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31 하느님, 재일동포를 도와주세요
이번 일본 지진이 난 이후, 일본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주시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재일동포들에 관한 일이 궁금했다.
일본에 20년 넘게 살면서, 사회학자라는 입장에서 일본 사회를 바라보는 걸 일로 삼아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길게 연구해온 사람들은 재일동포 1세들이었다. 재일동포 1세를 연구했지만, 그 옆에는 2세와 3세들이 있다.
이번 지진이 났을 때, 처음에는 내가 사는 동경이 아니고 대도시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아팠다. 내가 몸과 마음이 아플 때 재일동포들에게는 어땠을까? 지진이 난 곳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아팠을까? 일본의 아픔은 일본인만의 아픔이 아니라 그 땅에 인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이기도 하다. 즉 재일동포들의 아픔이기도 하다.
큰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피해,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원전폭발에 방사능이 흘러나와 동경 수돗물이 오염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번 지진은 일본만을 흔든 게 아닌 세계를 뒤흔든 지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일본 사람들은 일본이, 동경도 평온하다고 전한다. 외국 미디어들이 자신의 나라 일이 아니니까 일본 일을 과장해서 보도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일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런가 보다.
여기서 만난 일본에서 온 정치학교수와 대화를 했다. 내가 보기에는, 이번 일을 계기로 일본이 태평양전쟁 이후에 해왔던 방식의 발전, 정치와 경제, 사회가 한계가 왔다는 사인이니까 패러다임을 바꿔야 된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일본은 어떻게 변할까에 대해서 그 교수는 “아마 전력공급에 대해서 좀 바뀔 것이라”는 정도였다. 그 교수가 보기에 이번 지진으로 인해 일어난 일은 그다지 큰일이 아닌 것이다.
일본의 원전폭발로 인해 세계가 바뀔 지경인데도 일본은 바뀌지 않는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동안 일본 미디어가 외국인에 관한 보도를 보면서, 일본 사람들은 이번 사태에 외국인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을까 지켜보고 있었다.
예를 들어 산케이신문에서 생활보호를 받는 외국인(중국인) 영주자가 아이들을 유기(내다 버림, 어떤 사람이 종래의 보호를 거부하여, 그를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에 두는 일)하고 본국으로 도망갔다는 기사가 있었다. 유기했다는 아이는 중3과 고1짜리 아들이었다. 이정도 나이면 유기했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신문기사는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관대하게 생활보호를 주고 있는데, 이런 일이 나니까, 자식까지 버리고 자기 나라로 도망갔다는 투였다. 그러니까, 외국인에게 연금을 줄 필요가 없다거나, 외국인이라서 믿을 수 없다거나 그런 분위기를 풍긴다. 전문가의 코멘트도 실렸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도덕상 문제가 있다고 한다.
한국 미디어, 오마이뉴스에 어제 날짜로 ‘일본인들이여, 이 지경인데도 왜 분노 않나’라는 기사가 실렸다.
일본 사람들은 불안하며 분노하고 있다.
단지 그 분노의 화살이 외국인이나 사회적 약자를 향하지 정부나 정치가, 동경전력으로 향하지 않는다. 그리고 데모라는 가시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그럴 때 ‘외국인’은 공격하기에 좋은 타깃이 된다. 거기에는 어떤 ‘외국인’ 인가가 아닌, ‘외국인’이라는 분류가 벌써 자신들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일본에 있는 ‘외국인’은 대다수가 겉으로 봐서 ‘외국인’으로 분류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즉 중국인, 한국인 등 일본 사람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 문화적으로도 가깝다고 할 수있다. 그러나 실상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외국인’이니까…
2000년 이후, 북한에 의해 일본인 납치 피해자가 있다는 게 이슈가 되고 나서 일본과 북한 관계는 악화일로다. 일본과 북한과의 관계 악화는 북한과 일본이라는 국가 간의 관계 악화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는 일본인들에 의한 재일동포를 압박하는 걸로 나타났다. 재일동포는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조선적’을 가진 사람들로 서류상 나뉜다.. 북한과 일본의 관계 악화로 인한 압박은 주로 ‘조선적’ 재일동포를 향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어떻게 ‘한국국적’과 ‘조선적’을 구분할 수 있으며, 일본인과 재일동포를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인가?
구분할 수 없는 사람들을 구분해서 적대시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다보니 서로를 더 의심하게 되어 사회의 근본적인 바탕으로 필요한 상호 신뢰라는 게 무너져갔다. 한마디로 일본 사회가 허물어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적’ 재일동포에게는 일본 사회가 주는 심리적 압박과 국가에 의한 범죄로 인해 자신들 스스로가 죄책감으로 힘들어져간다. 재일동포로서는 믿고 신뢰했던 ‘조국’에 배신당한 박탈감을 느낀다. 박탈감을 느끼지만 그 박탈감을 메꾸어줄 다른 대안이 없다. 거기에다 ‘조선적’을 향한 압박은 ‘조선적’만을 향할 수가 없다. 당연히 ‘한국국적’이나, 중국인이나 한국인에게도 향한다.
이번 지진으로 인해 ‘조선적’과 ‘한국 국적’ 재일동포 피해가 심하다는 기사(재일동포 지진 피해 심각...지원 ‘절실’)를 읽었다. 양쪽을 합쳐서 실종자가 500여명이 넘는다는 것이다. 겨우 재일동포들의 피해상황이 윤곽이나마 잡힌 것이다.
좀 더 이른 단계에서 ‘조선학교 아이들도 잊지 말아 주세요’라는 기사(3월17일)가 있었다.
“이런 대재앙 속에서 일본 정부가 조선학교를 차별 지원하리라는 생각하지 않지만, 일본의 학교들과 똑같은 복구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희망적이었다.
그런데, 3월 2929일 자 기사 ”국가적 재난 생기면 재일교포 차별 드러나”에서는
“일본 정부는 가장 위험에 처해있는 조선 학교 학생들은 방치한 채 일본 학교만을 도와주고 있다”라고 한다. 기가 막히다.
자연재해는 인종과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적’이라고 방치되어야 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최저한 갖추어야할 상식을 버린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일본 돕기’는 큰 이슈가 되어있지만, 재일동포에게는 관심이 가지않았다.
이 기사들을 읽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재일동포들을 도와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힘이 없다.
하느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재일동포를 도와달라는 글을 쓸 정도밖에 없다.
‘조선적’이라고 해서 재일동포들은 일본에게 버림받고 한국에서 버림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본 사람들을 향한 ‘이웃사랑’이 결코 ‘일본 국적’이나 ‘일본 민족’을 향한 것이 아닌 것처럼, 한국 사람들이 따뜻한 사랑이 ‘조선적’이나 ‘한국 국적’을 가리지 말고 재일동포에게 향하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
한국사회의 따뜻한 관심이 어려운 시련을 겪고 있는 재일동포에게 힘과 용기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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