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23 네팔 아이의 성장
오늘 동경은 대체로 맑고 지내기가 좋은 날씨였다. 아침부터 맑아서 이불을 널고 청소도 했다. 그리고 새로 책이 오는 날이라,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 가는 길에 싱싱한 오이도 샀고 큼직한 무도 샀다. 오이는 괜찮은 데, 무우가 맵고 맛이 별로다. 그래도 피클을 만들었다. 도서관에서도 읽을 만한 책이 몇 권 있어서 빌려왔다.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은 오이가 여섯 개, 책 다섯 권, 큼직한 무우로 양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 왔다. 그래도 싱싱한 것 들이라, 만족감이 있었다.
어제는 비가 오는 날에 몸도 피곤해서 집에서 지냈다. 전날 저녁 산책길에 주워 온 매실을 씨를 빼서 설탕에 절여놓았던 걸 잼을 만들었다. 냉장고에 레몬이 두 개 있어서 레몬도 넣고 설탕을 적게 넣어서 잼을 만들었다. 물론, 매실잼을 만드는 것은 처음이다. 사실은 매실인지 살구인지 아리송했었는 데, 매실로 했다. 이사할 때에 대학원 후배가 두 명에 같은 단지에 사는 친구가 도우러 올 거라서 후배와 친구에게도 줄 요량으로 넉넉히 만들었다. 병도 다 소독을 하고 만들어 봤다. 쭉 늘어놓으니 색감도 예쁘고 재산이 많이 늘어난 만족감이 있었다. 잼을 만드는 것은 좋은 것 같다. 향기로운 과일향에 달콤한 설탕을 넣어서 끓이는 일이니까…좋아하는 과일을 자르고 설탕에 재우고 나무주걱으로 저으면서 잼을 만든다. 병도 크지않고 예쁜 병에 넣는 게 좋다. 병을 열면 빨리 먹는 게 좋으니까. 씨도 같이 넣었다가 마지막에 건져내어 씻어서 주스를 만들었다. 상큼한 맛이 피곤하고 우울한 장마철에 아주 좋은 맛이였다.
어제 오후에 네팔 아이가 문자를 보냈다. 지금부터 선생님네 집으로 갈게요. 5시 반에 도착합니다. 나는 네팔 아이가 오기로 한 날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문자를 받고 밥을 해주려고 언덕을 내려가 마트에 가서 생선토막이나, 고기를 사러 가려고 했다. 집에는 야채와 과일밖에 없어서 반찬이 부실하다. 그런데, 비가 오고 움직이기가 싫었다. 냉장고에 깻잎절임이 있다. 지난 번에 깻잎절임을 줬더니, 너무너무 좋아한 게 생각났다. 냉장고에 있는 야채로 어떻게 밥상을 만들었다. 우선, 밥이 가장 중요하다. 얘는 뭐니 뭐니 해도 밥을 가장 좋아한다. 규슈에서 보내준 무농약쌀에 치바에서 얻어온 콩을 넣고 밥을 많이 했다. 양배추를 살짝 데치고, 새송이버섯을 고기처럼 두껍게 썰어서 구웠다. 비트로 만든 짠지가 있다. 미나리와 김을 넣어서 계란을 부쳤다. 미역국이 있고, 양념장을 만들어서 깻잎절임이 있으니까, 쌈을 싸서 먹기로 했다.
반찬을 만드는 데, 아이가 왔다. 우선, 매실주스를 마시게 했다. 맛이 강하다나 어쩌다나 잔소리를 하면서도 좋단다. 오늘 영어시험을 보느라고 장시간 집중해서 정신이 없다고. 그러면서도 싱글벙글 좋아서 난리다. 너 입으라고 티셔츠를 샀어, 어때 청바지하고 잘 어울리지. 아이가 내 앞에서 옷을 훌러덩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는 쓰다듬으면서 좋아한다. 옷을 받고 입는 태도도 대단히 양호해졌다. 매실잼도 챙겨서 가방에 넣어두라고 줬다. 내가 만들었다니까, 진짜냐고 눈이 반짝거린다.
