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04 열 받는 도서관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이 35도였단다.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아서 26도, 열대야라는 말이다. 최저기온이 26도는 올여름 들어 처음이다. 요새는 너무 덥고 몸도 불편해서 거의 집에서 지냈다. 식량이 떨어져 가도 있는 걸로 연명하는 중이다. 근처 농가에서 생산한 것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산다. 오늘도 도서관에 가면서 농가에서 내놓은 걸 사면서 사진을 찍었다. 꽃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고나갔더니, 꽃들도 더위에 지쳐서 축 늘어져 있었다. 요새 더위는 내가 오븐 속에서 지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역 근처나 내가 잘 가는 대학이 빨간 벽돌로 만들어져 있다. 보기에는 나름 괜찮은 데, 요새처럼 더운 날씨에는 벽돌이 달구어져서 마치 오븐 같다. 달구어진 벽돌은 밤이 되어도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다음날에 다시 달구어지고, 소나기가 조금 내리면 저온 사우나 느낌이 난다.
내일 약속이 있는 데, 오후 한 시에 역 근처에 가는 것이 무서워서 도서관이 있는 학교로 약속 장소를 바꿨다. 아침부터 도서관에 가서 지내다가 만나서 말을 듣고 방향을 설정하고 저녁에 돌아오려고… 요즘 가장 궁금한 것이 최고기온이다. 내일도 만만치않은 모양이다. 무서운, 살인적인 더위다.
오늘은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는 날이라, 밖에 나가야 한다. 책을 배낭에 넣고 짊어지고 나간다. 나가는 길에 우체국에 가서 지난번에 썼던 모뎀을 돌려주느라고 보냈다. 그리고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가까운 공원에 있는 야외풀장이 오늘은 단체로 빌려줘서 일반은 입장을 못한단다. 풀장에서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모여서 음악에 맞춰서 준비체조를 하고 있었다. 카메라로 철망 넘어 사진을 찍었다. 실은 철망이 안보이게 가깝게 가서 찍을 수도 있었지만, 요즘 세상에 ‘변태 아줌마’로 오해받으면 곤란하니까, 철망밖에서 사진을 찍었다. 내가 괜히 오버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코 오버가 아님을 밝혀둔다. 나도 몰랐는 데, 일본에서는 유명했던 사건 중 하나인 젊은 남자가 초등학생 어린이를 유괴 성폭행하고 살인했던 ‘미야자키 쓰토무’ 사건 범인이 범행을 하려고 가까운 초등학교에 사전조사차 수차례나 왔단다. 주위는 어린이집을 비롯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학교가 모여있는 곳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등교시간에는 사복경찰들이 쫙 깔려있단다.. 주위는 차도 다닐 수가 없는 공원에 둘러싸여 자연환경이 아주 좋은 곳이기도 하다. 거꾸로 말하자면 나쁜 사람들에게는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기에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세상이 하도 어수선해서 조심하는 것이 좋다. 어린아이들이 건강하게 노는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고 해도 이렇게 주의해야 하는 살벌한 세상이 되었다.
가는 길에 농가 마당에 있는 무인판매에 들렀다. 운 좋게도 야채가 조금 있었지만, 토마토를 한 봉지만 샀다. 두 번째는 차고에 놓여있는 것으로 나는 이 집 것을 좋아한다. 여기서는 오이를 한 봉지 샀다. 가지와 여주가 있었지만 안 샀다. 세 번째는 주차장에 설치된 무인판매대로 월, 수, 금요일에 야채를 내놓는다. 그런데, 야채가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내놓는 모양이라, 근래는 여기서는 잘 안 산다. 그래도 무슨 야채가 나왔는지 무단횡단으로 길을 건너가서 꼭 확인한다. 내가 이런 걸 보는 재미에 월요일에 도서관을 가는 걸 좋아한다. 이렇게 소소한 것들을 동경에 살면서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면이다.
