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경생활

앞집 아이와 봄나물

오늘 동경 일기예보는 어제와 같이 최고기온 10도 최저기온 0도이다. 하지만, 어제는 아침부터 비가 오다가 진눈깨비가 내린 것에 비해 오늘은 햇볕이 나서 같은 기온이라도 전혀 달랐다. 오늘도 여전히 춥다고 했지만 어제보다 훨씬 따뜻했다.

 

어제는 낮 기온이 1-2도로 한겨울에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하루 종일 전력부족에 관한 뉴스로 뒤덮여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사실상, 대규모 정전을 피할 수 없다는 뉴스가 지속적으로 나왔다. 그 시간이 저녁 7시에서 8시로 예고가 바뀌면서 나중에는 야간에 정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식이었다. 나는 집에서 지내기에 정전이 되어도 큰 불편이 없다. 저녁을 일찍 먹고 침대에 들어가면 되니까. 난방을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서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평일 밖에서 일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갑자기 정전이 되면 대처하기가 곤란하다. 난방기구도 거진 전기로 쓰고 밥도 먹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오늘 오전 11시에 전력 핍박 경보는 해제했지만, 여전히 전력부족이라고 절전하라고 한다. 나는 평소에 절전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 절전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대규모 정전이 시작되는 시간을 변경하면서 마치 사람들을 협박하는 것 같은 뉴스를 보면 기가 막히다. 정치가나 동경전력이 합심해서 사람들을 불안하게 뒤흔드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보다 일찍 밤 9시 넘어 침대에 들어가서 늘어지게 잠을 잤다.

 

어제 전력부족이 어쩌고 했지만 나는 낮에 거진 3개월 만에 욕조에 물을 받아서 목욕을 했다. 그동안 샤워는 했지만 상처부위가 아물지 않아서 목욕을 할 수가 없었다. 목욕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추운 날씨에 오랜만이라서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목욕을 하고 잤더니 그동안 건조했던 피부가 오늘 아침에 일어났더니 부들부들해진 느낌이 들어서 깜짝 놀랐다. 목욕을 한 효과인지, 진눈깨비로 인한 습기가 가져온 조화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달랐다. 오늘 아침 커튼 너머로 보이는 햇살이 매우 반가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조금 춥더라도 온 집안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고 나서 아침을 시작한다. 요새는 그동안 못했던 요가도 조금씩 시작해서 몸을 풀고 있다. 그리고 아침을 준비했다. 어제 일찍 자서 10시간 가까이 잤더니 배도 고프고 많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결국 빵 두 장을 먹지 못하고 남겼다. 냉장고와 냉동고에는 언니가 사 온 식재료와 언니가 만들어다 준 반찬들이 많다. 

 

언니는 바다에 가서 미역을 해오고 방풍나물, 배말, 보말, 게 등 산과 바다에서 나는 제철 음식과 시장에서 맛있는 야채와 과일을 사서 가져다준다. 언니는 음식 솜씨가 좋아서 잘 만든다. 시장에서도 맛있는 식재료를 고르는 재능이 있는 모양이다. 거기에 산과 바다에 가서 지금 가장 맛있는 식재료를 구해다가 만들었으니 나에게 이 이상 더 좋은 음식은 없을 것이다. 그런 언니 덕분에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 같다. 이전에 그렇게 잘 먹던 과일도 그다지 당기지 않는다. 날씨가 추운 탓인지, 내 식성이 변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오늘 아침에 언니가 요새 무가 달달해서 맛있으니까, 닭봉과 같이 조려 먹으라고 해서 아침을 준비하면서 같이 만들었다. 닭봉은 어제부터 물에 담갔다가 먼저 양념을 해서 살짝 끓인 후에 무를 넣고 조렸더니 먹을 만했다. 요새 닭고기를 요리하면 요리하는 동안 냄새에 질려서 요리는 했지만 먹지 못하고 버리기도 했다. 그래서 냄새가 덜 나게 요리시간을 짧게 하려고 한다. 오늘 아침에 닭봉 8개를 조려서 점심에 4개나 먹고 나머지는 내일이라도 먹을 생각으로 남겼다. 

 

언니나 친한 이웃도 전화가 와서 오늘도 날씨가 추우니까,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창밖으로 봤더니 날씨가 꽤 누그러진 것 같아 바깥에 나가고 싶다.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할 정도는 아니어도 바깥에 나갈 작정을 했다. 머위가 올라오고 꽃이 피기 시작했다. 내가 가는 크고 작은 머위 밭이 몇 군데 있는데 머위가 올라오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제 유튜브로 본 달래장도 만들어 보고 싶다. 달래는 많지만 강아지가 산책하면서 오줌을 싸는 곳이 아닌 곳에서 캐야 한다.

