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10 캔버라에서 작품전시회
오늘 캔버라는 어제와 다름없이 맑은 날씨다.
여름에 맑다는 것은 좋은 의미 만이 아니다. 뜨거운 태양이 용서없이 내리쬔다는 의미이기도 하기에 반갑지 만은 않다는 것이다. 어제도 마당에 나갔더니 마치 오븐에 들어있는 것 처럼, 빨래 건조기에 들어있는 것 처럼 "열풍"을 느꼈다.
나는 현재 캔버라에 있다.
지난 달 29일에 시드니에 도착해서 친구 Toto네 집에서 이틀밤을 자고 31일에 캔베라에 왔다. Toto남편이 목수다. 아주 잘생긴 남자다. 근데, 요번에 같이 지내면서 보니까, 아주 괜찮은, 쓸모있는 남자라는 걸 알았다. 자기 일에, 집안 일, 요리와 쇼핑까지 다 도맡아서 한다. 나를 돌보는 것도 마치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것 처럼 신경을 써줬다. Toto가 워낙 깔끔을 떠는 성격이다. 아주 현명하고 착하고 좋은 데, 한가지 흠이 있다면 요리를 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점심을 먹고 나면 금방 저녁준비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다. 그러니 요리를 잘하는 남편을 만났다는 것은 "천생연분"이라는 것이다. Toto가 임신해서 3개월에 접어들어 피곤한 모양이였다. 그래도 좋은 시간을 보냈다.
시드니에서 캔버라를 향하는 버스 안에서 햇볕에 타서 노란 들판을 봤다. 전혀 예쁘지도 않은 산을 보면서 내가 그리워했던 캔버라를 보는 듯했다. 내가 그리워했던 캔버라를 향하는 멋없는 풍경들이 어느 새 반가운, 그리운 풍경이 되어 있었다. 마치 고향을 향하는 듯, 마음이 설레고 들떴다. 캔버라는 내 고향이 아니다, 집도 가족도 없고, 단지 친구가 조금 있을 뿐인 데, 어쩌라고...
캔버라에서는 Elva동생인 Maria네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Maria와 조지라는 남동생이 같이 산다. Maria는 칠레에 갔을 때 만났다. 호주에 몇 십년을 살았지만 영어를 잘 못한다. 즉, 영어를 안해도 살수 있었다는 것이다. 남편이 먼저 돌아가시고 지금은 약간의 장애가 있는 남동생과 같이 산다. 나와 영어를 하면서 영어가 늘기를 바란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스페인어의 세계에 살고 있다. 나도 몇개의 단어는 안다. 린도, 리코, 아구아, 케소, 챠오, 올라,그라시아스 등.
시내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곳이라, 시내에 오기도 수월치가 않다. 지난 주 목요일에 호주국립대학에 왔었다. 친구인 테사교수와 점심약속이 있어서...오전에는 내셔널 라이브러리에 들렀다. 왔다는 인사차...아침에 시내에 나오면서 처음으로 버스를 탔다. 교통카드가 기한이 지났단다. 그래도 그냥 타란다. 이게 캔버라 인심이다. 두 번이나 버스를 공짜로 타니 너무나 미안해서 세 번째는 도저히 공짜로 못 타겠다. 그래서 내셔널 라이브러리에서 호주국립대학까지 호수를 끼고 걸어갔다. 나는 여기를 걷는 걸 좋아한다. 단지 햇볕이 강한 것이 약간 문제가 될 뿐이다.
테사교수는 학계에서 언니와도 같은 존재로 제자들도 나를 이모처럼 생각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나 나를 모르는 조카도 있고, 내가 모르는 조카도 있다는...나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작지만 근사한 호텔에서 런치를 했다. 호텔이 리노베이션을 해서 좀 바뀌어 있었다. 전에 강상중 교수님이 왔을 때도 같은 호텔에서 점심을 먹었다. 테사교수는 나를 같은 곳에 몇번이나 초대했었다. 테사교수는 알고 지낸 것이 15년된다. 제주도에서, 서울, 동경, 캔버라에서 만나지만, 항상 식사를 사준다. 나는 항상 염치없이 얻어먹는다. 15년이나, 전생에 나에게 빚을 진게 있나? 이번 생에서는 내가 빚을 지고 있다.
