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02 삭발 소동
오늘도 동경은 한여름처럼 더운 날씨였다.
손님, 6미리로 갈까요, 4미리로 갈까요?
전 잘 모르겠는 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면 우선 6미리로 가보고, 결과를 보고 다시 4미리로 가던지요.
예.
6미리 기계로 머리를 몇 번 왔다 갔다 했다. 금방 끝이 났다. 거울을 가져다 뒷머리를 보여준다. 아직도 이상하게 보인다.
좀 이상한데요. 아니 잘 안 보여서 모르겠어요.
그럼, 시원하게 4미리로 가시죠. 4미리로 짧게 한 다음에 머리를 기르세요.
그래서 4미리로 머리를 거의 삭발하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이건 결과다.
어제 집에 있으니까 너무 더워서, 머리가 좀 길어서 답답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머리에서 땀이 목으로 흐른다. 머리숱이 많아서 한여름 더위에 털모자를 쓰고 앉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털모자를 정리해야지. 별생각없이 머리숱을 치는 가위를 들고 목욕탕에서 머리숱을 쳤다. 이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처음 머리숱을 쳐냈을 때는 잘려나간 머리가 많아서 기분이 좋았다. 우선 머리가 가뿐하다. 그런데 거울을 보니 인상이 영 아니다. 지명수배를 받는 사람 인상이다. 사람 인상 바뀌는 것도 순식간이다. 손으로 뒤통수를 만져봐도 울퉁불퉁하다. 다음날 정리하기로 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를 전체적으로 짧게 자르기로 했다. 범죄형 인상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짧게 잘랐다. 앞은 그런대로 봐줄 만했다. 거울로 뒷머리를 봤더니, 세상에 난리가 났다. 머리숱을 치는 가위로 사정없이 짧게 잘라내었던 것이다. 전체적으로 짧게 했더니 그 흔적이 아낌없이 드러났다. 큰일이다. 이대로 학교에 갔다가는 주위 사람들이 걱정하겠다. 드디어 미쳤다고… 학생들이 불안해하겠다. 선생이 오락가락하더니 완전히 갔다고… 사태 수습은 빠를수록 좋다. 내손으로 수습될 정도가 아니다. 전문가의 손을 빌려야 한다.
아침을 먹고 모자를 써서 역근처에 싸게 머리 자르는 곳에 갔다. 가게 안에서도 모자를 벗지 않았다. 가게에는 남자들이 줄지어 앉아있었다. 내 옆에 젊은남자가 와서 완전 밀착 상태로 앉는다. 변태인가? 내가 불쾌하다는 걸 알라고 한번 째려봤다. 상대방은 전혀 눈치를 못 챈다. 할 수 없다. 내가 의자에 반쯤 걸터앉는 식으로 나름 방어를 한다. 내 차례가 되어 머리 자르는 의자에 앉아서 연신 미안하다고, 너무 더워서 집에서 자르다 보니 이런 꼬락서니가 되었다고 사건의 경위를 설명했다. 그런데요, 제가 학교에서 가르치거든요. 학생들이 제머리를 보고 쇼크를 먹으면 안 돼요. 그러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그래서 위의 대화가 된 것이다. 4미리면, 아주 대단히 짧다. 두피가 훤히 다 보인다. 웬만한 남자도 이렇게 짧게는 못한다. 머리 길이로 남자와 경쟁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말로 어쩌다가, 별생각없이 살다 보니, 남녀라는 성별을 초월하고 말았다. 종교도 초월해서 본의 아니게 스님 스타일에 가까워졌다. 죄송하다. 그런데, 남녀를 초월하고 종교를 초월하는 것이 이렇게 간단한 것인 줄 몰랐다. 애초에 그런 생각조차 한적도 없긴 하지만 말이다. 그냥 헤어스타일 하나로 한방에 해결한다는… 세상에는 저항한다는 의미에서 삭발을 하기도 한다는 데… 거듭 죄송하다.
오늘 얻은 교훈은 별생각 없이 머리에 손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전후좌우를 생각해서 가위를 들고 머리를 잘라야 한다. 그렇지않으면, 죄 없는 주위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다. 나도 깜짝 놀랐다. 충격의 삭발 스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