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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제주도 사람들

김석범 선생님

2012/05/26 김석범 선생님

 

오늘 동경은 오전이 아주 맑고 개인 좋은 날씨였다지금은 좀 흐려져있다

창밖에서는 환경미화 작업을 하는 사람이 잔디를 깎아대는 기계소리가 시끄럽다오늘은 평소보다 좀 늦게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빨래를 하고 베개와 이불도 말렸다지난 주너무 추워서 겨울이불을 꺼내서 덮었다날씨도 3월 말 날씨에서 뒷날은 7월 날씨로 뛰어넘는다일기예보를 보고 기온을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이 따라가질 못한다그래서 학생들도 감기에 걸려 마스크를 한 아이도 많고수업에도 지장이 있다요즘 학생들 체력이 약하다학생들 중에는 체력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먹는 것도 시원치 못한 아이들이 꽤 있다체력이 없으면 사실 아무 것도 못한다모든 것의 기본은 건강한 체력이다

지난주 수요일 수업이 끝나서 아주 오랜만에 김석범 선생님을 만났다친하게 지내는 영국친구와 같이 만났다선생님을 술을 좋아하시는 데 나는 술을 잘 못 마신다. 그래서영국 술 포대를 데려간 거다김석범 선생님을 안 것은 25년쯤 된다가깝게 말을 하게 된지는 15년이다

 

김석범 선생님이 10여 년에 걸쳐서 쓴 소설 화산도는 일본 순수 문학계에서 기록적인 장편이다. 400자 원고지로 13,000장 정도였다고 한다일본 글은 한글처럼 띄어쓰기가 없고 원고지 글자 수도 두 배가 한 장이어서, 한국식으로 원고매수를 계산하면 도대체 몇 장이 되는지 모르겠다김석범 선생님이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실은 뭔가를 ‘길게’ 쓴다는 공통점이었다. 사실재일동포 저명한 문화인과 유학생과는 거리가 있다같은 행사에 같은 회장에 있어도 도우미 유학생으로 있는 것과 그 행사를 대표하는 입장은 아주 다른 것이었다. 내가 박사논문을 끝냈을 때논문 매수를 들은 ( 논문 내용이 아닌 김석범 선생님이 재일동포 제주도 어른들을 불러서 축하모임을 열어주셨다그 자리에는 지금은 제주도 출신 대표적인 학자로 알려지는 리츠메이칸대학 교수 문경수 선생도 호출을 받아서 저 한 구석 말석에 자리를 잡을 정도였다중심에 계셨던 분은 김석범 선생님과 삼천리라는 잡지를 만드셨던 올해 돌아가신 시인 이철 선생님이다. 두 분은 일본 문화인들도 존경하는 재일동포 대표적인 지식인이기도 했다

내 논문은 1년 반에 걸쳐 400자 원고지로 5,000장 이상을 썼다. 김석범 선생님이 ‘장편’ 그것도 거대한 장편은 써보지 않은 사람을 그 게 얼마나 힘든 건지 모른다면서나를 대단하다고 평가해 주신 것이다선생님은 자신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자신이 쓴 것에 반쯤을 쓴 나를 대단하다고 했다자신은 상상력을 베이스로 한 픽션을 쓰지만나는 필드웍을 하고 자료에 근거해서 논문을 쓰는 거라길게 쓰는 게 더 어렵다고 한다나는 그 게 뭔지 전혀 모른다나는 많이 쓰고 빨리 쉽게 쓰는 사람이다그러나 긴 것을 쓸 때는 지금까지 쓴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앞으로 전개될 모든 것과의 관련성 때문에 스피드를 내기가 어렵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것과 별로 구애를 받지 않고 그냥 쓴다그 건 결코 잘 써서가 아니다다른 사람들처럼 ‘잘 쓰는’ 것 보다마감날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했다일본 사람들은 다른 건 잘 지키는 데 원고 마감날 만은 잘 안 지킨다. 주위 사람들은 문학부라서 ‘문장’에 관해 안목과 나름 일가견을 가진 비평가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뭘 쓸까어떨게 쓸까쓰고 나서도 만족을 못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시간이 아무리 있어도 모자란다. 아주 골치가 아프다그에 비해 나는 고민이 전혀 없다할 일이 많아서 어쨌든 빨리 끝내고 싶은 게 우선이다어차피 내가 쓰는 건내가 아니면 쓸 사람이 없어서 의뢰가 오는 것이다솔직히 말하면 ‘쓰면 된다’는 것이다

김석범 선생님이 쓰는 건 상상력의 세계이지만나는 발로 걸어 다니며 ‘현실’을 읽어내는 세계이다선생님이 보기에는 그 게 아주 재미있는 모양이다내가 필드를 나갈 때도 가끔 같이 나갔다말을 하기 시작하면 몇 시간이 훌딱 지나간다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나를 딸처럼 귀여워한다’고 하는데본인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나는 선생님 앞에서 선생님 일을 비판하고선생님은 그 걸 인정한다나이차는 있지만특정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거침없는 대화를 한다사실 거침없이 말을 할 수 있는 사이일을 하는 사람 중에는 아주 적다특히 일본에서는 아주 어렵다내가 지금까지 만나서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그 분야에 일인자이며 인간적으로도 젊은 사람의 오만방자함을 너그럽게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다

요 몇 년 동안 선생님을 만나고 대화를 나눌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그러면서도 선생님이 아직 건강하고 소설을 쓰는 현역작가이기를 바랐다. 올해 한국 나이로 90세가 되었다고 한다지금도 장편소설을 쓰는 작가이다죽을 때까지 장편소설을 쓴다니까당분간은 현역작가일 것이다오랜만에 만난 선생님은 얼굴도 몸도 약간 작아졌지만투쟁정신은 펄펄 살아있다. 선생님이 소설을 쓰는 것은 '투쟁'이고, '투쟁하는 방법'인 것이다.

지금도 살아있고소설을 쓰는 한 ‘투쟁’의 연속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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