지금까지 주로 호주국립대학에 비지팅으로 체재를 했었다. 테사교수가 있는 Coombs빌딩에 있었다. 나는 이 빌딩을 좋아한다. 미로처럼 길을 잃기가 쉽지만, 좋다. 한국교수님이 지금 서울 연세대에 가서 안계신다. 빌딩 한켠이 빈 것처럼 허전하다.
그리고 시내에 가서 킴스라는 한국가게에 들렀다. 그냥 인사차... 가게에서 너무 반갑게 맞아 주신다. 우선, 검은콩두유를 주시고, 의자를 내주면서 앉으라고... 한국교수님이 한국에 가셔서 너무 허전하단다. 나는 혼자서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라, 가게에 물건을 많이 사는 좋은 손님이 아니다. 어쩌면 영업을 방해할 정도로 수다를 떨러 가는 존재인 데, 기억을 하고 반갑게 맞아준다. 이 게 캔버라 인심이다. 마음씨 좋은 사람들의 인심인 것이다. 집에 가면서 소면을 사가려고 했더니 이번은 그냥 가져 가란다. 다음에 와서 사라고...달랑 소면 하나를 사는 데, 얻어왔다. 아마 나는 킴스를 소면처럼 길게 기억할 것이다. 반갑게 맞아준 인정과 함께 고맙게 기억하겠지...
나를 여기로 부른 사람은 이번에 같이 참가하는 친구다. 파트는 전혀 다르지만 내 작품을 평가해서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사람이다. 그래서 나를 많이 도와주고 있다. 밑에 글은 내가 쓴 문장을 이번 행사(West Bank Festival)에 맞게 다시 고쳐쓴 것이다. 친구가 고쳤다.
혹시 캔버라에서 이 블로그를 읽으신다면, 이번 주 14-16일에 Turner에서 열리는 West Bank Festival에 오시길 바란다. 아마, Alliance Francaise에서 내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5일이 중심이 될 모양으로 웍숍과 패션쇼도 할 예정인 데, 어떻게 될지 아직 확실히 모른다. 오늘 오후에 정해질 것이다. 웤숍에는 뜨개바늘과 실(면실로 가는 것)을 가지고 참가할 수 있다. 웤숍에서는 지난 번에 포스팅한 '공백'에 올린 사진의 것을 만들 예정이다. 브로치로 목걸이로, 팔찌로도 쓸 수 있다. 이글은 내셔널 라이브러리에서 써서 올린다.
Want Bleeps and Whistles?
We don't have K-Pop at the Festival.
But we're DELIGHTED to bring you K-Knit, thanks to long-time Canberra visitor from Korea: Sun-Hui Koh, who resides in Tokyo, works as an academic, is a exponent of yarn-as-expressionist who's developing a cult following everywhere she visits.
Now, that's yarn of the woollen variety, not the oral.
So, not familiar with Sun-Hui's work?
Her knits and textiles are high octane, coffee-house, avant-gard motifs, equal parts madness and genius. But Sun-Hui's motifs are as sensitive as they are witty, and narrate her youth and the post-war experience of island province of Jeju, Sun-Hui's birth home.
Sun-Hui is self-taught. In her own words, she writes:
Why here, why now, why this work?
It's a cliche but it's in the blood and the blood runs through my veins.
In Korea, before the industrial revolution and the rise of Korea as a modern economic power, my family were artisans - handy-craft works, especially all the staples, such as knitting and sewing. We made EVERYTHING ourselves.
My older siblings? They knew the art. And all the tricks!
Me in the family order? I had no chance to learn, so I tried to learn by myself used my older sister’s leftovers.
My sisters LAUGHED at my knits - they were proper knitters taught at knitting school.
So my knit wasn’t proper and skill also. But , I like to create a bit different from others.
Basically, my works are for myself and working the yarn I can dream and escape to another world, to support social action, to preserve memories of Jeju - the sea, wave, seasons. I like to show my works are live by themselves, because of that I make holes for their breath, twist for their exercise.
I hope live longer with someone else, company with their life.
'동경생활 > 캔버라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캔버라 교통 (0) | 2020.03.01 |
---|---|
West Bank Festival (0) | 2020.02.15 |
캔버라에서 웰컴 파티 (0) | 2020.02.11 |
호주에서 설날, 시드니 캔버라 (0) | 2020.02.06 |
캔베라 안내 2 (0) | 2018.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