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18 바다를 따라서
월요일인 오늘 동경 날씨는 흐리고 바람이 세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기온이 낮지는 않고 비가 온다는 데… 날씨가 꾸물거리고 몸이 무거운 걸로 봐서 비가 올 것 같다. 나중에 비가 오면 오늘은 산책을 못하나?
나는 필드에서 몸은 돌아왔는데, 몸과 마음은 필드에 있는 것도 아니고, 집에 있는 것도 아닌 어중간하게 붕 떠있다. 필드가 오랜만에 앓은 '열병'이기에 '열'이 내려도 일상으로 돌아오기에 시간이 걸린다. 그전에는 모든 게 빠르고 정확하게 원위치에 돌아가더니, 요새는 어중간한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생활공간에 필요한 채널들이 맞아가는 튜닝을 하는 시간이랄까… 이런 시간이 그저 싫은 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몸과 마음에 필요한 시간이라서 그런 상태에 있는 걸 테니까…
필드에 나갈 때와, 들어갈 때 어떤 경로로 가느냐에 따라 필드가 다르게 보인다. 여행과 비슷하다. 현지 사람들 눈높이로 현지를 보려면 현지 사람들이 이용하는 경로와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이번에 갈 때에 동경역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오라고 했다. 직행버스는 현지에 빨리 도착하지만, 필드에 가는 감각을 점점 가깝게 하는 점에서는 안 좋다. 내가 사는 곳에서 동경역으로 가는 교통편도 귀찮다. 몇 번 갈아타면서 완행열차를 타고 갔다. 현지에서 가까운 역에는 기차가 한 시간에 한번 정차한다. 직행이 아니라, 천천히 현지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에서 버스보다 기차가 훨씬 좋다. 현지에는 집에서 출발해서 세 시간 반이 걸렸다. 기차를 선택한 것은 노선도에 바다를 따라서 노선이 있어서 좀 더 빨리 바다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기차를 타보니 거의 현지에 가까워져야 기차에서 바다가 보였다. 많은 땅이 매립이 되어 바다가 멀어졌다는 데, 정말일까?
치바역에서 갈아탄 기차에서 앞에 앉아있는 손자를 데린 할머니와 수다를 떨었다. 할머니라고 해도 50대로 손자에게는 할머니지만, 그냥 아줌마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멋쟁이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어렸을 때, 자기 어머니가 집 근처에서 김을 채취해 말려서 파는 일을 했었단다. 지금은 매립을 해서 거기에 바다가 있었다는 것조차 상상도 못 하게 달라졌지만, 예전에는 동경만이 어장으로서 아주 좋았던 것 같단다. 주위에는 어업을 해서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줬다. 어쩌면 이분은 내가 그런 말을 들으러 간다는 것은 ‘감지’했나보다. 바다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고 했더니, 자기가 아는 말을 해준다. 내가 가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정보량이 많다. 동경만에서 어업을 하며 살았다는 생활이 그리 먼 옛날이 아니었다는 걸 실감한다. 이런 걸 통해서 현지와 시간적으로, 알고자 하는 일과, 그리고 나의 감각도 점점 가까워져 간다. 지도상에는 동경과 가까운 데, 현실적으로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동경이 팽창에 팽창을 거듭해서 발전해 나갔고, 위성도시들도 생겨나며 발전을 했지만, 현지에는 그런 영향이 미치질 않았나 보다. 현지역에 내렸다.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얼마 안 된다. 아주 작은 시골역이었다. 이렇게 한적한 시골역에 내린 적이 있었는지? 동경에서도 조금만 벗어나면 작은 ‘무인역’이 많다. 단지 내가 그런 데에 내릴 일이 없었던 것뿐이다. 하물며 한 시간에 기차가 한번 다니는 곳이니 한적한 것은 당연하다.
산속 겨울에서 따뜻한 바닷가로, 유채꽃은 퇴색을 했고 일찍 피는 벚꽃은 벌써 피고 지는 중이었다. 수선화도 한창때를 지나, 사그라지고 있는 중이였다. 그리고 내가 사는 곳은 동백이 겨우 피기 시작했는 데, 현지에는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기온이 아주 다르다. 최저기온이 내가 사는 곳과 8-10도 다르다는 것은 전혀 다른 곳이라는 것이다.
현지에서 돌아오는 길은 페리를 탔다. 페리는 갈 때와는 정반대로 돌아오는 길이 된다. 방향도 반대다. 갈 때가 육로로 걸어가는 길이라면 돌아오는 길은 바다를 건너는 길을 택했다. 바다를 통한 길이 지도상으로 가깝고, 현지 사람들이 많이 쓰는 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가 말을 들었던 사람들 세계가 바다를 따라서 이동을 했고 일을 하며 살아가는 세계이다. 배를 타니, 나도 '고향'에 갔다가 다시 도회지로 돌아가는 것처럼 감상적인 기분이 된다. 바다를 따라서 어릴 때 지냈던 세계에서, 살벌한 동경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살아가는 세계가 전혀 다르다. 착찹하다착잡하다.
바다가 동경만이지만, 바람이 있어서 파도가 높아 페리가 흔들렸다. 날씨가 흐려서 내 마음처럼 시야도 밝지가 않았다. 거친 바다, 이런 바다가 사람들이 일을 하며 살아가는 바다이다. 마냥 예쁘기만 한 바다는 박제되어 박물관에 전시된 것처럼 사람들이 살아가는 느낌이 안 난다. 이런 바다를 건널 때, 내가 건넜던 수많은 바다를 떠올린다. 같은 바다라도 내가 어떤 배에 타고 있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호화 여객선에 타서 내려봤을 때와 관광객을 위한 크루즈를 탔을 때, 현지 사람들이 생활하는 냄새가 물씬 나는 페리를 탔을 때, 이렇게도 다르구나. 당연한 것이, 새삼스럽다.
다음에 갈 때도 바다를 통해서 제주도 사람들 세계로 가야겠다. 그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왔고, 때로는 죽어간 바다, 죽어서도 바다가 보이게 묘를 쓰는 사람들, 나이를 먹어도 바닷가를 떨어져 살 수가 없다던 데, 나도 그 바다를 따라서 그 세계로 다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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