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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생활

후배가 매실잼을 가지러 왔다

오늘 동경은 최고기온 35도, 최저기온 24도라고 한다. 어제도 최고기온이 37도까지 올라간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더위였다. 내일은 오늘보다 심각하게 위험한 더위가 된다고 한다(https://news.yahoo.co.jp/articles/ff9427164d443850da96879d898d6511805cddba). 관동지방에서 40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동경전력 관내에 전력이 부족하다고 내일까지 3일 연속 전력 수급 핍박 주의보를 낸다고 한다(https://news.yahoo.co.jp/articles/d5c8c61c473286d47021a5e5520b705870882e35). 이렇게 생존이 위협받는 더위에 일본에서는 절전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가정이 소비하는 전력보다 기업이 소비하는 전력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그야말로 사람들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면 사람들에게 가정에서 소비하는 전력을 절전하라고 호소하는 것보다 기업에서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우선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남게 해 주길 바란다. 

 

어제는 출판사와 새로 시작하는 일로 시내에 약속이 있어서 나갔다. 그전에 가까운 곳에서 친구와 만나 점심을 먹었다. 나는 이 근처에서 식사하는 곳은 거의 정해져 있다. 어제도 전망이 좋은 레스토랑에 갔지만 만석이라서 들어갈 수가 없어 역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다. 전망이 좋은 레스토랑은 야채를 생산하고 있어서 신선한 재료를 쓴다. 패밀리 레스토랑은 신선한 재료를 쓴다고 보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이 간단한 점심을 먹어도 3,000엔이 나온다. 전망이 좋은 레스토랑에서는 2,000엔이 걸리지 않아서 나머지 1,000엔으로 신선한 야채를 많이 사서 올 수 있다. 

 

어제 출판사 사장과 만나서 책을 출판하는 걸 서둘러 진행시킨다는 말을 들었다. 나도 일을 빨리 진행할 수 있게 협력해야 한다. 그 후에 새로 진행하는 일을 위해 회의에 참가했다. 약속이 오카치마치여서 내가 사는 서쪽과는 정반대라서 한 번 나가려고 해도 편도 한 시간 반이나 걸린다. 저녁 5시 넘어 회의를 시작해서 3시간 넘게 한 것 같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을 먹으러 가서 긴 시간을 지낸 느낌이 없는데 가게를 나오니 11시 넘은 것 같다. 아무리 서둘러 집에 돌아와도 도착하면 12시가 넘는다. 덕분에 어제는 거의 냉방에서 지낸 셈이다. 문제는 집에 늦게 와서 천천히 목욕을 하고 자려고 하니 2시가 넘었다. 모기에 물려서 모기향을 펴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고 잠을 잘 수가 없다. 새벽 무렵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너무 늦게까지 자면 생활리듬이 깨어질까 봐 좀 천천히 일어나서 아침을 먹었다.

 

지난 토요일 밤에 만든 매실잼을  병에 담았는데 밀봉이 안된 것 같다. 병을 소독해서 뜨거운 매실잼을 담고 뚜껑을 닫으면 식으면서 밀봉되는 소리가 들린다. 병뚜껑 볼록한 부분이 오목하게 들어간다. 그런데 밀봉이 안된 느낌이라서 매실잼을 빨리 소비해야 한다. 그래서 친구에서 연락했더니 가까운 대학본부에 회의가 있어서 온다고 어제 와서 두 병 가져갔다. 작년에 매실잼을 줬더니 아주 좋아했던 중국 후배에게 연락했더니 오늘 오전에 온다고 한다. 후배는 가족이 많아서 두 병 주기로 했다. 여기서 두 병은 용량이 커서 1.5킬로가 넘는다. 

 

후배를 역에서 만나기 전에 마트에 들러서 식료품을 살 생각이었는데 집에서 늦장을 부리다 보니 그럴 시간이 없다. 햇살이 너무 강렬해서 오랜만에 선글라스를 꺼내서 꼈다. 집을 나서고 난 다음에 매실잼을 잊은 걸 알고 다시 돌아와서 매실잼을 가지고 나갔더니 벌써 덥다. 바깥 기온은 아마 32도가 넘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덜 더울 것 같은 느낌이다.

