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18 ‘외부세력’이라는 것
오늘 동경은 아침부터 흐리고 눅눅한 날씨로 가끔 비가 살짝 뿌리기도 한다. 기온은 그다지 높지 않아도 장마철처럼 불쾌지수가 아주 높은 날씨다. 올해 여름은 장마철이 길더니, 장마철이 끝나도 날씨는 장마철의 연장인 것처럼 습도가 높고 더운 날씨가 계속된다. 하늘에서는 천둥소리가 들리면서 비 오는 날 분위기를 제대로 잡고 있다. 이번 주는 도서관이 쉬는 주라서 나도 월요일에 야스쿠니에 다녀온 것 빼고는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면서 빈둥거리고 있다. 이 더위에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한국 신문에서‘외부세력’이라는 표현을 자주 본다. ‘외부세력’이라는 것은, 뭔가 일어나는 ‘현지의 당사자/이해 관계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표현을 하면 ‘현지의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나서지 말고 닥치고 있으라는 압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외부세력’은 어떤 사람들일까? 가까운 이웃, 옆 마을 사람, 다른 곳에 사는 가족이나, 친족일 수도 있다. 그 지역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도 특정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에 뜻을 동참하는 사람도 있다. 그 뜻에 동참한다는 것은 정신적, 물리적인 것이기에 실질적인 거리를 초월해서 국제적인 연대가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런 사람들이 정말로 ‘외부세력’인 것일까? 뜻에 동참한다는 것은 다양한 종류의 ‘당사자’의 일부다. 이런 사람들을 왜 ‘외부세력’이라 부르는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위안부'문제에 수요집회에 동참하는 일본 시민은 '외부세력'인가? 그야말로 '당사자'를 무시하고 아베 정권과 굴욕적인 합의를 본 현정권은 무엇인가? 그러나, 전혀 상관없이 엉뚱하게 ‘외부세력’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근래 일본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 외국에서 공부하는 일본인에게도 믿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호주에서 공부하던 후배가 있어서 캔버라에 가면 만나서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면서 동경에서 경험하는 걸 말하면 자신의 경험과 비추어 믿을 수 없는 경우가 있었나 보다. 올봄에 캔버라에 갔을 때, 후배가 규슈대학에 취직해서 부임하기 직전이었다. 그 후배와 나눴던 대화를 소개한다.
제가 박사과정을 하느라고 여기에 몇 년 있어서, 그동안 선배가 말하는 걸 믿을 수 없는 것도 있었어요. 근데, 요전에 제가 면접을 보면서 실제로 당하고 보니까, 요새 일본 분위기를 좀 알 것 같아요.
나는 내가 관찰하고 경험하면서 느낀 걸 말하지, 실증적인 연구를 하는 사람이 정확하게 해야지. 근데,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이번에 면접할 때, 교수진이 20 명 정도 모여서 면접을 하는 거예요. 근데, 한 교수가, 의대니까, 의사가 엉뚱한 말을 하는 거예요. 제가 연구했던 것에 대해서 오키나와 주민운동이 중국 공산당에서 뒷돈을 대주고 선동해서 한다는 거예요. 아니, 내가 현지조사를 하고 주민운동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는데, 지역 상공회에서 돈을 모아서 운동을 하는 거거든요. 어디서, 말도 안 되는 걸 읽었는지 모르지만, 전혀 사실과는 다른 걸 그렇게 공개적으로 말하더라고요. 저는 면접하는 곳이라, 직접적으로 그 의견에 반대하는 말을 못 했죠.
요새 풍조로는 그런 발언을 해서 자신의 ‘애국심’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 같아. 예전 같으면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도 그런 말을 못 하는데, 요새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영웅심리’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 일종의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것 같아.
아니, 거기를 연구한 사람을 앞에 두고 그런 황당한 말을 하면서 그 말이 옳다고 주위 사람을 동원하는 게 말이 되나요?
요새는 그런 당연한 논리적인 사고가 아니라,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 같아. 권력을 가진 사람이 말도 안 되는 걸, 말이 되게 하는 거지. 어때, 겪어보니까 내가 했던 황당한 일이 현실적으로 일어난다는 걸 알 것 같아??
이번 일도 제가 당하지 않았으면 못 믿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후배가 연구했던 지역의 주민운동을 두고 현지에 간 적도 없는 사람들이 황당하게 오키나와 사람들이 중국 공산당이라는 ‘외부세력’의 사주를 받아 일본 정부의 방침에 반대하는 주민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지역주민이 ‘외부세력’인 북한에서 공작금과 지령을 받아서 정권의 방침에 반대한다는 것이 되겠다. 그런데, 후배가 박사논문을 썼으니까, 그 지역의 주민 운동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 지역주민이 중국 공산당의 선동을 당하거나, 자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음을 알고 있다. ‘외부세력’이라는 말을 할 때, 당사자인 지역주민이 무지몽매하거나, 순진해서 ‘외부세력’의 선동에 따라 움직인다는 식으로 묘사한다. 지금 이 시대에 무지몽매한 지역주민이 어디에 있을까? '당사자'인 지역주민이 그 지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가장 민감하다. 단지, 어떻게 대응하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거기에는 지역주민에게 처음부터 ‘좌파’나 ‘우파’라는 사상이 있는 것일까? 현실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과 지역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인지에 대한 견해와 행동의 차이인 것이다.
이렇게 존재하지도 않는 ‘외부세력’이 간단히 생성되기도 한다. ‘외부세력’이라……. 그러니까 오늘 같은 날씨에 천둥과 번개는 ‘외부세력’인가? 아닌가? 천둥과 번개가 응답을 해줬으면 좋겠다. 응답하라 ‘외부세력’!
사진은 8월 초순에 찍은 연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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