도서관에서는 새로 구입한 책들을 체크했다. 지금은 여름방학에 들어간 상태라서 도서관에는 학생들이 아주 적었다. 그리고 도서관이 설정온도를 낮추었는지 선선하게 느껴졌다. 보통 28도 설정이면 4층 맨 꼭대기층은 아래층에서 열기가 올라와서 덥다. 이용자가 아무리 집중해서 책을 읽으려고 해도 집중을 못하고 잠자기에 딱 좋은 온도가 되는 데… 오늘은 서늘하게 느꼈다. 도서관이 설정온도를 바꿨다면 설정온도를 바꾸는데 3년이 걸린 셈이다. 점심으로 빵을 사서 먹으려고 갔더니, 빵집을 비롯한 식당들이 거진 문을 닫았다. 본격적인 여름방학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사건은 도서관을 나오려고 반납할 책은 반납하고, 새로 빌릴 책은 빌릴 때 카운터에서 일어났다. 반납할 책을 반납하고 예약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다시 빌릴 수가 있었다. 새로온 알바가 한 시간 뒤에 책장에 돌려놓은 다음에 다시 빌리라고 한다. 지난 주까지 그렇게 빌려왔는 데, 지금은 안된다고, 아니지, 새로온 알바라서 안 되는 것이다. 세상에 이 더위에 도서관에 오는 걸 생각하면 그런 대응을 하면 안 된다. 더군다나, 여름방학인 데… 아니다, 일본은 사람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의사를 무시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주특기다. 사람들이 어떤 서비스를 원하느냐가 아니라, 자신들이 관리하기 좋게 하면 되는 것이다. 도서관이 이용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관리자를 위한 것이다. 내가 다니는 도서관은 그런 경향이 지나쳐서 서비스에 관한 기대를 안 한다. 인간적인 대응이 필요 없다면, 로봇이 거기에 있었으면 좋겠다. 로봇이라면 기계니까, 인간적인 대응을 바라지도 않고 화도 안 날 테니까.
도서관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 순간에 화가 나고 말았다. 나는 이 도서관을 30년 가까이 쓴다. 소장하고 있는 책이나, 자료면에서는 아주 괜찮은 도서관에 속한다. 그러나, 사서도 없고 이용자를 위한 서비스면에서는 너무도 형편없는 도서관에 속한다. 무엇보다도 이용자의 모티베이션을 잃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도서관이다. 솔직히 도서관에 있는 사람들을 로봇으로 교체하는 것이 훨씬 혁신적인 도서관이 될 것 같은 데… 이용자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속을 뒤집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서관에서 도난 주의 안내방송을 한다. 오늘은 볼륨이 너무 커서 책을 읽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방송을 시작하기 전에 다른 음악을 좀 넣을 생각도 안 하고 이용자가 깜짝 놀랄 정도의 볼륨으로 갑자기 방송을 한다. 조용한 도서관에서 집중해서 책을 읽는 이용자에게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으면 같은 방송이라도 그렇게 무신경하게 못한다. 그동안 나는 많은 것을 건의했었다. 그러나, 간단한 건의사항이 실제로 실행되는 데, 일 년 이상 시간이 걸리는 걸 알았다. 그리고 도서관 사람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는 걸 알았다. 문제를 건의하는 ‘문제아’로 귀찮은 시선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건의를 하면 안 되는 걸 알았다. 사실 일본은 이런 곳이기도 하다. 가능한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
마지막에 속이 뒤집어져서 기분이 엉망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야채 무인판매에 한 군데 더 들렀지만, 살만한 것이 없었다. 계란집에 들러서 계란을 사고 돌아왔다. 오늘은 조심해서 다리를 굽힐 수가 있어서 오랜만에 집안에 걸레질을 했다. 화가 나서 빨래나 청소라도 해야지 풀린다. 집안을 두 차례나 걸레질을 했더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내친김에 손빨래도 하고 머리도 잘랐다. 뒷머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감이 안 잡힌다. 엉망인 도서관 서비스 때문에 괜히 머리가 고생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무인판매 사진이다. 복숭아는 친구가 가져왔다. 도서관에서 책상 위에 책과 같이 뒹굴다가 토마토 두 개는 간식으로 도서관 화장실에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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