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21 침대 옆 도서관
동경은 어제 태풍이 지나가고 오늘은 갑자기 무더워졌다.
어제 오후 마지막 수업 때는 편두통이 심해서, 날씨 탓인지 어디가 아픈 건지 구분을 못했다. 조금 일찍 강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역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서는 우산을 모자처럼 바짝 잡아당겨서 쓰고 왔다. 바람이 세어서 우산이 홀랑 뒤집히면 온통 비를 맞아야 할 신세다. 집에 도착한 후에 바람이 더 거세어지기 시작해서 아주 좀 길게 태풍이 휘몰아쳤다. 집에 와서 바나나를 먹었더니 머리 아픈 게 나았다. 배가 고팠던 거구나. 생각해보니 점심때 요구르트와 과일을 먹은 것뿐이었다. 가끔 배가 고프면, 편두통을 한다. 오늘 아침 강의는 휴강이 될 줄 알았는데 그냥 평상시대로 수업이 있었다. 일기예보를 보고 최고기온이 27도로 알고 나갔는데 시내에서 내려보니 장난이 아니게, 현기증나게 덥다. 아침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이 건 30도 이상되는 날씨다. 완전 파김치 되는 날이다.
학교에 도착하기 전에 전차 안에서 옆에 앉은 아저씨가 지난밤 술독에 빠졌다가 나왔는지 땀구멍 하나하나에서 악취를 풍긴다. 아이고 맙소사, 옛날 출장 다닐 때 생각이 났다. 아침 첫비행기는 그 지방에 출장을 왔던 사람들이 잘 탔다.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면 버스 전체에서 간밤에 소주 독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 냄새로 가득해서 멀미가 났다. 여자는 나 혼자다. 한시간 걸려서 공항에 도착하면 비행기에 타기도 전에 벌써 기진맥진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래도 비행기를 타서 출장을 갔다. 출장에서 돌아올 때는 동경에서 마지막 비행기를 타도 역시 출장 다니는 샐러리맨, 즉 아저씨들뿐이다. 한 번은 좌석배정을 여자 옆으로 해 달라고 부탁을 한 적도 있다. 젠닛쿠 카운터 사람이 아주 황당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 때는 좌석배정을 바꿀 수 없었지만, 나중에는 자동적으로 여자 옆에 배정을 해주었다. 밤에도 비행기에서 캔맥주를 팔아서 옆에 앉은 냄새나는 아저씨가 맥주를 마시면 갖은 냄새가 증폭해서 나를 덮쳤다. 참을 수밖에 없지만, 기진맥진했다. 왜 또 구두를 벋고 냄새나는 발을 위로 올리는지… 아저씨들도 열심히 일을 해서 고달프고 피곤하겠지만, 그런 중에 낀 나도 고문이었다. 멀미가 난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리면 같은 리무진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야 시내에 도착한다. 오늘 아침 문득 그 생각이 났다. 남자들 세계에서 여자가 혼자 끼여 일을 한다는 건 여러모로 남모르게 힘든 점이 많다.
오늘 아침은 강의를 시작한 시점에는 학생이 평소보다 아주 적었다. 학생들이 무더기로 지각을 해서 와도 더워서 부채질을 하면서 수업에 집중을 못한다. 더위 때문이다. 나도 무더위 때문에 머리가 아파와서, 강의를 조금 일찍 끝냈다. 화장실에 갔을 때 청소하는 아줌마가 목 뒤에 체온을 내리는 파스를 부쳤다면서 날씨 변화가 심해서 사람들이 지쳤다고 한다. 그래서 건강이 안좋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일이 요새 많단다. 아무래도 요즘 일본이 이상한 날씨가 계속된다. 마치 하늘에서 인간들이 어디까지 견디나 인체실험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일을 하고, 쉬면서 책을 읽는다.
마치 숨을 쉬거나 밥을 먹는 것처럼 책을 읽는다. 일본에서는 보통 저녁마다 목욕을 한다. 즉 목욕탕 욕조에 몸을 담근다는 것이다. 나는 목욕탕에도 책을 가지고 들어간다. 화장실에는 안 가지고 가지만. 침대 옆에 의자를 놓고 잘 때 읽을 만한 책을 놓는다. 목욕탕에 갈 때도 그때 기분에 따라 책을 골라간다. 자기 전에도 거기서 책을 골라서 읽는다. 책은 잘 골라야 한다. 잘못 고르면 책을 읽다가 잠을 못 자는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평화로운 수면을 위한 책으로…
이 도서관에는 자주 바뀌는 책도 있지만, 항상 거기에 놓여있는 책도 있다. 실은 도서관이나, 자신의 책장을 보여주는 건, 머릿속을 훤하게 보이는 것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내 머릿속을 통째로 보이지는 못하겠다. 그래서, 침대옆 작은 도서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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