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16 기적은 바람처럼
오늘 동경은 맑은 날씨였다.
그러나 상쾌하게 맑은 날씨가 아니라, 어젯밤에 비가 와서 축축하게 젖어있는 데 날씨가 개었다는 것이다. 습도가 높은 끈적끈적한 전형적인 장마철 날씨였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요가를 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려고 하는 참에 밖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차가 안내를 한다. 다마센터에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온다고 와서 연설을 들어 달라는 안내를 듣고 아침부터 열을 왕창 받고 말았다. 성질대로였다면 그 차를 향해서 뭔가를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변호사를 했던 사람이 정치가가 되어하는 행태라니… 특히 위안부문제나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에게 위락시설을 이용해서 성욕을 처리하라는 말을 할 수 있는 파렴치한이다. 그의 발언에 관해서는 내 수업을 듣는 문제의식이 있는 여학생뿐만 아니라, 남학생들의 분노를 샀다. 그러면서 학생들은 나에게 위안부 문제에 관해 해설을 해달라고 간청을 했다. 나는 수업에서 그의 발언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강의에 쓰기에 부적절한 단어가 너무 많았고 발언 수준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리오, 그 만이 아닌 현재 일본 정치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들이 그런 부류인 것을… 철없는 학생들도 그들의 하는 말이 정당하다고 믿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자이토쿠카이(재특회)’와 별반 다름이 없다. 문제는 자이토쿠카이는 집단으로 눈에 보이지만, 보통 평범한 사람들이 자이토쿠카이와 별 다름없는 의식을 가지고 그 걸 서슴없이 표현한다는 것이다. 아침부터 열을 받았다.
지난 금요일 수업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왜 기적이 일어났는지, 잘 모른다. 일본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반응이 적다. 자기가 소신껏 적극적으로 발언을 한다는 것은 기대하면 안 된다. 시켜서 해주면 그래도 다행인 편인 것이다. 그런데, 금요일 2교시부터 발표를 해야 한다. 발표를 시켜보고 안 하면 그냥 넘어가려고 생각했다. 연습을 시키고 발표할 사람 했더니, 작년에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 손을 들었다. 음, 여기서 부터 시작하자, 일단 시작을 했더니 순식간에 학생들이 불이 붙은 듯 저도요, 저도요 손을 들고 발표를 하는 게 아닌가. 정말로 순식간이었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에 발표를 안 한 학생을 세어봤더니 세 명 정도였다. 맙소사, 90%가 넘는 학생이 자주적으로 손을 들어 발표를 한 것이다. 학생들도 자신들이 발표를 했다는 데 들떠서 흥분상태에 빠져있다. 발표를 하고 나면 자신이 붙는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달라진다. 점심시간에 영어선생에게 자랑을 했다. 내 수업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기가 막혀서 믿을 수가 없단다. 당연하다. 나도 믿을 수가 없다.
3교시에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2교시에 발표를 하는 수업이었는 데, 몇 퍼센트가 발표를 했을까? 물었더니, 남학생이 0%요, 대답을 한다. 아냐, 훨씬 많아, 여학생이 조심스럽게 50%요, 90%라고 했더니, 학생들이 못 믿겠다는 눈치다. 내가 누군 데, 내 수업에선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각오를 해주라… 학생들이 당황한다. 그럴리가 없다는 눈치다. 그런데, 내가 선생인지라,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오늘부터 수업방식이 달라졌어, 발표를 안 한다고, 단위를 못 받을 각오를 해. 지금까지 한 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거든, 앞으로는 쉬운 데, 순발력이 문제야. 알았어?
연습을 시키고 발표를 시작했더니, 순식간에 회오리바람처럼 열광의 도가니가 교실을 뚫고 지나갔다. 학생들이 조용한 열기에 불이 붙었다. 4교시는 수강생이 적은 수업이어서 전체가 발표를 했다. 학생들이 문제를 푸는 것도 너무 익숙하게 빨리 풀어서 시간이 남는다. 너무 잘하는 것도 약간 문제다. 이해를 하려면 나름대로 시간과 과정이 필요한 데…
가끔 내 수업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나는 기적을 부르는 ‘마녀’이기도 하다. 문제는 어떻게 기적을 일으키는지, 마녀 자신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어정쩡한 마녀인 것이다. 우연처럼 기적이 일어난다. 기적이 계속되면 ‘전설’이 된다. 물론, 나도 전설을 몇 개쯤은 갖고 있다. 나의 전설이 된 강의를 듣고 연구자가 된 팔자를 그르친 사람도 있다.
지난 금요일의 기적은 어쩌면 이 옷 때문인지도 모른다. 학생들도 예쁘다고 칭찬을 해줬다. 학생들은 나에게 용기를 얻고 학생들 또한 나에게 선생님 예뻐요, 멋있어요, 하면서 용기를 준다. 서로가 마음이 모아지면 기적은 일어나기가 쉽다. 동그란 목걸이와 팔찌는 뜨개질을 한 거다. 5월의 제주도를 모티브로 한 거다. 땅과 돌맹이와 신록의 콘트라스트, 고사리가 저 모양을 만들어냈다. 아무래도 제주도의 정기가… 바람처럼 기적을 일으킨 걸까?
아래 사진은 나무에 새가 앉아있어서 찍었는 데, 숨은 그림 찾기가 되었다. 오랫만에 밖에서 사진을 찍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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