 절에 있던 사람들이 다 어디론가 가고 없다. 그전에 있던 사람들과 친하지는 않았지만, 오래있을 것 같았는데 포카라로 갔다고 했다. 그 대신 항상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간다. 나는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다. 특별히 한 사람과 깊이 친하지도 않지만 모두에게 평등하게 인사하는 사람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빈자리가 있으면 앉아도 되냐고, 못보던 얼굴인데 어디서 왔냐고 말을 한다. 주로 외국사람과 편하게 말을 섞는다. 오히려 한국사람들에게 긴장한다. 독일스님 영어 설법처럼 문맥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이라서다. 간혹 한국 사람들 중에 처음부터 자신의 ‘가방 끈’이나, ‘돈’, ‘사회적 지위’를 중심으로 대화하려는 사람은 경계한다. 그야말로 잠시 스쳐가는 만남에서 ‘가방끈’이나, ‘돈’, ‘사회적 지위’는 중요하지 않거든요.
한국 절에서 만난 인상 깊은 사람들이 있었다.
스리랑카에서 성지순례를 오는 단체 관광객들이다.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그 절에는 거의 매일같이 성지 순례하는 단체 관광객이 온다. 어느 날은 500명 이상이나 되는 단체 관광객이 왔다. 버스도 절마당에 다 들어오지 못 할 정도로 사람들이 왔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흰옷을 입었다. 그리고 질서 정연하게 조용히 재빨리 버스에서 내려서 씻고 빨래를 해서 널고 행복한 표정으로 담소를 나눈다. 눈 앞에서 그 사람들이 움직임을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부딪침이 없이 평화롭게 일을 진행할 수 있나 기이하게 봤다. 훈련된 질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조화로운 아름다움이었다. 절마당에 그 사람들이 빨래/ 흰옷들이 휘날리는 광경은 정말로 장관이었다. 이층에서 내려다보니 스리랑카 사람들은 큰 잔치에 사람들이 같은 기쁜 마음으로 모인 것 같았다. 나도 어쩌다가 그 광경을 엿보는 것 같았다.
이튿날 젊은 영국여자와 이것에 대해 경이롭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서양사람들이라면 난리가 났을 거라는 것이다. 야, 말도 마, 일본 사람들이 질서정연하다고, 천만의 말씀, 이런 건 상상도 못 해요. 한국 사람들도 자기가 잘난 사람이 많아서 시끄러워, 어머, 어쩌면 사람들 행동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는 거니!!! 이 게 불교신자여서 그런 건가? 스리랑카 사람이어서? 아마 스리랑카 사람들이 그런 게 아닐까? 나 스리랑카에 가고 싶어졌어. 할어버지들도 남자들도 튀지 않아, 잘난 척도 안 하고.
어느 날은 저녁 무렵에 밖에서 돌아오는 길에 스리랑카 단체 관광객들이 도착해서 마야데비 템플로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사람들이 먼 길을 와서 피곤할 텐데도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보았다.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그야말로 환희에 찬 표정으로 날아가는 것 같았다. 빨리 걷거나 달리는 게 아니라,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처럼 천천히 날아서 가는 것이었다. 마치 강력한 자력에 끌리는 것처럼 마야데비 템플을 향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 육체는 내 눈앞에 있었지만 영혼은 다른 데로 날아가 있었다. 환희에 찬 사람들은 그 사람들 자체가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그 빛은 연예인이나, 유명인사가 발하는 것과는 달랐다. 아주 수수하면서 겸손하고 투명한 아름다운 것이었다. 내가 본 그 빛들은 그들의 신앙과 경외심이었으리라.
내가 수다를 떨었던 영국 여자도 기도(수행)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처음 봤을 때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전형적인 미들 클래스였던 것이다. 즉, 고급 호텔이라면 모르는 데, 백패커나 히피 같은 사람들이 주류? 인 한국 절이라니 전형적인 미들 클래스도 히피가 되면, 차림이 히피처럼 변해가는데,뭐야, 그 품위는?
그녀는 매일 아침 마야데비 템플에 가서 티베트식으로 부처님 탄생한 곳 앞에서 절을 했다. 즉, 오체투지식이다. 몇 배를 하는지 묻지 않았는데, 매일 백배쯤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아침 공양을 끝내고 마야데비 템플로 향하는 길에 돌아오는 걸 보면 옷이 땀에 다 젖어서 물에 빠진 사람처럼 되어온다. 한 번은 절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단체 관광객이 들어가서 한구석에서 절을 계속하는 게 보였다. 자신의 얘기를 해주었다.
