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09 그림책과 깡통
오늘 동경 날씨는 맑았지만 기온이 낮아서 추웠다.
나는 오늘 아침 첫 교시에 강의가 있었다.
겨우 시간에 맞게 학교에 도착했다.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가지고 교실로 간다. 가야 할 교실을 까먹었다. 교실이 어딘지 위아래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헤매다가 교실에 들어갔다. 나는 방향감각이 없고 길치다. 다른데서도 시간마다 학생들에게 물어본다. 여기 내 교실 맞지?
겨울방학 동안에 일본 선거가 끝났고, 한국도 대선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일본과 한국, 중국 톱이 바뀌는데, 어떻게 시대가 거슬러 올라간다고, 정권이 바뀐 초기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희망적인걸 느낄 수 없는 현실이라는 말했다. 아마 올해도 힘든 한해가 될 것 같다면서 한참 수업을 하다가 왠지 추운 것 같아 보니 난방을 안 켰다. 서둘러 난방을 켰다. 학생들에게 아주 미안하다. 강의를 하는 사람은 떠들다 보면 추운 걸 모른다. 학생들에게는 새해들어 학교에 나온 첫날일 텐데 추웠을 것이다. 기말 리포트를 받았다. 안가져온 사람은 메일로 첨부해서 보내라고, 다음주에 제출하면 점수가 좀 낮아진다고 주의를 한다. 일년전에 수강을 했던 학생과는 재수강인데도 친근감마저 생긴다. 그 학생도 친근감이 있는지 오랜만에 나를 보고 싱글벙글하다. 감상문에 전혀 관계가 없는 사항인, 자기 여자 친구 얘길 썼다. 다음 시간에는 축하를 해줘야지… 고향에 갔다온 여학생은 선물로 과자를 준다. 이건 아주 드문 일이다. 수업을 끝내도 학생들이 무더기로 나를 쫓아온다. 서로가 필요한 말들을 주고받는다. 다른 교수들이 수업에 들어가면서 나를 바라본다. ‘저게 뭐야, 조폭도 아니고 항상 무더기로 다녀.’ 그런 눈으로 쳐다보면서 지나간다. 나도 약간 창피하다. 항상 학생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
수업을 끝내고 감상문을 읽고, 다음 시간에 피드백 할 것을 표시해 놓는다. 리포트를 읽고 점수를 매긴다. 제출할 서류도 내고, 새해인사와 사무적인 확인도 했다. 아주 가볍게 일을 마쳤다. 애매한 점심시간이라, 가져갔던 간식을 점심으로 먹고 도서관에 갔다. 새로 나온 잡지를 가볍게 읽었다. 카운터에 가서 책을 반납하고, 새로 책을 빌렸다. 다 읽지 못한 책을 집중해서 마저 읽는다. 한 권은 좋은 책이라, 다시 읽으려고 반납을 안 했다. 일찌감치 3시쯤에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바지도 들어갔고 걱정했던 바지 폭발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걱정해서 그런지 예상보다 여유가 좀 있었다.
집에 오는 도중에 있는 중고 책방에 들러서 그림책(잡지)을 샀다. 계절은 벌써 봄을 향한 기운이 보인다. 깡통도 하나 줏었다. 내가 좋아하는 스누피 그림에 손잡이까지 달린 깡통이다. 아주 특별한 깡통이다. 자칭 깡통수집가가 보기에도 드물게 보는 형이다. 오사카 유니버설스튜디오에서 파는 과자가 들었던 것이었다. 일을 시작하는 첫날부터 좋은 일이다.
조금 더 걸어오다가 단지 안에 피어 있는 꽃을 좀 꺾어왔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드라마를 보면서 쉰다. 내일 준비를 하고 목욕을 해서 일찍 자야겠다. 내일도 강의가 있다. 슬슬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간다. 언제까지나 슬픔에 젖어있을 수도, 황당해 있을 수도 없다. 평범한 일상생활, 그 자체가 ‘작은 희망과 행복’을 느끼게 하며 치유하는 힘이 있다. 하늘에서도, 나에게 힘을 내라고 예쁜 깡통을 선물로 주지 않았나? 예쁜 꽃도 많이 있었다. 그래 세상은 아직 쓸 만한지도 몰라. 이렇게 속도 없이 낙천적으로 산다. 언젠가 추운 겨울이 지나 봄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