 

후배를 만나서 전망이 좋은 레스토랑까지 걸어갔다. 아직 레스토랑이 문을 열지 않아 옆에 있는 가게에서 야채를 샀다. 평소에는 거기 야채가 매우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아주 신선하다. 지금은 마트에서 파는 야채가 비싸기 때문에 여기 야채가 저렴하게 느껴진다. 후배가 고른 야채도 다 내가 계산을 했다.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은 것도 다 내가 계산한다. 올해 방침이 내가 사는 주변에 와서 식사를 하면 내가 다 내는 걸로 했다. 앞으로 만날 기회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기에 다 내가 내는 걸로 했다. 어제 친구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먹은 점심 값으로 오늘은 더 좋은 식사를 하고 야채까지 많이 살 수 있었다. 

 

후배는 나를 만나면 챙겨주는 것이 많아서 짐이 무거워진다고 아예 배낭을 메고 왔다. 오늘도 미친 듯이 더운 날이 아니면 다른 것도 챙기는데 날씨가 날씨라서 다른 걸 챙길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젯밤은 너무 늦게 돌아왔다. 내가 아프다니까, 후배는 일주일에 이틀 일을 쉴 수 있으니까, 자기가 와서 집안일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게 빈말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아주 고마웠다. 다행히 집안일이나 내가 필요한 일상생활은 자신이 할 수 있다. 만약, 내가 후배 손을 빌려야 한다면 후배가 일하는 일당을 챙겨줘야 한다. 물론, 후배는 그런 걸 전혀 바라지 않는 걸 알지만 후배가 벌어서 집안을 꾸리는 걸 알기에 후배 시간을 뺏는 만큼 배려해야 한다. 오늘도 오전에 와서 점심을 일찍 먹고 내가 필요한 일을 해줄 작정으로 온 모양이다. 집에 들러서 청소라도 하고 가겠다는 걸 괜찮다고 더우니까, 조심해서 가라고 보냈다. 

 

중국 후배와도 35년 가까이 알고 지낸다. 가깝게 알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옛날부터 알던 사람들이 일본에 거의 남지 않았고 같은 시대를 공유했던 감각이 있는 사람들도 드물다. 중국 후배와 다시 연락을 자주 하고 만나게 된 건 요 근래이다. 그 후배가 알게 모르게 주변 사람들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챙겨 왔다. 나는 그게 고마워서 후배를 챙겨주고 싶다. 실은 그 후배는 같은 그룹에서 막둥이다. 집도 부잣집이라서 막둥이 딸로 사랑받고 자란 철부지였다. 그런 친구가 일본인 남편과 만나서 학생 때 결혼했다. 남편 일도 잘되고 자신도 같이 일하면서 아이들도 잘 키우고 있었는데 남편이 아파서 일을 못한다. 그다음부터는 전업주부로 사회에서 일을 한 경험이 전혀 없는 후배가 온갖 일을 다하면서 병든 남편을 케어하고 아이들을 키웠다. 남편이 아파서 일을 못하게 된 것이 10년 이상이 된다. 아이가 셋인데 다 좋은 대학을 다니거나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장남은 취직했다.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냈지만 학원 한 번도 보내지 않고 그런 대학에 보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건 다 후배가 자신을 갈아 넣었다는 의미다. 

 

후배는 정말로 육체적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힘들다고 하지 않는다. 오늘 아버지가 지난 3월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친정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달라진 것은 결혼 이후에도 쭉 친정에서 도움받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준 카드로 생활비를 쓰고 있던 걸 쓸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친정 도움이 없었다면 아이들을 키우고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다 컸다. 후배 아이들도 다 잘 자라서 아주 건전한 가치관을 지닌 모양이다. 지금 일본 사회에서 건전하다는 건 정말로 드문 가치관이다. 나는 후배에게 이제는 아이들이 다 컸으니까, 자신의 건강을 돌보면서 일하라고 한다.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나중에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고 겁을 준다. 후배는 자신을 희생한다고 여기지 않지만 자신을 희생해서 가족을 지탱하고 있다. 

 

나는 후배에게 조금이라도 챙겨주고 싶다. 후배네 생활이 어렵다고 우는 소리를 하지만 그 살림 규모가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걸 안다. 후배를 챙기고 싶은 것은 외국에 나와 오래 사는 입장에서 후배를 아끼는 마음을 전하고 싶기에 그렇다. 후배는 나에게 받는 걸 아주 고맙게 여겨준다. 오늘도 무거운 매실잼과 많은 야채를 짊어지고 뙤약볕 아래 역까지 가는 길이 멀지만 그런 후배를 보면서 나는 기분이 좋았다. 후배는 당분간 일이 바빠서 다음에 올 수 있는 건 7월 중순 이후라고 한다. 자신의 일정을 알리고 자신을 필요로 하면 오겠다는 말이다. 나는 후배가 시간이 있으면 같이 식사를 하고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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