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동경은 바람이 약간 불었지만 따뜻한 날씨였다. 오늘도 강의가 두 개 있었다. 아직 개강해서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아 모든 일이 꼭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그런 느낌은 나만이 아니라, 다른 선생들도 마찬가지다. 목요일은 돌아오는 길에 폴란드 선생과 같이 오면서 수다를 떠는 날이다. 일본에서 나보다 오래 외국인으로 살았고 일본 대학에서 공부도 해서 공통점이 많아서 그런지 말하기가 편하다. 반갑게 만나서 수다를 떨다가 온다. 오는 길에 마트에서 닭고기를 사다가 오랜만에 카레를 만들어서 먹었다. 저녁에 빨래를 두 번이나 해서 널었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초고령화 사회 일본'의 단면을 아주 잘 보여주는 내용이다. 먼저, 말하자면 책에 나오는 내용에 대해서 누가 나쁘다거나, 일본사람을 비난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런 식으로 보면 해법이 없기 때문이다. '초고령화' 일본사회의 문제를 참고로 한국의 '고령화'가 좋은 방향으로 나가는 데 활용이 되었으면 좋겠다. 일본 '고령화'율이 28%가 넘었고 한국은 그 절반인 14%라고 한다. 한국에서 보면 일본의 사회복지는 여러모로 한국보다 훨씬 앞섰고 국민들이 안심해서 살 수 있게 아주 잘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일본에 살면서 실상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책 제목이 자극적이다. '부모를 버리는 자식들-새로운 [고려장]의 형태를 구하며'로 되어 있다. 지금 일본에서 '부모를 버려야 한다'는 것은 그다지 극단적인 말이 아니다. 이 책 뒤에 나온 참고자료를 봐도 '부모를 버려야'한다는 제목의 책이 좀 있다. 저자는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노인들이 모이는 살롱을 10년이나 운영하고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어린이 식당'도 운영한다고 한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쓴 것이다. 일본에서 부모를 버리는 자식에 대한 통계는 나올 수가 없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과 운영하는 살롱에 모이는 노인들을 보면 부모를 버리는 자식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살고 있는 지역은 고층 아파트와 저층 아파트가 있다. 아파트에는 저소득자가 사는 공공임대도 있고 비싼 분양아파트와 내가 사는 임대아파트도 있다고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 동네에서 보면 해마다 몇 건의 투신자살이 있고, 비공개지만 '고독사'도 있다. 가정폭력, 부모와 아이를 학대하는 것도 늘었다. 지역에서 사회복지에 관한 일도 하고 있어서 그런 내막을 알 수 있다.
목차를 보면 친자식이 부모를 버린다고 하는데, 이 책에 나오는 것은 주로 아들이다. 그 중에는 딸이 어머니에게 치매기가 보이자, 재빨리 시설에 보낸 것은 '버렸다'고도했다. 히키코모리 딸에게 맞으며 사는 나이 든 노인도 있다. 둘은 의존관계여서 떨어져야 하는데, 맞고 때리면서도 떨어지지 못하는 불행한 관계다. 부모가 차례로 치매에 걸려 부부가 생활하기가 어려워져서 아들에게 연락 해도 오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가족인 보호자가 없으면 병원에 입원하거나 시설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입원하려고 해도 정작 서류상 보호자가 되는 자식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부모가 죽었다고 연락해도 오지 않고 유골을 가져가지도 않는 경우도 많다. 요새 한국에서도 유행(?)한다는 보이스피싱은 일본에서 유행한 지 오래되었다. 노인에게 전화해서 자식이나, 손자 인양 돈을 입금하게 하는 것이다. 자식이나, 손자들과 평소에 연락이 없는 노인은 속기가 쉽다. 보이스피싱을 하는 쪽에서도 노인이 당황해서 자식이나, 손자를 위한다고 급하게 돈을 입금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런 보이스피싱을 당한 아버지를 아들이나, 부인이 다구쳐서 결국 아버지가 '자살'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한다고 입금 했는데, 아들이나, 부인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 몫이 될 돈을 남에게 사기당했다는 인식이 된다고 한다.
자식에게 버림받아서 '고독사'를 하는 경우는 흔하다. '고독사'는 일본에서 넓게 받아 들여진 일이 되고 말았다. 요즘, '고독사'를 한 사람들 유품을 정리하는 업종이 새로 생겨서 장사가 잘된다는 씁쓸한 이야기도 듣는다. 저자도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져서 간병을 했다고 한다. 노인병동을 관찰한 내용도 실려있는데, 면회 오는 사람이 없는 환자도 꽤 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노인을 일찍 퇴원 시키고 싶고, 노인과 그 가족은 퇴원을 거부한단다. 노인은 집에 가도 아무도 없기 때문에 병이 없어도 돌봐줄 사람이 있는 병원이 좋다. 병원은 병을 치료했으니 환자가 아니라서 입원시킬 수 없다. 그래서 노인들이 조금이라도 병원에 오래 있으려고 꼼수를 쓴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재활치료를 열심히 하지 않는 식이다. 재활치료로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병이 나으면 퇴원해야 하니까, 적당히 하라고 알려주기도 한다. 노인의 가족은 병이 있던 없던 병원에 계속 있어주길 바란다.
