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와 깡통
동경생활 2012/05/02 23:25 huiya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일어나 보니 비가 내렸었다. 휴일이여도 일과인 스트레칭을 하고 아침을 먹고 준비를 해서 학교 도서관에 갔다. 가는 길에는 비가 오지 않아서 모란꽃이 탐스럽게 핀 걸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찍으려고 했더니 돌아올 때는 빗살이 세어져서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가는 길에 공원에서 찍은 것과 강가를 찍은 사진 뿐이다.
학교 정문에 가기 전에 지역에서 야채를 재배해서 무인판매를 하는 곳에 들려서 아주 싱싱한 시금치를 두 단 샀다. 한 단에 백엔이다. 여기는 월,수,금요일에 시기에 따라 자기 밭에서 캔 야채를 무인판매한다. 파는 사람이 없고 사는 사람이 돈을 넣고 야채를 가져가는 시스템인 것이다. 오늘은 토란이 한봉지 남아있었는데, 시금치만 두 단 샀다. 모든 야채가 한봉지에 백엔이다. 그 날 아침에 밭에서 뽑아낸 거라 싱싱하고 신선하기 그지없다. 문제는 시금치가 젖어있어서 가방에 넣었더니 가방까지 젖어서 물이 샜다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가방에 집어넣을 때도 시금치가 머리를 내밀어서 도서관직원이 ‘맛있겠다’고 인사를 했다. 살짝,부끄러워진다. 그래도 오늘은 시금치라서 냄새가 안나서 다행이다. 나는 때에 따라,파나 무우도 사서 들고 도서관에 가서 주위사람들이 ‘시선집중’을 받았던 사람이다.
도서관에 도서관카드를 새로 만들려고 서류를 가지고 갔더니, 그 자리에서발행을 해주었다. 항상 이용하는 곳에 가서 새로 들어온 책들을 체크하고 휴일에 읽을 책을 빌려왔다. 새로 들여온 도서들을 체크하고 읽는 관련분야 책을 읽다보니 순식간에 몇시간이 지났다. 나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 화장실에 가는 걸 참는 습관이 있다. 화장실이 먼것도 아닌데, 참다가 화장실로 뛰어간다. 솔직히 이 건 아주 챙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손에 잡은 책이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오랫만에 많은 책들을 만지고 냄새를 맡아서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이런 것도 주기적으로 하지 않으면 뭔가 결핍된 것 처럼 약간 불안해진다. 머리에 기름이 끼는 것 처럼 맑지않다.
도서관에서 나오다가 작년말에 우리집에 놀러왔던 후배를 만났다. 선 채로 조금 수다를 떨다가 ATM에서 연휴중에 쓸지도 모르는 돈을 뽑아놨다. 평소에 지갑에 돈이 얼마 있는지 신경을 안쓰는 편이라 돈도 없이 주말을 맞거나, 연휴를 맞는 일이 허다하다. 일본에서는 휴일이나 주말, 오후 6시이후에 은행ATM에서 돈을 뽑으면 수수료를 내야한다. 이 수수료가 백엔이라도 아깝다. 일본은 지금 ‘골덴위크’라는 연휴중이다. 올해는 약간 징검다리형으로 휴일과 휴일이 아닌 날이 섞여 있지만, 하루나 이틀을 쉬면 최장 열흘 가까이 긴 연휴가 된다. 아주 긴 연휴인 것이다. 그래서 ‘골덴위크’라고 부른다. 나는 어제 강의를 나가고 오늘부터 쉰다. 어제 아침에 갑자기 연휴에 특별히 할일이 없다는 걸 알고 출판사에 전화를 했다. 원고교정을 볼 시간이 생겼으니까, 교정볼 원고를 보내달라고, 출판사에서도 인쇄소에서 나와야 보내는 거라, 준비가 되면 연락을 하겠다고 한다. ‘골덴위크’는 일년중 가장 긴 연휴이며 좋은 계절이라 많은 사람들이 국내외로 여행을 가는 시즌이다. 그래서 비행기표도 비싸고 관광지도 비싸고 붐빈다. 아마 서울거리도 보통 때 보다 훨씬 많은 일본사람들이 누비고 다닐 것이다. 나는 ‘골덴위크’에는 안 움직이는 타입이다. 그 대신 동경시내는 조용하고 사람도 적어진다.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헌책방에 가려고 걷다가 깡통이 버려진 쓰레기통에서 쓸만한 깡통을 두개 줏어서 가방에 넣었다. 쓸만한게 하나 더 있었는데 가방에 넣을 수가 없어서 하나는 포기했다. 헌책방에서 책을 살지도 모르니까. 너무 많이 넣으면 시금치가 망가진다. 나는 이런 깡통을 좋아한다. 쓸만한 깡통은 줏어다가 재활용을 한다. 아주 쓸모가 있고 쓰기도 좋다. 어떤 때는 선물로 주기도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깡통을 세어보니 서른 개가 훨씬 넘는다. 오늘 깡통은 뚜껑이 연결된 것이다. 이런 건 흔하지 않다.
사진 위가 오늘 줏은 깡통이고, 아랫사진은 재활용하고 있는 깡통이다.
헌책방에 들러서, 잡지들을 보고 아주 만족한 기분으로 약간 비에 젖으면서 집에 돌아왔다. 가지고 간 우산이 양산이라, 좀 작았다. 우산 밖으로 몸이 넘쳐나서 팔도 젖고 다리도 젖었다. 집에 와 보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었다. 젖은 가방에서 책을 꺼내보니 새 책인데 표지에 약간 시금치물이 들었다. 그래도 책 표지와 비슷한 색이라 죄책감이 약간 경감된다.
배가 고파서 시금치를 한 단 데쳐서 사쓰마아게라는 어묵과 잔 멸치를 같이 먹었다. 비에 젖어서 녹물이 있었던 깡통도 물기를 깨끗이 닦아냈다. 하루가 금방 지났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골덴위크’도 금방 지날 것 같다. 그래도 책을 빌려왔고 돈도 찾아놔서 걱정이 없다. 아마 연휴중 비가 오면 돈을 쓸 일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