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의 계절?
동경생활 2012/09/10 15:19 huiya
서울은 가을이 왔나보다.
동경은 아직도 여름이다. 가을이 아주 가깝게 왔지만, 아직도 최고기온이 33도나 되는 여름이다. 매미가 맴맴하고 우는 소리도 아직 들린다. 저녁이 되면 다른 벌레가 시끄럽게 울어제낀다. 유감스럽게도 이 벌레 이름을 모르겠다.
어제는 오랫만에 네팔아이가 왔다. 저녁에 아르바이트가 끝나서 밤에 와서 밥을 먹고 발이 좀 아프다고 했지만, 밤중에 산책을 나갔다. 둘 다 늦게 밥을 너무 많이 먹은 것도 있지만, 그 아이에게는 산에 가서 숲속 공기를 마셔야 피곤이 풀리고 힘이 나는 걸 알기때문에 밤늦게라도 데려간다. 그리고 강가에도 갔다.
평소보다 훨씬 짧은 코스로 아주 천천히 걷고나니 아이가 힘이 나는지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실은 그저께 온다고 해서 전날 닭고기를 사다가 닭도리탕을 만들어 두었다. 나는 주로 풀관계를 먹지만, 젊은 남자아이에게는 그다지 맛있는 음식이 아닐거라, 육류가 들어간 걸 만든다. 그런데 알바시간이 변경되어 어제야 온 것이다. 닭도리탕에 감자를 넣어서 상하기 전에 빨리 먹어치워야 한다.
어제는 정말로 오랫만에 밥을 하는데, 햇고구마를 썰어넣었다. 슈퍼에 콩나물이 있어서 그 걸로 나물도 무쳤다. 그런데 참기름도 없고 깨도 없다. 그냥 소금에 올리브오일을 넣고 파와 마늘을 다져넣고 무쳤다. 내가 먹어도 맛이 없었다. 거기에 오이와 토마토, 양상치를 넣고 발사믹비네거와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에 소금과 후추를 쳤다. 아이가 이 검은색 조미료는 뭐냐고 물어본다. 발사믹비네거야. 왜 맛이 이상해? 아니요, 그냥 알고 싶어서요. 그런데 밥을 먹으면서도 말이 없다. 지금까지는 시끄럽게 떠들어대는데, 조용하다. 아주 피곤한 것 같다. 오기 전에 야단을 맞았다. 7월에 왔을 때, 8월에 자기마을을 어떻게 개발했으면 좋을지 생각하라는 숙제를 냈다. 주위에 있는 네팔아이들과 같이 말을 해서 어떻게 하는게 좋은 발전인지를 생각하라는 것이였다. 기한을 주고 나는 기다렸다. 연락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야 와서 올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안 와도 좋은데, 연락은 해야지. 약속이라는 건 그런거야.
어제보니, 머리도 많이 빠져서 이마가 넓어지고 피곤에 쩔어있다. 아직 20대 초반인데… 어제 들어보니 알바를 네 개나 한단다. 하루에 만엔정도 번다고, 그래야 학비를 내고 생활을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만이 아니라, 네팔에서 온 사람들은 대충 그렇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돈을 버는데, 자기는 학교에 다닌다고 그 게 다르다고 했다. 그 건 너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지, 네팔사람들도 다양해. 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대학교 나와서 일본회사에 다니는 네팔사람도 있었어.
나는 이 아이에게 가르치고 잔소리를 안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나도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집에서 만든 걸 먹이고 있는 동안 마음 편하게 있다가 가라는 것 뿐이다. 어제 처음으로 여기에 와야 자기가 맛있는 걸 많이 먹는다고 한다. 그 동안 집에서 만든 것 보다 밖에서 사먹는 켄터키프라이드치킨이나 맥도널드를 좋아했는데, 하도 사먹다보니 집에서 만들어서 먹는게 좋은 걸 알았나보다. 그리고 밥을 먹는 것도 조심스럽게 먹는다. 이 아이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두번째로 밥을 먹는 매너가 더러웠다. 그 동안 잔소리를 했다. 사람을 만나면 식사를 같이하고 식사를 하는 걸 보면서 사람됨됨이를 판단하니까, 제발 주위를 더럽히고 흘리면서 먹지말라고. 아무리 대학을 나와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해도 기본적인 매너가 안되면 말이 안되는 거라고. 어제나 오늘 아침도 먹는걸 보니 조심해서 깨끗하게 먹는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내가 아침부터 밥을 먹은 적이 없는 데, 아무래도 니가 밥을 먹어야 할 거 같아서, 밥으로 했다.
고마워요, 제가 아침에 밥을 못 먹으면 하루종일 밥을 못먹어요. 12시부터 알바에 들어가면 내일 아침까지 해요. 두 탕을 뛰어야 하거든요.
어제 저녁도 오늘 아침도 설거지하는 걸 보니, 아주 장족의 발전을 했다. 그 전처럼 설거지를 마친 다음에 내가 그 주위를 청소하게 만드는 상태가 아니다. 설거지를 하고 나서 수세미도 제자리에 넣고, 주위에 물을 튀긴것도 닦는다. 알바를 통해서 많은 걸 배워가나 보다.
