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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제주도 사람들

칠석날에 김석범 선생님

2014/08/31 칠석날에 김석범 선생님

 

오늘 동경 날씨는 맑았다가 흐렸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 주말부터 일주일 내내 비가 오는 날이 계속되었다. 기온도 같이 내려가서 가을이 급격히 찾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큰 비가 아니어도 비가 오면 빨래를 못한다. 어제도 오전에는 맑은 날씨여서 빨래를 해서 널었다

오늘도 맑은 때는 이불을 널고 베개를 말리다가 흐려지면 이불을 걷었다가를 거듭하고 있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울어대던 매미 울음소리도 힘이 없어진 것 같다

지난 칠석날 밤에 김석범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4.3 항쟁 추도회에서 만났을 때, 전화를 하라고 하셨다. 4.3 항쟁 추도회에서는 선생님을 촬영하시는 분이 계시고, 현기영 선생님과 만나고, 제주도에서 손님들이 오시고 주위가 소란스러웠다. 작년에는 건강이 안 좋으셔서 4.3 항쟁 추도회에 못 나오셨다. 나도 쫓기는 듯이 정신없는 생활을 하다가 선생님에게 듣고 싶은 것도 있어서 전화를 했다. 전화를 했더니, 자기가 전화하라고 했다는 걸 잊은 듯하다. 그냥, 인사말로 전화하라고 했단다. 그러세요, 그럼 됐어요. 아니라고, 자신이 바쁘시단다. 그러세요, 그럼 무리하지 마세요. 아냐, 바빠도 만나야지, 언제로 할까, 한국에서 취재 온다고 했고, 칠석날로 정했다. 나는 7월이 되면 너무 더우니까, 6월 중에 만나고 싶었는 데, 7월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내가 전화를 하면 선생님은 항상 바쁘다고 한다. 그러냐고, 그럼 일을 보시라고 한다. 그러나 선생님은 바쁜데도 불구하고 나와 수다를 떨거나 만날 약속을 한다. 20년 가까이 패턴이 같다

선생님은 말 그대로 바쁘신 거다. 그러나, 한 번도 바쁘다고 해서 만나지 않은 적은 없다

특별히 칠석날일 필요는 없었다. 지난번에 같이 만났던 영국친구가 같이 갈 예정으로 둘이 강의가 없는 날로 하다 보니 칠석날이 된 것이다. 영국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했더니 자기는 그 날 대만에 있다고 한다. 선생님을 술을 좋아하시는 데, 나는 술을 못 마신다. 그래서 같이 술을 마시고 대화도 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는 데… 영국친구는 수업에서 선생님 작품을 쓰는 친구에 술푸대이기도 해서 동반자로는 안성맞춤이었다.

내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한국에서 김석범 선생님 작품을 연구하려는 분이 연락을 해왔다. 김석범 선생님과 만날 예정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같이 만나고 싶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메일을 해서 만날 약속을 했다. 한국에서 오신 분과는 전날에 신오쿠보에서 호주에서 온 친구와 만날 때 같이 만났다. 호주 친구와도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저런 말을 했다. 한국에서 오신 분이 좋은 분 같아서 다행이었다. 한국에서 메일로 연락을 받았지만, 그동안 해외에서 만난 한국분들과 안 좋은 경험이 많아서 좀 걱정을 했다.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제공하지만, 인간이라서 상처 받고 싶지는 않다. 그동안 해외에서 만나는 한국분들은 내게 상처를 줬다. 그래서 한국분들을 만나는 것이 조심스럽고 두렵다.

칠석날 저녁에 선생님과 만날 장소를 향해서 오카치마치에 갔는 데 장소를 모르겠다. 아무리 근처를 맴돌아도 더 헷갈린다. 한국에서 오신 분에게 전화를 해도 전화를 안 받는다. 아는 출판사에 전화해서 장소를 묻는다. 출판사에서 가르쳐줘도 잘 모르겠다. 당황해서 더 헷갈린 것이다. 땀도 나고 한참을 헤매다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30분 이상 지각한 것 같다. 지금까지 이렇게 지각한 적이 없는 데… 다행히도 한국에서 오신 분과 선생님이 차분히 대화를 나누고 계신다. 나는 가자마자 맛있는 음식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선생님께 한국에서 선생님 작품에 관한 연구를 하는 분이 동석한다는 연락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선생님과 한국에서 오신 분이 부드럽게 대화를 진행하시는 건지,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선생님과 그분은 마치 다정한 부자지간인 것처럼 정겹게 보였다. 다행이다. 나는 옆에서 먹고 또 먹는 것에 열중해서 먹었다

선생님과 나는 선생님이 술을 마시고 나는 술을 안 마셔도 과격한 대화를 한다. 전에 같이 만났던 영국친구가 깜짝 놀랄 만큼 과격한 대화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여과 없이 하지만 선생님도 같은 수준에서 과격하다. 둘이 싸우는 것처럼 과격해서 주위에 사람이 있으면 무서워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선생님은 신과 같은 존재인 데… 실은 하고 싶은 말을 여과 없이 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할 수 있는 지적인 대화를 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올해는 선생님이 얌전하셨다. 나도 한국에서 오신 분과 대화하시라고 옆에서 먹기에 열중한 점도 있었지만, 이전과는 많이 다르시다. 내가 재미가 없다고 했더니 술은 안 마셔서 그렇단다. 그리고 건강을 챙기신다. 작년에 건강이 안 좋으셔서 다시 못 일어날 줄 알았다고… 그런데, 술 드시는 것도 조심하고 건강을 챙기시는 선생님은 내가 아는 선생님이 아니신 것이다. 철이 들었다고 할까, 더 이상 과격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선생님께 친근감이 느껴지고 귀엽기까지 하다. 인간적으로는 참 다행이다 싶다. 선생님이 건강하게 오래 살아주시는 게 좋으니까. 그러면서도 한편 아쉽기도 하다

선생님이 약간 작아지셨다. 사실 선생님은 체구가 작으신 분이다. 그러나, 날카로운 눈빛과 아우라가 거인이었다. 사람은 느끼는 대로 보이기도 한다

나는 선생님께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선생님이 아버지 또래라서 선생님을 통해서 아버지가 젊었을 때 봤던 사회에 관해서 듣고 싶었다. 그런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언젠가 선생님께 그런 옛날이야기를 듣고 싶다

맨 위 사진은 4.3 항쟁 추도회 때, 나머지는 칠석날에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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