저자가 생각하는 '부모를 버리는 요인'으로 자식 세대의 생활을 보면 아이를 위해 식사를 만드는 습관이 없다고 한다. 어린이 식당을 운영하면서 그렇게 자란 아이를 보면 집에서 밥과 국에 반찬을 놓고 제대로 차려서 식사를 하는 일이 없다.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이 유일하게 영양을 공급받는 것은 학교 급식이다. 일하는 부모가 돈을 두고 가면 아이는 자기가 먹고 싶은 과자를 사 먹는다. 돈을 놓고 가지 않으면 과자도 사 먹을 수가 없다. 이런 경우는 부모가 한 쪽 밖에 없는 케이스가 많은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와 자녀가 있으면 아무래도 집에서 식사를 만들어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일하느라고 아이들 공부는 커녕, 끼니도 챙기지 못하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것'은 유교가 쇠퇴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원래 일본에는 유교가 그다지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점은 동의하기 어렵다. 일본에서는 옛날부터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일'이 적지 않았다는 설도 소개하고 있다. 시골에서 도시로 대량 이주를 해서 사는 주택사정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나는 주택사정보다 인간관계에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사람이 고학력이라면 시골에 있는 가족도 잘 살 것이라, 고향에도 기반이 있고 도시에 기반을 형성할 수가 있다. 저학력이라면 도시에서 취업해서 정착해도 여유가 있는 생활을 하기가 어렵다. 시골에 있는 가족도 여유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 부모가 나이를 들면 자식이 부모를 돌보기가 힘들어진다.
경제적인 요인도 크다. 예를 들어 일본에는 건강보험이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대기업이나 공기업, 공무원이 가입하는 건강보험이 있다. 건강보험은 반을 직장이 부담하기에 보험료가 싸고 혜택이 많다. 자영업자나 농업, 비정규직, 무직인 사람들이 가입하는 것은 국민건강보험이다. 100% 자신들이 부담하기에 보험료가 훨씬 비싸고 혜택이 적다. 국민건강보험료를 체납하는 사람이 15-20% 된다고 한다. 40%가 무직에 40%가 비정규직으로 저소득자가 80%이상인데, 보험료가 비싸서 못 내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병에 걸리기 쉬운데 정작 병원에 갈 수도 없게 된다. 수입은 주는데 비해 보험료는 점점 비싸져 간다. 국민건강보험 세대당 수입이 가장 높았던 때가 1991년으로 연수입 2,765,000엔에 보험료가 65,000엔이었다. 15년이 지난, 2016년은 세대당 연수입이 1,396,000엔에 보험료가 92,000엔이다. 2016년 통계를 쓴 것은 가장 최신이기 때문이다. 물가도 많이 올랐는데, 수입이 반으로 줄고 보험료는 3만 엔 가까이 늘었다. 올해는 연봉 400만 엔 세대에 연간 보험료가 10만 엔이나 오른다고 한다. 한국에서 말하면 연봉 4000만 원인 사람이 건강보험료만 100만 원이나 오른다는 말이다. 일본 매스컴에서는 이런 기사를 중요하게 다룬걸 보기가 힘들다. 한국이라면 난리가 났을 텐데, 일본은 조용하다. 체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실질적인 수입은 주는데 세금이나 보험료가 많이 오르고 있다. 사람들이 점점 더 가난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힘든 구조인 것이다. 건강보험이나 연금제도도 부익부 빈익빈으로 양극화를 부추기는 제도적 장치로 되어 있다.
일본에서 '부모를 버리는 자식'은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부모를 돌보려고 해도 돌볼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무직이라도 부모를 돌볼 정신적, 물질적인 여유가 없을 것이다. 비정규직이라면 자기네가 먹고 살기가 빠듯해서 부모를 생각할 여유가 없을 것이다. 이런 것은 구조적인 것이다. 자식이 좋고 나쁘고 효심이 있고 없고를 떠난 문제로 봐야 한다. '저출산'도 같이 연결된 문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대다수인 저소득자를 배려하지 않으면서 노인들을 보는 것은 자식들 책임이라고 국가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버릴 수 밖에 없고, 부모가 자식을 학대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아닐지? 자식을 학대하는 사람이 부모를 돌볼 수 있을까? 학대를 받고 자란 아이가 부모를 돌볼까? '빈곤'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본다. '빈곤'에는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라 '관계성'의 '빈곤'도 있다. '고독사'의 경우는 거진 '관계성'의 '빈곤'으로 볼 수 있다. 부모와 자식간의 문제만이 아닌 '분배'의 문제, 정치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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