지금까지는 이 아이에게 뭔가를 해주려고, 평소에도 티셔츠 한장이라도 사놓았다. 사실 지금까지 아주 많은 걸 해주었다. 쇼핑에 데려가서 사고 싶은 걸 사주고, 그 아이는 그 걸 당연히 여기고… 이 건 아니다 싶어서 그런걸 안하기 시작했다. 어제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라고, 그래야 피곤이 풀리니까. 괜찮아요, 찬물로 할께요. 그래. 그냥 둔다.
어제 밤에 공원 숲을 걷고 돌아오는 길에 축구공이 보인다. 발이 아픈것도 잊고 얼른 달려가서 축구공을 찬다. 축구선수였다. 공을 보고 좋아서 차보고 나서 겨우 웃는 얼굴을 보인다. 집근처에 와서 벤치에 앉아서 가족들 얘기를 한다. 자기형과 사이가 좋다. 형을 일본에 초청하고 싶단다. 그럴려면 돈을 더 많이 벌어야지, 말이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려면, 모든게 자기에게 책임이 있다는 걸 알았나보다. 그리고 현실이 얼마나 험한지를 조금 알았나보다.
집에 와서 내가 페이스북을 열었더니, 그 전에 가르쳤던 학생이 사진을 올렸다. 올해부터 회사에 다니는 데, 독일회사다. 연수하러 런던에 갔다가 휴가를 받아서 유럽을 보고 온단다.
선생님, 이런 회사는 어떻게 찾지요?
회사가 있어도 너처럼 하면 실력이 없어서 못들어가.
아이가 망연자실한다.
너는 알바를 열심히 하는 건 알겠는데, 그 건 실력이 아니야. 이런 회사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서 준비를 해. 일본에서 외국인은 두 종류야, 자신들보다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일본사람들과 경쟁하는 외국인은 없어. 니가 어떤 외국인으로 일본에서 살아갈지, 아니면 페이스북에 있는 아이들 처럼 세계 어디서라도 일을 하면서 살아갈 실력을 키우든지 둘 중 하나야. 그리고 너는 자신이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집이 부자가 아니여서 알바를 네 개나 뛴다고 생각할 지 모르는데, 한국에서 유학자금을 가져온 나도 너보다 알바를 더했고, 내가 아는 부잣집친구나 그 동생들도 아주 열심히 일했어. 그래야 그 부모들도 비지네스를 시켜. 아니면 부모들도 그런 걸 못시켜. 현실은 그런거야.
그런데 나는 알바를 공부가 되는 걸로 했지. 예를 들면 너와 같은 학년일 때, 강의를 시작했어. 일주일에 두 번 세시간씩 사회인을 상대로 한국에 대해서 강의를 몇년이나 했어. 그런 강의를 하려면 공부를 해야해. 너는 자기나라에 관해 강의를 할 수 있겠어.
못해요, 자기나라라도 아는 게 없어요.
자신이 공부해야 할 환경을 만드는 거야. 그런게 모이면 실력이 되는 것 같아. 예를 들면 너는 영어를 하잖아, 그런데 대학에서 배우는 걸 영어로 설명할수 있어?
못해요.
왜?
제가 뭘 배우는지 모르거든요.
그게 비싼 등록금내고 대학에 다니는 결과라면, 실력이라고 할 수 없겠지. 그냥 다니는 거고, 단위를 따는 거지. 그렇게 비싼 등록금을 냈으면 적어도 자신이 뭘 배우는지 알아야지. 대학졸업장을 받는다고 취직이 되는 게 아니야.
아이는 갈수록 태산이라는 걸 느끼는 모양이다.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칭찬을 받을 줄 알았는데… 그런데, 현실은 가혹하다. 그리고 잘못 들어서면, 다른세계를 접할 수도 없게 세분화 되어간다.
오늘 아침에도 일찍 깨서 돌아다니면 아이가 깰까봐, 방에 있었더니, 아이가 일어나서 활동을 한다. 처음으로 내가 깨우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일어났다. 대견한 건가?
아침에 집을 나갈 때, 손수건을 넣어주고, 껌을 한통, 비스켓도 넣어준다. 비스켓을 줘서 고맙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두 팔이 아프도록 바리바리 가져가도 당연한 것처럼 여겼는데, 정말로 처음으로 사소한 것에 고맙다고 한 것 같다. 자신이 살아봐서 조금은 고맙다는 걸 알아오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걸 보면서 마음이 착찹하다. 지금까지 시건방지게, 나는 선생님보다 머리가 좋아요, 나를 우습게 알고, 알아서 챙겨주는걸 당연히 여기던 오만함에서 풀이 죽었다. 젋은 나이에 현실을 알아오는 것 같아서, 험한 세상에서, 현실에서 살아남았으면 한다. 그래도 아직은 오만하고 건방져야, 아이가 클 텐데, 일찌기 세상을 안다는게 대견하기 보다, 마음이 짠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 내보낸다. 전철을 탔을 때 문자를 보냈다.
피곤하고, 맛있는게 먹고 싶을 때 놀러와.
선생님이 오지말라고 해도 갈겁니다.
내가 사는 곳이 그 아이에게는 보고싶은 고향과 비슷하단다. 아이가 힘이 없을 때, 그래도 기댈 곳이라고 오는 것 같다. 나는 그저 따뜻하게 맞아줄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고 잔소리를 했다. 잔소리를 안하는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