처음에는 남자 친구가 같이 인도를 여행하면서 어떻게 여행을 하는지, 여행하는 방법을 가르쳐줬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인도에서 스튜 케스를 몇 개나 들고 다녔다며, 얼마나 웃겼겠냐고. 남자 친구와는 헤어졌다. 그다음부터는 자신이 스스로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점차 스튜 케스도 줄어들고 지금은 아주 가볍다고 했다. 영국에 일어나는 일들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걱정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세계평화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라는 그녀도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기도하는 생활을 하려서 집을 팔아서 왔다고 했다. 기한을 정해서 있다고, 기도하는 생활을 마치면 일상으로, 자신의 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도 장기로 체재하면서 자신들의 수행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탈리아 어느 섬에서 왔다는 할아버지도 요가를 했고, 그때도 수행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내 옆방이기도 해서 같이 아침밥을 먹을 때도 있었다. 이 할아버지 영어는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Sandy에게 그 할아버지 영어를 못 알아듣겠다고 했더니, 악센트가 세서 그럴 거라는 것이었다.
석양을 한번 같이 본 미국 사람도 한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지금은 여행 중이라면서 10년 정도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일본에서 뭐하냐고 묻길래, 아주 재미없는 직업이라고 대답을 해뒀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 중에 직업을 물어본 사람은 그 사람이 처음이라서 당황했다. 그 친구는 앞으로 농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사람도 수행생활을 보내는 것 같았다.
명상센터에서 돌아온 날, 우연히 한국에서 온 젊은 여자 두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은 시인이 되고 싶다고, 시를 써가면서 살고 싶다는 사람이었다. 그 친구는 사업을 해서 돈을 벌 것 같았다. 둘 다 참 건전한 사람들이었다. 포카라와 카트만두에 관한 정보도 많이 얻었다. 백배도 같이 했다.
그리고, 코끼리 무늬가 있는 바지를 입고 다니던 젊은 청년과 말을 했고, 같이 옆에 있는 중국 절에 저녁 먹으러 원정을 가기도 했다. 이 친구는 중국사람들과도 사이좋게 지내서 처음에 한국 사람이 아닌 줄 알았다. 한국 절에 있다 보니 한국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다니는 걸 알았다. 백패커라는 여행자들이 많다. 내가 여행을 시작했던 80년대 후반이나 90년대 초반에도 한국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었는데, 격세지감이 있다. 내가 여행을 시작했을 무렵에 태어난 친구들을 만나는 거니까. 그리고 나는 한국을 떠난 지 25년이 넘으니까, 젊은 친구들이 아는 한국을 나는 모른다.
코끼리 친구와 다른 사람들과 중국 절에서 저녁을 먹고 조금 걸어서 일몰을 보러 가기도 했다. 일몰을 보고 여운에 젖어있다가, 어두워지면 반딧불이가 잔뜩 몰려있는 나무를 이 친구가 ‘발견’해서 ‘크리스마스 트리’라 불렀는데, 우리는 모기에 뜯겨가면서 신기한 광경을 보곤 했다. 하필 왜 그 나무에만 반딧불이가 들러붙는지? 신기했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쏟아질 것처럼, 내 눈에는 3D 영상처럼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한국 젊은 친구들과 가깝게 3일 정도를 보내니 정이 들었다. 그들이 다 카트만두나 포카라로 떠났다. 같이 지내던 친구들이 떠나니 갑자기 절이 텅 빈 것 같았다. 나는 비자를 바이로와에서 연장이 가능한 줄 알고 있었다. 비자가 만기 되는 전날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바이로와에서 하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포카라로 가면 그 날로 할 수 있으니까, 포카라로 가라는 것이었다. 이것도 갑자기 정해졌다. 뒷날 포카라로 떠나기로 했다. 스님께서 포카라 가는 길도 알려주셨다. 스님께 돈을 좀 바꿔달라고 했더니, 아주 좋은 레이트로 바꿔주셨다. 그리고 다음에 장기로 살러오라고 하셨다. 가는 날도 밥을 많이 먹고 가라고 하신다. 밥도 많이 먹고 후식으로 나온 바나나도 점심으로 많이 챙겼다.
무엇보다도 스님이 다음에 장기로 살러오라고 하신 말씀에 내가 돌아갈 곳이 생긴 것처럼 기뻤다.
네팔은, 룸비니에서는 모든 게 풍요로웠다.
사람들이, 마음이, 자연이 풍요로웠다. 그 걸로 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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