데친 양배추에 밥을 넣고 구운버섯을 얹고 양념장에 비트 짠지에 미나리를 곁들여서 쌈을 싸서 먹으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생선이나 고기가 없어서. 실은 사러 가야 하는 데, 몸이 피곤해서 그냥 집에서 있는 걸로 먹자고…아이는 선생님 제가요, 이제 어른이 되었어요. 고기나 밖에서 먹는 것 보다, 야채 중심으로 집밥을 먹는 게 좋아요. 말을 잘한다. 그래도 미안하지, 먼 길을 왔는 데 맛있다고 신나게 잘 먹는다. 깻잎절임은 뒷전으로 물러났다. 두 그릇째 먹을 때, 밥을 많이 뜬다. 적당히 먹어, 지난 번에 많이 먹어서 배가 아프다고 했잖아. 그리고 과일도 있다고. 밥을 먹고 나서 5분만 쉬자고 한다. 설거지도 그냥 두고 둘이서 산책을 나섰다. 비가 온 뒤라, 공원에 가면 나무 냄새와 꽃향기가 강해져서 걷는 우리를 휘감듯이 풍겨온다. 아이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급격히 생기를 되찾아 팔팔하게 살아난다. 선생님네 오면 제가 살아나는 것 같아요. 그건 네가 살아온 곳이 산이였잖아, 가끔 산의 정기를 보급해 줘야 한다.
아이는 도착해서 밥을 먹을 때만 조용히 집중해서 행복하게 밥을 먹었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수다가 시작되었다. 할 말이 많다. 나는 그 수다를 듣는다. 이사를 한다면서 괜찮냐고… 방학 때 네팔에 가기로 한 건 어떻게 하냐고… 이런저런 말을 한다. 공원을 걸으면서, 실은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좋아하는 여자가 있단다. 이상형이라나… 그런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고백했다가 채이면 같이 일하는 데, 거북하지 않겠냐고, 우선은 친구가 돼서 의중을 알고 고백을 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젊은 사람은 빨리 고백해서 사귀든지 아닌지가 중요하단다.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해, 그러면 후회가 없을 거 아냐. 그런데요, 제가 좋아한다는 말을 할 용기가 없어요.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건 누구나 떨리는 거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용기가 없어… 나에게는 별의별 말을 다하고 온갖 잘난 척을 다하면서 용기가 없단다.
집으로 돌아와서 과일을 택하라고 했더니, 오랜만에 망고를 본다고, 이런 망고는 처음 본다면서 망고란다. 나는 참외처럼 생긴 멜론이 맛있다고 했지만, 우선 맛없는 망고를 먹고, 멜론도 먹었다. 그리고도 수다가 계속된다. 어느새 밤 12시가 넘었다. 잘 이불을 가져다가 준비해라. 저는 안자도 돼요.. 할 말이 많아요. 또 한 시간, 이불 가져다가 펴서 잘 준비를 해. 오늘은 샤워를 하고 잘 까요. 지금까지 그렇게 샤워를 하던지, 목욕을 하라고 해도 안 듣더니 오늘따라 늦은 밤에 샤워를 한다고, 안돼, 내가 먼저 목욕하고 잘 거야. 내일 아침에 샤워해. 2시가 되어도 수다가 멈추질 않는다. 내일 아침에 수다를 계속하고, 잠을 자자. 나는 수다를 듣느라고 완전히 피곤한 상태에서 잤다.
오늘 아침, 자기대로 일어나서 챙길 줄 알았더니, 8시에 일어나서 나왔더니 자고 있다. 학교 가야지, 시간이 늦었어. 나도 비몽사몽 간에 밥을 꺼내서 계란을 부치고 양념장에 양배추를 채 썰어서 넣고 비벼서 줬다. 김을 구워서 싸서 먹으라고, 한 그릇을 먹고 더 먹으라고 했더니, 선생님은요, 나는 집에 있으니까 괜찮아. 많이 먹고 가야지. 일찍 일어나야, 반찬을 해줄 거 아냐… 날씨가 맑은 데, 내가 준 소매가 긴 티셔츠를 입는 단다. 오늘 좀 더울 것 같은 데, 속에 입었던 옷을 벗고 소매가 긴 티셔츠를 입었다. 보통 때는 역에 마중을 갔다가, 역까지 배웅을 해준다. 역까지 안 가도 밖에 나가서 배웅을 해주는 데, 오늘 아침은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일어나 밥을 챙겨준 탓에 얼굴도 못 씻어서 밖에 못 나간다.. 여름이니까, 물을 자주 마셔, 물을 잘 안 마시면 입에서 냄새나, 여자들은 청결하지 않은 남자 싫어하거든 알았지. 아이는 할 말을 다 못 했다고 아쉬워한다.
베란다에 나가서 그 아이가 역을 향해서 걸어가는 걸 봤다. 내가 베란다에 서서 보는 줄 모른다. 아이가 확실히 성장했다. 젊은 데, 머리도 점점 벗겨져가고… 좋다는 여자아이도 생기고… 아침에 정신이 없어서 과자를 챙겨주지 못했다. 나갈 때 과자를 챙겨주면 아주 좋아하는 데… 과일도 가방에 좀 넣어줄 걸 못했다. 네팔 아이는 내가 사는 곳에 와서 심신의 영양을 보급하는 것 같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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