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22 돌변했다
오늘 동경은 맑지만 습기가 많고 그다지 뜨겁지 않은 날씨였다. 친구 강연이 있는 날이라서 가려고 했는 데, 피곤해서 힘이 안 난다.. 월요일이라, 도서관에 가서 새 책이 왔는지도 봐야 하고 준비를 했다. 천천히 준비하다 보니 시간이 좀 늦어졌다.
도서관에 가기 전에 인터넷을 켰더니 한국에 관한 기사가 떴다. 그런데, 지금까지 쭉 봐왔던 중상모략이나, 비방하는 기사가 아니라, 호의적인 기사였다. 뉴스라는 것은 나쁜 것도 있지만, 좋은 일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근래 일본에서 한국에 관한 기사는 나쁜 것만 있었다. 중국에 관한 뉴스도 비슷했지만, 4월부터 호의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만만한 것은 한국이라고 때리는 기사가 매일같이 올라왔었다. 그래서 한국에 관한 호의적인 기사에 깜짝 놀랐고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나 했다.
도서관에 가서 신문을 봤더니, 주요 일간지 일면 톱에 한일관계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한국 대통령이 일본에 오기라도 한 줄 알았다. 기사제목이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용인”이 아사히신문이고, 다른 신문에서는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협력”이라는 제목이었다. 다음에 한일관계 개선에 실마리가 풀렸다는 것이다. 거기에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서 어쩌고 저쩌고, 오늘이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날이라고, 일본의 주요 일간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비슷한 기사가 나왔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되어있는 군칸지마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오마이뉴스와 한겨레신문을 확인했지만, 일본의 주요 일간지에서 본 뉴스는 없었다. 한겨레에서 짧은 기사가 있었지만, 일본 기사와는 달리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일본의 주요 일간지에서 그렇게까지 보도한다는 것은 한국 쪽에서 일본 쪽에 큰 선물을 한 것인 데, 어떤 선물을 안겨준 것일까? 정작 한국에서는 자세히 보도하지 않는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묘하다. 기사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박 대통령에 관한 특별 기사가 실리고 아사히신문에서도 아주 크게 특집을 실었다. 근래 박 대통령에 대해서 악담을 퍼붓던 분위기에서 박 대통령을 평가하고 칭찬하는 분위기인 것이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일본이 원하는 걸 알면서도 협조적이지 않았지만, 결국은 일본이 원하는 대로 될 것이라는 분위기다. 마치 자기네가 잘 아는 친척이라도 되는 것처럼 친근감이 담겼다. 박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에 일본에서 기대감에 넘쳐서 칭찬이 자자했다. 미인이라고, 국민들의 어머니로서 어쩌고… 한국 사람인 나도 받아들이기 힘든 기대와 찬양이었다.
기대감은 일본의 뜻을 잘 알아서 보답해줄 것이라는 것이었다. 칭찬은 기대에 부응할 것이라는, 한국이 자신들 손바닥 안에 있다는 감각이었다. 칭찬은 원래 손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칭찬한다는 것 자체로 상하관계가 정해진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일본의 기대에 부응할 만한 일을 안 했다. 그렇다고 일본에 맞선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기대한 만큼 배신감도 커서 나중에는 악담을 하기에 이르렀다. 당선 직후에 하던 태도와는 정반대가 되었다.
아베 정권은 지금 박 대통령이 국내에서 처해있는 상황을 잘 알고 있다. 거기에 이번에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비추자 얼씨구 환영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국내에서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걸 일본에서 올려줄 기세다. 박 대통령이 했다는 “과거는 잊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라는 말의 뜻이 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자신들이 편한 대로 해석했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카드가 없으면 정치적으로 힘들 것이라는 걸 이용하겠지. 그리고 새삼스럽게 일본 주요 매스컴이 아베 정권과 직통으로 연결되었다는 걸 명확하게 알려줬다. 어쩌면 주요 일간지에서 일제히 같은 기사를 일면에 낼 수 있나? 정치적인 의도다. 한국과의 관계 개선이 주된 것이 아닌, 일본 국내 정치의 문제다. 일본의 현정권이 원하는 대로 맞춰줄 것이라는 기대감인 것이다. 한국과의 관계 악화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상륙한 것을 제외하면 일본에서 난리에 난리를 치면서 계속되어 온 것이다. 그랬던 일본이 어제까지 있었던 일이 전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돌변했다. 마치 일본이 관대하고 너그러운 아량으로 한국의 잘못했다는 걸 받아준다는 식으로 최대한 호의라도 베푸는 것처럼 포즈를 취한다.
일본은 상황에 따라서 돌변한다. 그것도 일제히. 지금까지 협박에 공갈했던 걸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는다. 그러면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이 된다. 자신들은 언제나 항상 우호적인 관계를 원했던 것처럼 굴겠지. 항상 자신들만 옳다. 그러니 무섭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