 

평소와 달리 얇은 다운 점퍼를 입고 나갔더니 앞집 아이와 중학생 남자아이가 계단에 있다. 아까, 앞집 아이가 울고 불고 현관문을 흔들고 난리가 나더니 학교 갔다 왔는데 엄마가 집에 없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난리가 났던 모양이다. 나도 날씨가 추운데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우선 들어와서 기다리라고 했더니 괜찮다고 한다. 중학생 아이도 괜찮다고 한다. 엄마 휴대폰 번호를 대라고 했더니 모른다고 한다. 그래, 내가 잠깐 밖에 나갔다 올 테니까, 그때도 엄마가 오지 않으면 아줌마네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가까운 머위 밭을 봤더니 아직 머위가 올라오지 않았다. 달래가 나는 곳에 가서 달래를 뽑았더니 땅이 딱딱한지 뿌리가 뽑히지 않다가 나무뿌리 옆에 있는 걸 뽑았더니 뿌리까지 뽑혔다. 달래를 조금 뽑았다. 앞집 아이가 추운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서 도저히 달래를 캐고 있을 때가 아니다. 서둘러 집에 왔더니 아이가 없다. 햇볕이 드는 놀이터에서 놀면서 기다리기로 한 모양이다. 놀이터에 가서 계단은 추우니까, 여기서 놀면서 엄마를 기다리라고 했다. 내가 다른 머위 밭을 보러 다녀올 테니까, 놀고 있으라고 했다. 

 

머위 밭에 가서 봤더니 머위가 올라와서 잎이 아주 부드럽다. 어제 진눈깨비를 맞고 잎이 찢어지기도 했다. 10장만 땄다. 머위 꽃은 볼 수가 없어서 다른 장소에 갔더니 머위보다 머위 꽃 봉오리가 올라오고 있었다. 7개를 땄다. 옆에 하귤도 3개 주었다. 이전에는 머위나 머위 꽃도 욕심을 내서 많이 땄는데 이제는 하루 먹을 만큼만 따기로 했다. 머위 꽃은 시기가 있어서 따고 싶을 때 나오는 것이 아니지만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앞집 아이는 여전히 놀이터에서 다른 친구들과 떨어진 놀이터까지 다니면서 놀고 있었다. 괜히 내가 불러서 집에 데려간다고 아이에게 좋은 건지 모르겠어서 그냥 뒀다. 아까, 다음부터는 엄마가 없으면 앞집 아줌마가 와도 된다고 했으니까, 엄마에게 그래도 되는지 물어봐. 내가 집에 있으면 우리 집에 와서 엄마를 기다려도 되니까. 앞집에는 남자아이가 두 명으로 형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어쩌다 가끔 마주치면 인사를 해서 아이들도 나를 알기는 알지만 조심스럽다. 

 

저녁에는 배말을 데쳐서 초장에 찍어서 먹었다. 아주 맛있었다. 배말이 이렇게 맛있는 건 줄 몰랐다. 배말을 데친 물과 배말 똥을 같이 넣어 육수를 만들어서 남겼다. 미역국을 끓일 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배말이 많아서 나머지는 소분해서 냉동했다. 동경에서도 내륙에 사는 나에게 배말이나 바닷가에서 나는 제철 음식은 매우 귀중하다. 사실, 언니가 직접 바다에 가서 해오는 제철 자연산 먹거리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소면을 삶고 머위와 머위 꽃을 데쳤다. 머위에 소면을 밥처럼 넣고 초장을 찍은 배말과 같이 먹었다. 머위 꽃과 머위도 초장에 찍어 먹으니 쓰다. 쓰지만 뒷맛이 상큼하고 나중에 물을 마셨더니 물이 달게 느껴진다. 쓴 맛이 봄나물 맛인가 보다. 결국, 달래장은 만들지 않았다. 사실, 달래장과 같이 먹을 것도 없지만 만들고 싶었다. 달래는 손질해서 냉장고에 넣었으니 내일이라도 만들 수 있지만, 달래장과 같이 먹을 건 없다. 

 

너무 많이 핀 머위 꽃을 따다가 부엌에 꽂았다. 머위 꽃이 봄을 알리는 소박한 모습이라서 보기가 좋다. 

 

사진을 작년에 찍은 개나리가 벚꽃을 향해 뻗은 사진이다. 

'동경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근케이크  (2) 2022.03.29
산책길에 복숭아꽃  (4) 2022.03.25
진눈깨비 내리는 날  (7) 2022.03.22
동경, 여권 신청해서 이재명 찍으러 간다  (3) 2021.12.22
동경, 청소와 매트리스 처분하기  (2) 2021.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