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05 겨울바다 2
겨울바다가 계속된다. 페리에 타서 전화를 했다. 1시 20분에 출발하는 페리에 탔다고, 도착하는 터미널에 마중 오기로 되어있다. 페리 승선시간은 40분으로 긴 시간이 아니다. 그리고 페리가 운항하는 구간은 동경만 안이라서 아주 파도가 높아지는 일은 극히 드물 것이다. 그래도 아주 가끔은 페리가 안 뜨는 일도 있겠지. 페리의 운항속도도 아주 느리다. 저쪽에서도 같은 시간에 페리가 출발을 하는지라, 도중에 마주친다. 페리에 탄 손님도 별로 많지 않았다. 한적하고 나른한 오후에 평온한 바다와 같이 페리에 있었다. 가끔 앞으로 나가서 사진을 찍으면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추스르다 보니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동경만에는 작고 큰 배들이 떠있고 지나간다. 그리움이라고 바다를 보니 반가웠다. 동시에 내가 그리워했던게 이 바다가 맞나 싶을 정도로 생경했다. 축척된 기억속의 낯익은 모습이 아니라, 낯선 관광지와 같은 느낌이었다. 부두에 도착해서 선착장이 보이고 바다가 보였지만, 이상하게 바다 냄새가 별로 안 났다. 그림에 그려진, 무대장치인 바다에 내가 들어가서 페리에 탄 것 같다. 바다에 떠있으면서도 동떨어진 현실감… 도대체 나와 바다, 나와 배가 쌓아온 수많은 기억과 현재가 전혀 연결이 안 된다. 바다도 박제가 되나? 날씨가 너무 좋았던 것이다. 바다 냄새와 같이 저장된 수많은 기억으로의 여정은 차단되어 새로운 분류의 바다로서 기억이 저장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새, 맞은 편에 페리가 도착할 항구가 보인다. 페리가 출발했던 항구보다 작고 한산하다. 저 멀리에 내가 갈 곳도 아스라이 보인다. 뒤돌아보니 작고 긴 방파제와 귀엽게 빨간 등대가 있다. 페리가 도착해서 내렸다. 터미널 건물에서 나오니 아주 많은 오토바이가 열을 지어서 부릉부릉 소리를 내고 있었다. 보통 오토바이들이 아니다. 비쌀 것 같은 대형, 소리도 아주 우렁찬 오토바이들이 모여서 신년 축하 모임이라도 가졌는지, 줄지어 승선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토바이 소리가 시끄러워서 지나가길 기다렸다. 마침 마중나오신 분과 거기서 마주쳤다.
이튿날 돌아오는 길에도 페리를 탔다. 시간이 좀 늦어서 서쪽은 해가 바다로 꼴까닥 넘어가고 난 후였다. 바다에 해가 진 잔영이 비추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색감이었다.. 등댓불이 흔들렸다. 흔들린 것은 등댓불이 아니라, 사진을 찍은 카메라였지만, 등대불이 흔들린 것처럼 보인다. 내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출발했던 쪽으로 도착시간은 오후 6시로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항구를 찍었더니, 이 사진도 흔들리고 번졌다. 마치 내 마음이 흔들리고 눈물이 번진 것 같은 표정이다. 마음은 약간 흔들렸지만, 눈물이 흐르지도 번지지도 않았다. 짧은 여정이였지만, 그리움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흡족한 여행이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리움이 절절해지기 전에 좀 더 편하게 바다를 만나러 갈 수 있을 것 같다. 바다를 만나러 가는 행로는 역시 배가 될 것이다. 다른 세계로 들어갈 때, 어떤 행로를 택하느냐, 아주 중요하다. 의식이기도 하니까. 나의 그리운 세계로의 행로 중 하나가 배를 타는 것이 되겠다.
아직도 겨울바다를 만났던 여운에 잠겨있다. 바다 냄새가 난다. 추억의 바다냄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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