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05 4.3 모임 사람들
오늘 동경은 맑고 낮 기온이 29도까지 올라갔다. 아침저녁으로선선해서 지내기가 힘들지 않지만 햇살이 너무 강하다.
어제는 도서관에 갔다가 저녁에 오카치마치에서 4.3 관련 모임이 있어서 다녀왔다. 저녁 6시 반 모임인데 도서관에서 나간 것은 4시 전이었다. 같은 동경이라도 서쪽 끝자락과 동쪽에는 거리가 있다. 모임에 가기 전에 아메요코에 들러서 운동화를 두 켤레 샀다. 운동화가 많아도 강의를 갈 때 신을 만한 것이 적어서 사러 들렀다. 아메요코에 가면 운동화가 확실히 싸다. 가진 돈이 여유가 있었다면 더 샀을 것이다. 요새 유행인 니트로 보이는 운동화에 쿠션이 좋은 걸로 검은색과 남색으로 두 켤레 샀다. 요새 운동화를 신고 다녔더니 저녁에 집에 와도 다리가 붓지 않아서 좋았다. 결국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다리가 붓지만 밖에서 일을 할 때 다리가 붓지 않는 것만으로도 몸이 편한 느낌이 든다.
4.3 관련 모임은 실행위원회이기도 하다. 나는 실행위원도 아니고 행사 뒤풀이에도 거의 간 적이 없다. 실은 올해 행사를 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변한 것 같아서 왜 그런지 알고 싶어서 나간 것이다. 나는 항상 일정한 거리에 있다. 그냥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30년을 참가한 것이다. 올해 행사에 가서 느낀 점은 있으나 마나 한 나조차도 반갑게 맞아 준 것이다. 지금까지 와는 확연히 달라서 솔직히 어리둥절했다. 지금까지는 달갑지 않은 존재로 여기는 것 같았다. 행사 때 가서 작은 역할을 하는 도우미일 뿐이니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전혀 반갑게 맞아줄 필요가 없는 하찮은 존재다. 행사가 자리를 잡아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4.3이 제주의 역사에서 한국의 역사로 자리매김을 했다. 대통령의 국가폭력이라는 것도 사죄를 했으니 운동으로서 충분한 성과를 걷은 것이다.
나도 대학생 때부터 멋도 모르고 참가해서 30년을 다녔기에 올해 70주년으로 행사로서도 큰 성공을 걷은 것을 계기로 졸업할 생각이었다. 참고로 김석범 선생님도 졸업하신단다. 항상 옆에서 많은 수고하는 왕언니께서 어젯밤에 하는 말이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참가한다" 고 해서 좀 난감해지고 말았다. 나도 계속 가야 하나? 모르겠다. 실은 4.3 행사라도 가지 않으면 제주도 사람을 볼 일이 없다. 신오쿠보에 식사라도 하러 가지 않으면 한국사람을 볼 일도 없다. 그렇다고 일본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일도 거의 없는 인간관계와 생활이다. 동경에서는 인간관계가 너무 어렵다. 내가 살고 있는 동경이 아니라, 외국에 나갔을 때가 인간관계도 편하고 알게 된 사람들과 관계도 오래간다.
어제 4.3 행사에 참가하면서 많이 변한 사람에게 물었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냐고? 일본에서 정치운동이 너무 심각하고 어둡다고 한다. 나도 그 분위기를 안다. 그에 비해 4.3 모임은 편하고 즐거우며 성과도 있다고 한다. 제주도와 관련된 일을 했지만, 제주도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게 보였다. 4.3 행사를 하는 사람들이 원래 손익을 계산하고 생각했다면 못했을 것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바보 같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거라고 해뒀다. 행사를 주최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자신의 일처럼 거들고 있다.
동경에서 첫 행사를 할 때와는 달리 실행위원회에 일본 사람들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제주도 출신 유학생과 재일 제주도 사람 몇 명이 모여서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일본 사람이 반인 것 같다. 어제 참가한 사람을 봐도 반이 일본 사람이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 출신이 둘, 제주도 출신이 하나, 재일 제주도 사람이 다섯?, 일본 사람이 일곱 명이었다. 내가 굳이 분류해서 그렇지 거기에는 일본 사람이나 재일동포, 유학생 출신 구별이 없다. 나만 빼고 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로 없으면 안 되는 사람들인 것이다. 모임이 이렇게 되기도 힘든데, 기적처럼 아주 분위기가 좋다. 나로서는 모임이 그렇게 되는 걸 볼 수 있었다는 게 다행이다. 어느 정도 거리에서 오래 관찰했던 사람에게는 졸업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이다.
제주도 사람들만의 4.3에서, 한국사람들의 4.3으로 일본 사람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역사가 되어 가는 과정을 본 것은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행운인 것이다.
4.3 모임은 작은 꽃들이 무리 지어 핀 수국과 비슷한 것일까? 하는 생각에 수국 사진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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