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동경은 일교차가 매우 적은 잔뜩 흐리고 기온이 낮은 날이다. 최고기온이 10도로 날씨가 춥다고 일과인 산책도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요새 주위에는 갑자기 벚꽃이 활짝 폈다. 벚꽃을 보러 가는 날은 맑은 날씨가 좋다. 벚꽃이 지금 막 폈기 때문에 아직 주변 꽃을 보러 갈 시간이 있다. 작년에는 벚꽃이 찔끔찔끔 펴서 벚꽃 시즌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달력을 봤더니, 내일 장애자 수첩을 받으러 멀고 먼 시청에 다녀오면 다음날은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는 날이다. 항암치료를 다녀오면 컨디션이 어떨지 모르기에 벚꽃구경도 일찍 하는 것이 좋겠다. 내일도 오전은 흐리지만 시청을 다녀오는 길에 벚꽃구경도 해야지. 동경, 내가 사는 동네에서 즐기는 벚꽃구경이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후회 없이 즐겨야 할 것 같다.
어제는 날씨가 좋았는데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서 노느라고 꽃구경을 나가지 못했다. 친구가 점심때 차를 가지고 마중 와서 친구네 집에 가서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서 늦은 점심을 같이 먹었다. 내가 집에 있던 음식을 챙기고 친구도 전날 친정에서 가져온 음식이 있어서 먹을 것은 많았다. 친구는 오랜만에 연락해서 내가 그동안 아파서 큰 수술을 받고 암에 걸려서 치료를 하는 등 소식을 듣고 매우 당황했다. 이 친구는 일본에서 가장 친한 친구로 학부 3학년에 만나서 지금까지 사귀니까, 근 35년이나 되는 관계다. 어제 친구에게 내가 일본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마,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했다가 다시 대학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에 결혼도 했다가 이혼하고 다시 재혼했다. 친구와 나는 대학 때부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전우와 같은 심정이다. 친구는 일이 있을 때마다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나와 대화하면서 방향을 잡고 대처해왔다. 이번에는 내가 큰 수술을 받고 암환자가 되었지만, 친구가 도울 일은 없다. 지금까지도 대부분은 내가 친구의 말을 듣고 힘이 되어줬다고 할 수 있다. 나이로도 내가 다섯 살쯤 위인 걸로 안다. 대학에서는 친구가 1년 선배다.
나는 갑자기 은퇴를 결정했고 앞으로는 암환자로서, 아니면 은퇴한 사람이거나 노년을 살 준비를 해야 한다. 이렇게 쓰지만 그게 어떤 것인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우선 3월 말까지 멍하니 지내다가 정신을 차리고 동경 생활을 본격적으로 정리하는 수순으로 가야 할 것 같다. 3월 중으로 행정적인 일을 마칠 예정이었는데, 대학에서 원천징수 표가 오는 걸 기다려서 세무서에 가야 하니까, 세금신고에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지난주에 대학에 노트북 등 비품을 반납하고 오늘도 반납할 직원증이 대학 사물함에 있으니까, 직원에게 확인하라는 메일을 했다. 대학과는 3월까지 계약이기에 기한 내에 끝 마무리까지 깨끗하게 하고 싶다. 대학 사물함에 있는 건 다 폐기 처분해달라는 메일도 했다. 아마, 이번 주로 대학과 사무적인 연락이 필요한 일도 끝나지 않을까 싶다.
관계라는 건 참 묘하다. 요전에 언니네와 내가 다니던 대학에 갔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대학이기도 해서 햇수로 36년이나 다닌 오래 기간 많은 인연이 있는 곳이라서 소개하고 싶었다. 그동안 대학 정문에는 체온을 측정하는 기계가 있어서 각자가 체온을 측정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정문 수위가 코로나를 이유로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다면서 도서관 책 반납은 여기서 받는다고 한다. 나는 그러냐고 아무런 미련 없이 책을 돌려주고 발길을 돌렸다. 그 대학에 많은 추억이 있고 두 번 다시 갈 일이 없을지 것 같아 마지막으로 교정을 걷고 싶었지만 돌아섰다. 마치, 오랜 인연이 단 칼에 잘린 느낌이다.
내가 알기로 대학에서는 4월부터 전면 대면강의를 하고 100% 교실을 사용하기로 했다는데, 지금 대학 교정에 사람들 출입을 제한하는 건 이상하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앞뒤가 맞지 않고 이상한 일은 너무 흔하기에 그런가 할 뿐이다.
어제 친구와 점심을 위해 내가 가져간 미역으로 미역 생채를 만들고 냉동 부침개를 데웠다. 친구는 옆에서 버섯 된장국을 끓이고 친구 엄마가 만든 유부초밥과 포테이토 샐러드, 호박 샐러드도 나왔다. 언니가 만든 깍두기를 가져갔더니 친구가 맛있다고 너무 많이 먹는다. 보다 못한 내가 그렇게 많이 먹지 말라고 했더니 친구가 움찔한다. 우리는 김치를 밥과 같이 먹는데 일본에서는 김치를 먹을 때는 샐러드처럼 김치만 먹는다. 김치만 계속 먹으면서 맵다고 한다. 그래서 웃음이 나온다. 이건 김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보통 밥과 같이 김을 먹는데 일본에서는 그냥 김만 계속 먹는다. 그걸 보면서 저게 짤 텐데 왜 김만 계속 먹지 한다. 일본에서는 반찬을 섞어서 먹는 건 아주 버릇이 없는 것이라고 해서 이렇게 먹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친구는 수다를 떠는 동안 당근 케이크를 구웠다. 친구가 당근과 사과 주스로 디톡스를 하는 모양이다. 무농약 당근을 갈아서 짜 주스로 마시고 남은 당근을 활용해서 케이크를 만들었다. 먹기 쉽게 컵케이크로 만들어서 9개나 줬다. 어제저녁에 친구가 다시 나를 집까지 바래다줬다. 어제저녁은 친구네 집에서 가져온 친구 엄마가 만든 샐러드와 내가 만든 닭볶음을 먹었다.
당근 케이크는 오늘 아침에 6개 냉동하고 3개 남겼다가 낮에 하나 먹었다. 케이크가 달거나 기름지지도 않은 소박하고 건강한 맛이었다.
벚꽃, 작년에 찍은 사진이다.
'동경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항암치료와 벚꽃구경 (2) | 2022.04.03 |
---|---|
신체장애자 수첩 받으러 갔다 (2) | 2022.03.30 |
산책길에 복숭아꽃 (4) | 2022.03.25 |
앞집 아이와 봄나물 (2) | 2022.03.23 |
진눈깨비 내리는 날 (7) | 2022.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