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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제주도 사람들/재일동포

李 哲선생님

李 哲선생님

재일 제주도 사람들/재일동포 2012/11/12 14:18 huiya



오늘 동경날씨는 아침에 비가 왔다. 그리고 지금은 맑아가고 있다.

지난주는 좀 우울한 한 주였다. 그래서 뭔가 하고 싶은 의욕이 없었다. 블로그를 써서 뭔가를 토해내거나, 정리하는 것도 귀찮았다. 오늘은 오전에 우체국에 가서 왕자님 포스 베스트를 부치고 왔다. 그 동안 보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어제, 李 선생님과 헤어지는 모임이 있었다. 李 선생님은 지난 3월에 돌아가셨다. 장례를 주위에 알리지도 않고 아주 조촐하게 지내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장례식에 가질 못했다. 그래서, 李 선생님과 헤어지는 모임을 가진 것이다. 


영정에 쓰인 사진이 좋다. 장난스럽게 웃는 것 같은, 선생님답다.


첫번째로 조사를 하신건 김석범선생이였다. 다음은 고사명선생이였다. 참석자를 보니, 동경 요코하마, 오사카, 가고시마등 각지에서 오셨다. 리츠메이칸교수 문경수선생은 아직도 말석이다.


선생님 시집이다. 나는 그냥 고향선배로 알아서 선생님이 쓰신 걸 읽은 적이 없다.

 선생님은 제주도사람으로 시인이며, 서예가이다. 무엇보다도 계간 삼천리라는 잡지를 발행했던 편집인이자 사장이였다. ‘삼천리라는 잡지에는 일본지식인들이 결코 얕볼수 없었던 재일조선인의 지식과 기개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쪽 정부도 지지하지 않아 양쪽에서 미움을 받기도 했다. ‘삼천리에 계셨던 분들은 원래 조선신보사라는 조총련계 신문사에 근무를 했던 분들이 주축이여서 밖에서 보면 조총련 처럼 보인다. 그러나, 원래는 조선과 민족의 통일, 통일된 조국의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에 동조하던 지식인들이 조총련이 지향하는 방향이 김일성 우상화로 기울어지는 걸 느끼고 조선신보사에서  뛰쳐나온 것이다. 그래서 조총련에서 갖은 공격을 받았고, 한국정부에서 갖은 회유책을 보냈다. 왜냐하면, 재일동포 대표적인 지식인들이라, 북한을 지지하거나 한국을 지지하는 것 그 자체가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북한과 한국, 그리고 일본에 재일동포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약점은 고향이 분단된 조국 남쪽, 즉 한국에 있다는 것이였다. 아무리 사상적으로 투철한 지식인 역시 인간이기에 부모와 형제가 있고, 조상이 있으며 고향이 있는 것이다. 그 걸 잘 아는 한국정부는 '고향방문을 미끼로 한국에 오라고 유혹한다. 그리고 국적을 한국적으로 바꾸라고 이 분들 국적은 조선적이였다. 지금도 조선적인 채 돌아가시는 분들이였다. 그 것 또한 북한을 지지하는 게 아닌, 통일된 조국을 꿈꾸며, 통일된 조국이 아니면 조국은 없다는 것이였다. 그리고 끝내 통일된 조국이라는 꿈을 품은 채 돌아가시는 분들을 몇 분이나 봤다. 이 건 그야말로 일편단심 절개를 지킨 아름다운 지식인의 삶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고향이 그리워 거의 미친다. 너무나 절절하게 그리워 미쳐가면서도 지켜야 할 절개는 누구를 향한 것인가. 우선은 자신이리라, 그리고 민족일 것이다. 그 민족이라는 것이 문제다. 나는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이해를 못한다. 아니, 이해하기가 싫다. 그냥 자신에 솔직하게 살았으면 좋았겠다.


李 선생님은 일본의 대표적인, 국민적인 소설가 시바 료타로가 우러러 본 지식과 교양의 거인이기도 했다. 일본은 조선보다 먼저 근대화를 한다. 그러면서 서구에서 근대학문 체계도 조선보다 훨씬 먼저 도입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재일동포 일세들 특히 제주도사람들은 서당을 다녔다. 천자문에서 중국고전을 공부했던 것이다. 이건 일본에서 상당한 지식인도 중국고전은 그렇게 공부를 못한다일본에 중국고전을 공부하는 명맥이 별로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이나 학문적인 체계에는 자연과학을 별도로, 중국문화영향을 결코 도외시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중국문화영향을 반영하는 체계가 공부를 하는 과정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소설가 시바 료타로 그의 필명이 시바라는 것에서 알수 있듯이 중국고전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니 중국고전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진 李 선생님은 우러러 볼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 일본에 사는 조선인은 한꺼번에 싸잡아서 죠센징으로 차별을 받는 대상이기도 했다. 차별을 하는 대상은, 그 사람들이 학식이 있던 없던 상관이 없다. 차별을 하는 쪽의 우월감과 열등감이니까.


어제 그 회장에 갔더니, 李 선생님 동료였던 역사가 이진희 선생님도 올해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떻게 재일동포 일세 거성들이 한꺼번에 져간다. 그 기개와 민족적인 자부심, 그 삶을 살게 했던 그 분들을 그림자처럼 보필했던 부인들, 대단한 사람들이다. 언제까지나 강하고 건강하게 살 것 같았던 일세들이 돌아가시니 이세들이 휘청휘청 거린다.




뒷풀이로 신간사 고이삼씨가 경영하는 한국식당에 갔다. 치바에 사는 제주도사람 이덕웅씨가 전복과 문어 톳등을 가져왔다. 요리를 해서 상에 내놨다. 제주도사람들의 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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