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동경은 아침에 안개가 자욱했다. 시야가 좁다고 느낄 만큼 안개가 자욱해서 날씨가 급격히 따뜻해지려나 했더니 낮까지 흐리고 춥다가 낮부터 날씨가 맑아졌다. 오늘은 일요일, 청소를 하는 날이다. 아침에 마지막으로 조금 남았던 누룽지를 끓여서 먹었다. 아침을 먹고 청소와 빨래를 시작할 타이밍을 기다렸다. 날씨가 맑아질 기세를 보고 빨래를 먼저 했다. 빨래를 널고 창문을 열면서 매트도 먼지를 털어 밖에 널면서 청소를 시작했다.
책상 위 키보드 먼지를 털고 컴퓨터 화면도 닦는다. 섬세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청소를 먼저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한다. 부엌이나 수채 구멍, 화장실도 먼저 청소한다. 걸레도 빨아 가면서 꼼꼼하게 걸레질을 했다. 날씨가 따뜻하니 유리창도 청소해야지. 유리창 청소를 했더니 예상보다 먼지가 많아서 투명한 부분을 두 번씩 닦아 냈다. 집안 청소를 구석구석하고 유리창까지 청소하면 밝은 시야와 집안 공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겨울에 쓰던 난방기도 걸레질을 해서 집어넣고 말았다. 앞으로 겨울에서 점점 가볍게 따뜻해지는 날씨에 맞게 집안도 가벼워져 간다. 나도 언제까지 봄방학 기분으로 지낼 수는 없는 일, 내일부터 4월이니 슬슬 개강을 향해 몸과 마음 주변 환경을 준비해야지.
내일은 일본의 '헤이세이'에서 새로운 연호를 발표하는 날이다. 1989년에도 두 달 해외여행을 하고 돌아 왔더니 일본 사회 분위기가 격변해 있었다. 쇼와 천황이 돌아가셨다고 사회 전체가 자숙해야 한다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1980년대는 자유분방했는데 천황이 돌아 가신 걸 슬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회 전체가 자숙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시는 이 부분이 일본 사회의 본질이라는 걸 몰랐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새로운 연호 '헤이세이'가 발표되었다. '헤이세이'를 발표할 당시, 아직 일본의 '버블경기'가 끝날 것이라는 예상이 없었던 터라, 너무 평범하고 특징이 없다는 평도 있었다. '쇼와'라는 길고 긴, 수많은 침략전쟁과 패전에서 경제성장이라는 화려한 부활까지 스펙터클했던 시대라서 간단히 '쇼와'를 정의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자신들이 주변국을 침략해서 참담한 피해를 준 부분은 기억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좋았던 부분만을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쇼와'시대에 대한 향수는 주로 일본이 경제성장을 한 경기가 좋았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된다. '쇼와'가 끝나고 다음 해에 일본의 '버블경기'도 끝나면서 자유롭고 화려했던 시대가 끝난 것이 되었다. '버블경기'에 대한 일본 사람들의 기억도 재미있다. '버블경기'는 터무니없이 땅값이 올라가는 등 엄청난 부채를 남긴 피해는 컸고 아주 길게 남았는데, 사람들 기억으로는 아주 재미있고 화려했던 축제의 시대를 경험했던 것처럼 되어 있다. 결코, '버블경기'가 부조리한 것으로 경계해야 하는 현상이 아닌 것처럼 왜곡되어 있는 것은 일본의 정치와 매스컴의 공헌(?)이라고 본다. 여기에서도 기억의 왜곡이 있다.
오늘 오후에 청소를 마치고 걸레를 빨아서 널고 미얀마에서 신었던 트랙킹화도 빨아서 널고 한숨 돌리고 있었다. 지금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친구에게 메신저로 대화를 나눴다. 오늘이 '헤이세이' 마지막 날이라고, 시대의 한 획을 긋는다는 날인데 전혀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계절이 봄이라, 봄이라는 계절이 막연히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한다는 대화를 했다.
내일 발표한다는 일본의 새로운 연호에 아베총리의아베 총리의 이름 중 安자를 넣으려고 했다느니, 다음 천황이 될 황태자에게 접근을 하고 있다느니 하는 보도도 봤다. 내일 발표하면 알겠지만, 발표하면서 어떤 퍼포먼스를 하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이름을 넣고 싶어 하다니, 역시 독특한 분이다. 혹시, 아베 총리의 이름이 새로운 연호에 들어간다면 아베총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기쁠까? 아베총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연호를 보면 아베총리를 연상해야 하는 괴로움을 선사하게 된다.
비엔나에 있는 친구는 '헤이세이'가 잃어버린 30년이 되는 나쁜 시대였다고 한다. 나는 '쇼와'의 마지막에 '버블경기'의 파탄으로 화려한 막을 극적으로 내렸다고 본다. '헤이세이'라는 시대가 나쁜 것이 아니라, '쇼와'시대의 부채가 왕창 남겨져서 정리해야 하는 시대였다. '헤이세이'라는 시대가 나쁘다기보다 '쇼와'시대 마지막에 '버블경기' 광상곡의 여운이 너무 오래갔다. 나는 다른 시대와 달리 주변국과 전쟁을 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헤이세이'가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헤이세이'가 나빴다고 하지만, 새로운 연호로 시작하는 시대가 좋을 것이라는 예상이 안 든다. '헤이세이'가 '쇼와'시대의 부채를 떠안고 정리하는 시대였다면, 새로운 연호로 시작되는 시대도 '헤이세이' 후반에 쌓아 올린 실적인 '우경화'에 '고령화'라는 유산을 떠안고 가는 것이다.
연호가 바뀐다고 갑자기 시대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연장선에 있다. 일본의 경우는 연호(천황)만 바뀐다고 보면 될 정도의 변화인 것이다. 하지만, 연호가 바뀌는 것을 대단한 변화라도 되는 듯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하긴, 올해 소비세가 2% 인상되어 경기가 걱정이고, 내년 동경올림픽이 있으니 연호가 바뀌는 것이 대단한 변화인 듯 호들갑을 떨어야 한다. 일본에서 매스컴을 동원해서 연호가 바뀌는 퍼포먼스로 호들갑을 떨어서 사람들 기분이 좋아진다면 나쁜 일이 아니다. 새로운 연호가 일본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연호라면 좋겠다.
'헤이세이'가 멀어져 간다지만, 청소를 하고 심심하게 지낸 평범한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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