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09 살벌한 동경
오늘 동경은 오랜만에 화창하게 맑은 바람도 솔솔 부는 상쾌한 날씨이다.
그동안 장마철이라 비가 오던지 흐린 날이 많았다. 빨래를 해도 상쾌하게 마르지 않고 찌뿌둥했던 것이다. 아침부터 바쁘게 집안 일을 한다. 우선 이불과 베개를 널고, 보통 때 하는 청소에다 면담요를 빨아서 널고, 유리창 청소에 커텐까지 빨아서 집안 공기를 신선하게 바꿨다.
집안에 있던 쓰레기도 버리고 냄새나는 쓰레기통도 씻었다. 배수구도 씻었고 목욕탕도 욕조와 바닥 타일을 수세미로 문질러서 씻었다. 쓰레기를 버리러 갔더니 마침 문고판 책을 열 권 정도 묶어서 버렸길래 집에 가져왔다. 책들이 더럽다. 책을 보니 어떤 경향인지 알겠는데, 너무 더럽다. 우선 솔로 먼지를 털어내고 비누를 묻힌 수세미로 표지를 닦았다. 그리고 나서 휴지로 한 권 한 권 깨끗이 닦았다. 네팔아이에게 일본어 공부하는 자료로 줄 예정이다. 바지를 넣은 상자를 꺼내서 여름바지를 내놓고 겨울 바지를 상자에 넣어서 벽장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오늘 네팔아이가 집에 온다고 해서 작은 방도 정리를 했다. 아무래도 집에 사람이 자러 오면 집안을 좀 정리하게 된다. 날씨가 상쾌해서 그런지 몸과 기분도 가볍고 일도 효율적으로 진행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이블 위에는 일들이 밀려 각종 수업자료와 서류들, 교정을 봐야 할 원고, 뜨개질하는 것까지 점점 높게 쌓여간다. 이 건 어쩔 수가 없다. 학기말까지 갈 것이다. 학기말이 다가오니 학생들에게 낼 리포트 과제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오후가 되었다. 오늘도 할 일이 좀 있는데, 날씨가 좋아서 예정에 없던 일을 해서 시간이 많이 빼앗겼다. 그래도 언젠가 해야 할 일들이라, 기분이 좋다.
그저께, 토요일에 연구회가 있는 줄 알고 구니다치에 있는 히도츠바시대학에 갔다. 항상 연구회를 하는 건물 문이 주말에는 잠겨서 그중 한 군데만 열려 있다. 그 날은 연구회를 하는 것 같은데 문이 다 잠겨서 건물에 들어갈 수가 없다. 비도 오고, 후배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묵묵 무답이다. 또 한 명에게 보냈더니, 고베에 있단다. 건물을 두 바퀴 돌고 그냥 연구회에 가기가 싫어졌다. 비도 점점 세게 오고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히도츠바시에서 구니다치 역까지 걷는 길 모퉁이에 여장을 한 남자가 서있다. 발레리나 복장에 화장도 했다. 눈앞에 있을 때는 안 보이는 것처럼 지나쳤는데 아무래도 봐줘야 할 것 같아 뒤돌아서 봤다. 한낮 비가 오는 길 모퉁이에 여장을 한 남자가 혼자서 초연히 서있다. 그리고 역에 다 왔다. 역 개찰구 앞에 육십대로 보이는 아줌마가 스커트를 입은 아랫도리가 적나라하게 보이는 포즈로 앉아있다. 좌변기가 아닌 화장실에 앉은 포즈이다. 옷차림도 멀쩡하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의 하반신에 사람들 시선을 모으고자 한 포즈였다. 나도 봤다. 속옷을 입었지만, 보통은 여자들이 드러내지 말아야 할 부분을 일부러 드러낸 모습이다.
가끔 선입견을 뒤엎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을 때가 있다. 슬로바키아에서 온 무용단이 스커트를 걷어 올릴 때, 그리고 춤을 추면서 다리를 높게 올리면서 속옷이 그냥 발랄하게 보이게 할 때, 거기에는 여자가 속옷을 입은 하반신을 감춰야 한다는 거리낌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섹시한 느낌도 없었다. 경쾌한 댄스가 건강하고 발랄할 뿐이었다.
그런데 역 앞에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곳에서 하반신을 노출한 아줌마를 보고 혼란스러웠다. 감춰야 할 부분을 노출해서 느끼는 혐오감이 아니었다. 내가 느낀 것은 사람들이 시선을 끌면서, 또한 사람들 시선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간이 뭔지? 사실 나도 그 아줌마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단지 사람들 눈앞에서 보이게 그런 포즈를 잡지 않는 것뿐이다.
아주 혼란스러워 현실이, 이상한 꿈속에서 헤매는 느낌이었다. 전차를 탔더니, 투신자살이 생겨서 전차가 갑자기 멈췄다. 평일 날은 거의 매일 투신자살이 있다. 나는 투신자살도 주말에는 쉬는 줄 알고 있었다. 내가 주말에는 전차를 타지 않고 회사도 주말에는 쉬니까, 아마 투신자살도 쉴 거라고 멋대로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 투신자살은 비가 와도, 주말에도 쉬지 않는 모양이다. 몸에 힘이 빠지면서 갑자기 머리가 아파온다. 내가 큰 도시에 살고 있지만, 도심 한복판 그것도 특정 장소, 특정한 시간에 볼 수 있는 것을 조용하고 부자들이 많이 산다는 곳에서 대낮에 봤다. 내 머릿속이 수습이 안된다.
돌아오는 전차에서 후배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가 집에 돌아간다고, 그랬더니 연구회는 일요일이라고 한다. 보통은 토요일이어서 내가 착각을 한 것이다. 그 게 아니라, 살아가는 도시의 모습을 보러 일부러 나간 것 같다. 내가 얼마나 살벌한 도시에서 사는 지를 실감했다. 이 도시에 있다 보면, 나도 언제 어떤 모습으로 ‘광기’를 드러낼지, 투신자살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도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서서히, 아니면 급격히 미쳐가는 것 같다. 비가 세어져서 시야가 좁다.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주위가 안 보인다. 내 머릿속도 안개가 자욱이 낀 것처럼 맑지 못하다, 그 속을 휘청휘청 허우적거리며 집에 왔다.
나도 보통 사람이라, 여장을 하고 초연히 서있는 그 남자를 이해할 수도 없고, 하반신에 많은 사람들 시선을 끌어 모으는 아줌마도 혼란스럽다. 그리고 매일 일어나는 투신자살을 어찌할 방도도 없다. 단지 그런 살벌한 도시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쾌한 날씨에 집을 청소하고,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블로그 나부랭이를 끄적거릴 수 있는 평화로운 일상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