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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아베정권

아베 담화 처~럼

2015/08/16 아베 담화 처~럼

 

오늘 동경은 좀 더웠지만, 연일 폭염이었을 때에 비하면 덜 더운 날이었다. 최고기온이 33도였다. 오늘도 8 15일이라, 한국에서는 광복절, 일본에서는 종전이라고 하지만 패전 기념일이라서 야스쿠니에 다녀왔다. 그건 천천히 올리기로 하자.

어제 아베 담화가 오후 5시에 발표가 된다고 해서 기다렸다. 그래도 ‘혹시나’했더니, ‘역시나’ 명작 수준의 ‘작품’을 발표했다. 여러 뉴스에서 평하는 걸 보고, 아까 전문을 다시 찬찬히 읽었다. 읽어도 도통 이해가 안 되기로는 박근혜 대통령 연설과 쌍벽을 이룬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도 한번 듣고 전혀 못 알아들어서 두 번이나 들었다. 그리고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고 이해하는 걸 포기했다. ‘작품’으로 따지면, 박대통령 연설보다 아베 담화가 ‘작품’ 수준이 훨씬 더 고단수다. 헷갈리게 하는 수준이 완전 ‘고수’로 공을 많이 들인 뛰어난 테크닉의 집약된 ‘작품’ 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담화에 작은 ‘기대’를 했던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당했던 국가를 비롯한 국제사회를 실망시켰다. 아니, 일본을 제대로 알렸다고 할까? 그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호주’는 빠진다. 아베 담화는 실질적으로 ‘미국’을 향한 담화였기 때문이다. 오로지 ‘미국’과 살짝 ‘호주’도 끼웠지만, ‘미국’과 살짝 ‘호주’와도 관계를 돈독히 해서 앞으로 잘해보자는 ‘러브레터’였다. 물론, 그들의 심오한 관계를 남이 봐서 쉽게 알게 ‘사랑’이라는 말을 쓰진 않았지만, 결국은 그렇다는 걸 알려줬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긴 것에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용기를 줬다는 대목에서 영토문제를 안고 있는 ‘러시아’를 확실히 또 ‘자극’시켰다. ‘러일전쟁’에서 이긴 것은 일본의 유럽의 대국과 전쟁해서 이긴 ‘찬란한 역사’이지만, 전쟁에 휘말린 ‘조선’은 다시 ‘밟히고 무시’당한 꼴이 된다는 걸 몰랐을까

또 한가지는 일본에는 전후에 태어난 사람들이 8할이 넘었다고 전쟁에 관계가 없는 후손들이 사죄할 필요가 없다고 명언했다. 여기서는 ‘확고한 의지’가 보인다. 일본이 도대체 몇 번 사죄해야 하냐는 것이다. 충분히 사죄를 했다는 의사표시다. 사죄가 제대로 되었고 그에 따른 행동을 보였다면, 사죄를 몇 번이나 할 필요는 전혀 없다. 아베 담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들이 침략한 ‘전쟁’에 대한 반성이 있었을까? '침략'당해 '식민지 지배'를 당한 사람들에게 배려가 있었나? 반성이 없는 사죄는 사죄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사죄를 했다면 행동은 사죄에 걸맞은 것이었을까? 일본이 겉으로 ‘전후’는 ‘전쟁’을 부정하고 단죄하면서 성립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적으로는 ‘전후’가 그 이전과 ‘단절’되지 않은 ‘연속’이었다

‘전쟁’은 개인의 의사에 의해 행해진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국가’가 ‘책임’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국가’가 ‘사죄’를 안 한다면, 그야말로 ‘전쟁’과 관계가 없는 ‘개인’들에게 ‘죄’를 안기는 것이 된다. 나는 일본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내 학생 편에서 말하자면 참 곤란하다. 정말로 왜 죄가 없는 학생들에게 과거에 ‘침략’해서 피해를 끼친 나라 사람들과 만날 때 떳떳하고 당당하지 못하게 하는 ‘유산’을 남기는지 모르겠다. 학생들이 자세히 몰라도 ‘과거’에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침략전쟁’을 했고, 몇 나라에 ‘식민지지배’를 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과거’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학생들은 떳떳하고 당당하게 ‘과거’가 있던 나라 사람들과 만날 수 있을까?

‘사죄’를 한다는 것은 과연 ‘피해자’만을 향한 것일까? 사실은 ‘사죄’를 한다고 해서 ‘피해자’에게는 ‘피해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죄’를 받으면 ‘가해자’를 ‘용서’ 해야 한다는 ‘압력’이 가해진다. ‘사죄’는 ‘가해자’야 말로 ‘과거’의 과오를 ‘사죄’했다는 ‘면죄부’를 얻는 지름길인 것이다. 운이 좋으면 ‘용서’도 받을 수 있고…’ 사죄’는 ‘피해자’보다 오히려 ‘가해자’를 위한 것이 아닐까

‘사죄’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자신들이 택한 길이니까. ‘아베 담화’는 현재의 일본과 앞으로 일본이 향하는 방향을 잘 알려주고 있다. ‘아베 담화’라고 하지만, 결코 아베 총리 개인의 의사가 아니다. ‘아베 담화’가 만들어진 것은 ‘21세기 구상 간담회’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유식자 회의’에서 그야말로 ‘일본 국민의 총의’를 결집한 것으로 나온 것이다. 한국을 비롯한 중국과 국제사회에서도 ‘일본 국민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나도 아베 담화를 본받아 많은 말을 하면서도 뜻은 ‘아리송’하고 헷갈리게, 뭔가 심오한 듯하면서도 ‘공허’하고 허탈하게 하고 싶었다. ‘실력미달’이라,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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